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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집과 법집 떠난 보시

기자명 서광 스님

물질적 부패와 정신적 갈등 벗어나는 비결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칠보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그 사람은 그 인연으로 인해서 많은 복덕을 얻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그 인연으로 얻게 될 복덕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수보리야! 만약 복덕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는 많은 복덕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덕이 없기 때문에 많은 복덕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복덕에 실체 있다고 믿는 게
바로 부처님이 경계한 법집
달마의 양무제 공덕 부정도
아집·법집 한계 지도 위한 것

보살수행에서 복과 덕을 얻는 최상의 길은 보시(나눔과 봉사)다. 그런데 그 보시가 진정한 복덕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지계, 즉 절도가 있는 상황과 조건에 맞는 보시여야 한다. 또 지계가 있는 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인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보시가 상대의 변화와 영적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시자는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인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이타적 보시를 위한 인욕은 끊임없는 마음수행, 정진도 함께 요구한다.

지계와 인욕, 정진을 동반하는 보시는 손익을 계산하는 번뇌와 분별망상을 쉬게 하는 고요한 마음을 가져오고(선정), 그런 고요한 마음에는 왜곡, 합리화, 부정, 투사 등의 방어적인 태도가 없기 때문에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지혜). 이와 같이 보살수행에서 보시는 반야의 지혜를 얻는 육바라밀 수행의 시작이고, 아집을 내려놓고 아공(我空)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아집에서 벗어나게 되면, 보살에게는 보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자라나게 된다. 보다 섬세하게 배려할 줄 알게 되고,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다시금 상대의 조건에 맞는 적절한 물질적, 정신적, 영적 보시를 베풀게 된다(방편바라밀). 보살은 점점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중생의 행복과 이익을 원하게 되고(願바라밀), 그에 따른 강한 의지와 자비를 실천하는 행동을 수반하게 된다(力바라밀). 그리하여 마침내 완전한 지혜를 성취하게 된다(智바라밀). 이것이 아공을 바탕으로 법집을 내려놓는(法空) 십바라밀의 마지막 4바라밀 수행이다.

그런데 종교에 입문하는 첫 단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위로를 구하고 좌절과 절망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하면서 기도한다. 복을 구함에 있어서도 주로 내 자식, 내 가족에 한정되고, 보시를 하더라도 내심으로는 그 대가를 기대하며, 복을 빌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아집)에서 출발하게 된다. 또 보시하는 대상을 향해서도 끊임없이 분별하게 되고 판단하게 된다(법집). 부처님께서는 아집과 법집을 바탕으로 하는 보시는 그 크기와 관계없이 결코 복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아집과 법집에서 비롯되는 보시는 물질적으로는 더 큰 물질적 비리와 부패를 낳고, 정신적 영적 보시는 더 큰 정신적 갈등과 고정된 관념을 낳는다.

이제 우리는 복덕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보시하는 자를 향해서, 부처님께서는 왜 복덕이, 복덕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지,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복덕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법집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양무제와 보리달마의 일화를 생각해 보자. 양무제는 황제에 오르기까지 많은 전쟁을 일으켰고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는 자신의 죄를 갚기 위해 수많은 사찰을 짓고, 스님들에게 보시를 했다. 어느 날 그는 보리달마를 궁궐로 초청해서 자신의 보시공덕이 얼마나 큰지를 물었는데, 보리달마는 일언지하에 ‘없다’고 답했다. 왜였을까? 그건 실제로 공덕이 없다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무제가 아집과 법집에 바탕을 두고 보시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가르침이라 여겨진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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