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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불교

추석(秋夕)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이미 가을의 한복판이다. 추석이 지나면 찬바람이 일고 곧 이어 차가운 겨울이 대지에 들어찰 것이다. 그래서 추석은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마감하는 끝자락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민족은 추석에서 고향과 어머니를 떠올린다. 설이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라면 추석은 고향의 풍요로움과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손이 힘겹게 일궈낸 결실들이다. 어머니들은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추석에 올 자식들을 생각하며 늙은 몸을 힘겹게 땅에 부리며 대지에 굵은 땀을 흘렸을 것이다. 어머니의 이런 애틋한 사랑을 기억하기에 도시의 자식들은 도로가 막혀도 기어코 고향을 찾아갔다. 그래서 고향의 품에, 어머니 가슴에 안겼다. 그러나 늙어버린 고향에서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다. 추석은 고향에 살다 고향에 뼈를 묻은 조상들을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추석을 통해 도시에서 홀로 외롭게 살았던 자식들은 과거로부터 흘러내려온 핏줄의 끈끈함을 온 몸으로 확인하게 된다.

차례는 술 대신 차를 올리는 예식
삼국유사, 충담 스님 차 공양 기록
차 올리면 차례상 고기도 피해야
술 대신 차 올리는 전통복원 필요

추석을 추석답게 하는 것으로는 차례(茶禮)가 있다. 추석 차례는 한해의 결실을 조상에게 올리고 조상들의 공덕을 추모하는 자리다. 새벽 아침 터오는 먼동을 바라보며 가족 모두 함께 지내는 차례는 그날이 바로 추석임을 일깨우는 경건한 의식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추석을 지냈는지 알 수는 없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삼국유사’에 가야와 신라 때부터 ‘가배’ ‘한가위’ 등 다양한 이름으로 추석을 지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어찌됐든 추석은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추석은 고유 명절이면서 또한 불교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추석에 지내는 차례가 그렇다. 풀이하면 차를 올리는 예절이다. 차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삼국유사’에 충담 스님 관련 일화가 나온다. 서기 765년 경덕왕 24년에 충담 스님이 차를 끓여 삼화령의 미륵부처님께 차례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당시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음력 4월8일 부처님오신날에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돌아가신 큰스님들에 대한 제사 또한 불교에서는 다례(茶禮)로 표현한다. 중국의 기록이긴 하지만 가장 오래된 청규인 ‘백장청규’에 한 솥에 끓인 차를 부처님께 올리고 공양올린 사람들과 나눠마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추석이든 설이든 차를 끓여 올리는 것은 불교전통에서 비롯됐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오늘날 차례에 차를 올리는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불자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차례에 사용되던 차가 어느 순간 술로 대체돼 버렸다. 차례에 술을 올리는 지금의 모습은 조선시대 유교주의 산물이라고 한다. 또 불교가 쇠락하면서 차 재배가 힘들어져 귀한 차 대신 술을 올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호불(護佛)국가였던 신라나 고려와 달리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시대에 와서 차례의식에 차 대신 술이 올라가게 된 것은 대단히 애석한 일이다. 아마도 차를 올리던 신라와 고려 시대의 차례에는 당연히 고기가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자들에게 차례에 술을 올리는 것은 계율적으로 맞지 않다. 불음주계를 지켜야 하는 불자들이 조상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 김형규 부장
다행스럽게 근래 들어 불자들 사이에서 차례의 본래 뜻에 맞게 술 대신 차를 올리는 가정이 늘고 있다. 또 차를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기를 뺀 불교식 차례 상차림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차례에 차를 올리는 것은 마음가짐에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조상들의 공덕을 기리고 핏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조상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스스로 불자임을 되새기는 경건한 예식이기 때문이다.
올 추석부터 차례에 차를 올렸으면 한다. 전 국민이 차례에 술 대신 차를 올리는 옛 전통이 복원된다면 추석의 의미가 풍요를 넘어 삶의 바른 의미를 일깨우는 남다른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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