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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기자명 김형중

슬픈 세상에 위로와 울림을 주는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온갖 역경 이겨낸 인동초
인생은 기쁨과 슬픔 공존
세상은 이해·화해로 발전

도종환(1954~)의 ‘접시꽃 같은 당신’ ‘옥수수 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한국의 중년 남자들을 울린 시이다. 가난을 극복하고 이제 간신히 접시꽃 같은 고운 새색시를 만나서 결혼하여 살만해졌는데 어느 날 아내의 얼굴에는 노란 꽃이 피면서 시름시름 죽어간다.

우리가 슬픔에 젖어 한없이 눈물 흘릴 때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은 우리에게 위로와 울림을 주었다. ‘아, 인생은 원래가 그렇게 아파하면서 슬퍼하면서 또 그렇게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찢어지는 마음을 위로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의 시구는 절망의 낭떠러지에 핀 희망의 꽃이요 위로의 꽃이다. 온갖 역경을 견디고 이겨낸 인동초(忍冬草)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자신을 속이고 또 남을 속이면서 살았는가. 억울한 일 당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아파했는가. 삶은 회의와 갈등 그리고 흔들림과 주저함의 연속으로 점철된 것이다.

그러나 생채기가 나야 굳은살이 배어 강건해지고, 겨울 매운 추위와 바람을 겪어야 봄에 피는 영산홍 꽃잎이 붉다. 온실에 화초처럼 바람 한 번 맞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자란 꽃은 향기가 없다. 그렇게 자란 사람은 생기가 없고 세상과 인생의 참모습을 모른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 세상은 대립과 갈등 속에서 이해와 화해를 통해 변화하며 발전한다. 인생이 얼마나 크고 깊은데 온실 속에서 사탕만 빨고 산 사람이 어떻게 인생의 깊은 맛을 알 수 있겠는가.

‘맹자’는 “하늘이 사람에게 큰 시련과 고난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큰 인물로 단련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인생은 시련과 아픔으로 단련되고 완전하게 성장한다. 하늘에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듯이, 우리의 삶도 오전에는 웃고 오후에는 눈물을 흘린다. 원래가 인생은 고통과 슬픔이 전제된 고해(苦海)요, 대립과 갈등이 내포된 화택(火宅)이다. 고통의 바다를 잘 건너가고, 욕망의 불을 잘 조절하며 견디면서 살아가면 평화의 니르바나가 있다.

시인이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듯하게 피웠나니’ 라고 노래하였듯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는 심마(心魔), 즉 마음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육경(六境), 즉 환경의 역경과 고난을 견뎌내야 한다.

‘금강경’에 석가모니가 전생에 수행한 인행(因行) 설화가 있다. 인욕선인(忍辱仙人)은 가리왕에게 사지가 잘리는 능욕을 당하면서도 육신의 공(空)함을 깨닫고 인욕바라밀로 참고 견딤으로써 마침내 부처의 완전한 인격을 완성하여 불과(佛果)를 이룬다.

도종환 시인은 접시꽃 같은 아내를 잃고 그 슬픔을 시로써 승화시키고, 교육민주화운동으로 해직되는 역경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과 세상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온 몸으로 투철하게 살아서 현재는 국정을 논하는 선량이 되어 있다. 그가 이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

고은의 시 ‘부탁’이 떠오른다.

“바람에 흔들려보지 않은/ 나뭇가지/ 나뭇가지/ 어디에 있겠는가/ 괴롭다 괴롭다 마라”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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