17. 김해 무척산 모은암-천지-백운암
17. 김해 무척산 모은암-천지-백운암
  •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 승인 2015.09.1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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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달려 온 강, 가야 깨우고 바다로 가다

▲ 1. 태백 함백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400여km를 달려 와 밀양 땅과 김해평야를 적시며 가야를 품는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낙수(洛水)로,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락(伽落)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낙동(洛東)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평야 품은 모은암
산을 품은 백운암
2000년 전 가락국
옛 이야기 오롯이 간직"

만어사에서 해탈해 미륵이 됐다는 용왕의 아들. 살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탄의 나날을 보낸 용왕의 아들이 신승(神僧)을 찾아가 여생을 보낼만한 길지를 일러 달라 했지. 오늘, 범상치 않았던 그 스님이 머물렀다는 산, 무척산(無隻山)을 오르고 있다. ‘무척’이란 ‘견줄만한 게 없는’, ‘기대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만큼 아름답기 그지없는 독보적인 산이란 뜻이다.

만어사 자리한 만어산 곁에 의미심장한 산 하나 우뚝 솟아 있는데 천태산이다. 낙동강과 삼랑진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산 중턱에 암자 하나 있으니 ‘부은암(父恩庵, 현 부은사)’이다. 가야국의 2대 왕 거등왕이 아버지 김수로의 은혜를 기리고자 지은 암자다.

부은암이 전하는 사연 하나 들어보자. 임진년 당시 왜병들은 삼랑진 부근(지금의 검세리)의 작원관지(왜적의 침공을 방비하던 요새지)로 침입해 육로를 확보한 후 밀양을 공격하려 했다. 조선의병 300여명은 왜적 1만8000명을 상대로 결연하게 맞섰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랑진(三浪津)은 밀양, 김해, 양산 접경지. 여기가 뚫리는 순간 세 지역은 동시에 위험해 처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의병들은 결사항전을 벌였다. 왜적들은 방향을 틀어 천태산을 넘어 진입하려 했는데 이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패전의 분함을 참지 못했던 것일까. 왜적들은 부은암을 불태워 버렸다.

조선 말 1860년(철종11년)께 동화사 학송 스님이 부은암을 복원했다고 전해지는데 다시 소실됐고, 지금의 부은암은 원래 사지에서 조금 더 아래에 있다.

▲ 김수로왕의 아들 거등왕이 어머니 허황옥의 은혜를 기억하며 지었다는 모은암. 대웅전 앞 긴 바위가 허황옥의 누워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모암(母巖)이라 부른다.

아버지 사랑만 기억할 거등왕이 아니다. 어머니 허황옥(許黃玉)이 내린 사랑 또한 잊지 않았던 그는 이곳 무척산에 어머니 은혜를 기리는 모은암(母恩庵)을 지었다. 강 하나 두고 마주하고 있는 두 암자는 오늘도 바다를 향해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강과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품은 모은암, 그 절경 누워서 보는 이 있으니 허황옥이다. 대웅전 앞 길게 뻗어 있는 바위. 옛 사람들은 그 바위가 누워있는 허황옥를  닮았다 해 어머니 바위 ‘모암(母巖)’이라 했다.

모암 못지않게 나그네의 눈길을 끈 건 종각이다. 모양새는 여느 사찰의 종각과 다를 바 없는데 현판에 ‘모음각(母音閣)’이라 새겨져 있다. 어머니 목소리, 허황옥의 목소리 영원히 퍼져가기를 소망하는 거등왕의 염원을 담은 종일 터. 종에 새겨진 조각도 여느 종과 다를까?

달랐다. 비천상이 아니다.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어머니를 업고 있는 아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젖먹이고 길러주신 은혜(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로 시작해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신 은혜(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로 맺는 ‘부모은중경 10은혜’가 새겨져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이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감사의 뜻이다. 이 암자 호지하는 암주의 혜안에 무릎을 친다.

▲ 모은암 중턱의 하늘연못(天池·천지) 또한 김수로왕과 연관있다.

정상을 향해 오르다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하늘연못(天池)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해발 505m에 이렇게 멋진 호수가 있는 것도 놀라운데 물에 담긴 이야기 한 토막은 신비감마저 더해준다.

1800년 전 어느 날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이 1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나랏일 보는 사람 중에서도 지관이 명당 중의 명당을 찾느라 꽤 애를 썼을 터. 지금의 김해시 서상동(수로왕릉)의 한 터를 왕릉자리로 잡고 묏자리를 팠다. 그런데 이런! 큰 물길이 솟는다. 그 물길 잡느라 별의 별 수단 다 부려봤지만 모두 허사. 이 때 신보(申報)가 나선다. 신보는 허황옥이 가야로 시집올 때 동행한 두 명의 사신 중 한 명. 그의 딸 모정(慕貞)은 거등왕과 결혼했다. 사위에게 닥쳐온 고충을 먼발치서 구경만 할 수 없었던 신보였으리라.

“이 고을 높은 곳에 연못을 파면 물길은 잡힐 것이다.”

신보의 말대로 무척산 7부 능선에 연못을 파자 왕릉 묏자리서 솟았던 물길이 가라앉았다. 어떤 방도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보는 왕릉터 아래로 흐르는 수맥이 무척산 계곡과 이어졌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아예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에 와 저 곳을 가리키며 일렀을 게다.

“여기에 큰 연못을 조성하라. 그래야 묏자리 물길이 잡힐 것이다.”

무척산 하늘연못은 오늘도 한 아름 가득히 물을 안고 있다. 물 위에 정자 하나 띄워 놓으니 운치마저 일품이다.

▲ 무척산 중턱서 바라본 9월의 김해평야.

여기서 무척산 정상까지는 1.3km. 걸음을 재촉했다. 정상을 밟기 위한 걸음이 아니다. 신선봉 너머에 가야의 중흥을 기원하며 지었다는 백운암을 참배하고 싶기 때문이다.

백운암이 안은 풍광은 모은암이 안았던 풍광과는 사뭇 달랐다. 모은암이 평야를 품었다면 백운암은 산을 품었다 하겠다. 모은암이 밀양강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지켜보고 있다면, 백운암은 밀양강을 품은 채 바다로 내달려 가는 힘찬 강줄기를 지켜보고 있다. 무척산이 아름답다는 건, 기묘한 바위가 늘어서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강과 평야를 품었기 때문임을 백운암에 닿아서야 알겠다.

가야국 번성을 기원하며 창건됐다는 백운암. 그 역사 2000년 넘었지만 누가 창건했는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허황옥의 오빠이자 가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장유화상이 김수로왕 재위 당시 세웠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유력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설이 있다. 가락국 시대에 무척대사라는 스님이 이곳에 머물며 창건했다는 것이다.

▲ 부은암이 자리한 밀양 천태산에서 바라 본 삼랑진 전경.

잠깐, 무척대사(無隻大師)! 돌계단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펴 본다. 법명부터 범상치 않은 독보적 존재 무척대사. 혹, 무척산에 머물렀다는 신승(神僧)과 동일 인물은 아닐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승’이란 법명이라기보다는 요즘 말로 ‘도통한 스님’을 이르는 통칭 아니었을까? ‘무척산에 도통한 스님 있어요. 모르는 게 없어요. 신승이야 신승!’

불법을 기반으로 한 정진 끝에 혜안을 가졌을 무척대사. 가락국 산하 정도는 훤히 꿰뚫고 있었을 것이다. 묏자리의 물길 잡을 방도 물어 봄직 한 인물은 그 일대에 무척대사 밖에 없었을 터. 그렇다면 신보가 무척대사를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용왕의 아들도 묻지 않는가. 생명 다해가는 자신이 쉴 곳을. 무척대사는 만어산과 무척산 그리고 백운암 창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은 아닐런지.

▲ 가야 번성을 기원하며 세워진 백운암으로 오르는 길.

하루의 해가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남기고 가는 저 멋진 노을을 보라고. 그 노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굽이쳐 흐르는 저 낙동강 줄기를 보라고. 가락국 사람들 또한 저 노을 지켜보며 멋진 삶 살았을 터. 언제쯤 그 역동의 삶을 속 시원히 볼 수 있을까!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경남 김해 무척산 주차장. 산 초입서 만나는 석굴암부터 모은암까지는 가파른 길이니 40분 정도 잡고 천천히 오르기를 권한다. 모은암 참배 후 절 옆으로 난 산길을 걷다보면 천지연못으로 가는 등산로와 만난다. 또한 암자 바로 아래에 천지연못과 무척산 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으니 그 길을 따라 올라도 된다. 천지연못에서 무척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면 백운암과, 무척산정상, 여덟말고개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정상(신선봉)까지는 5분이면 충분. 무척산 주차장서 신선봉까지의 소요시간은 2시간30분.

김해평야와 낙동강을 감상한 후 백운암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한다. 백운암에서 백학회관까지의 하산길은 약3km. 신선봉서 백학회관 버스 정류장까지의 소요시간은 1시간30분. 모은암서 백학회관까지의 총 소요시간은 약 4시간. 백학회관 옆 버스정류장서 무척산 주차장으로 향하는 버스(1번 환승)가 있다.

백운암 참배 후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른 후 흔들바위가 있는 능선을 따라 하산해 무척산 주차장으로 원점회귀(2시간 30분) 하는 것도 좋다.

이것만은 꼭!

 
부은암 마고석굴: 밀양 삼랑진 천태산에 자리한 부은암에는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마고석굴이 있다. 한 개의 거대한 바위 속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석굴이다. 대웅전에서 100m 정도의 산길을 올라야 닿을 수 있다. 

 

 

 
모은암 석조아미타상: 구부정한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데 신체에 비해 머리가 다소 크다. 그러나 ‘어깨와 다리의 비례가 좋아 안정감 있다’는 평을 받는 불상이다.

 

 

 

 

 

 

 
모음각 종: 모은암 종각에 조성된 종에는 자식이 어머니를 업고 있는 형상이 조각돼 있어 이채롭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감사의 뜻을 담은 조각이다.

 

 

 

 

 

 

 
모은암 관음석굴: 부은암 마고석굴처럼 모은암에도 자연 석굴이 있다. 사찰에서는 관음보살을 안치하고 관음전으로 명명했다.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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