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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팡이 명목

불교 정착과정서 조상들 수목숭배 적극 수용한 증거

▲ 신라시대 진감국사 혜소 스님의 지팡이에서 유래된 쌍계사 국사암의 느릅나무.

사찰의 지팡이 설화는 이 땅에 불교의 정착과정을 헤아려 볼 수 있는 귀중한 통로이다. 우리 민족은 다른 문화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자연물을 숭배하는 토속신앙을 재래로부터 전승해 왔다. 선조들은 천지(天地), 일월(日月), 성신(星辰), 산천(山川)을 숭배하였고, 이와 같은 숭배의 대상들은 이 땅에 불교가 전래함에 따라 일부는 불교에 융화되었고, 일부는 민속으로 전승되거나 무교에 수용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수목숭배 수용한 흔적은
신중탱화 그림에서 확인
내소사·영국사 당산제에는
전통적 수목숭배 엿보여
고승 대덕의 지팡이 설화
12곳 사찰서 찾을 수 있어
나무숭배에 대한 흔적은
동서양 모두에서 나타나

불교가 토착신앙의 대상을 수용한 흔적은 신중탱화(神衆幀畵)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을 상·중·하의 3단으로 나누어 그린 탱화이다. 일반적으로 신중탱화의 상단에는 대예적 금강 및 8대 금강·4대 보살·10대 광명의 신중이 묘사되어 있고, 중단에는 대법, 제석천왕 및 사대천왕·대승제천·공덕천·이태선신 및 용왕·모신·수신 등과 칠월성군 및 삼태육성·아수라 등 팔부신중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하단 신중에는 호계신·복덕신·토지신·도량신·가람신·산신·강신·풍신·목신·축신·방위신 등이 그려져 있다. 신중탱화에는 옛 조상들이 숭배했던 산·물·바람·나무·땅과 같은 천지의 다양한 자연물들이 호법신의 지위를 부여받아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나무와 관련하여 불교가 수목 숭배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는 내소사의 느티나무 당산제나 영국사 은행나무 당산제로도 확인된다. 수목 숭배신앙의 또 다른 사례는 고승대덕의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사찰의 명목이다. 지팡이 설화의 명목을 보유하고 있는 사찰을 조사하니 경기도 용문사·강원도 상원사 사자암·정암사·수타사·경북 운문사·적천사·부석사·경남 해인사·쌍계사 국사암·전남 송광사와 천자암·백양사 등 12사찰에서 확인되었다.

지팡이 설화의 대상 수종은 은행나무(용문사, 적천사), 향나무(송광사, 천자암), 단풍나무(상원사 사자암), 전나무(해인사), 주목(수타사, 정암사), 느릅나무(쌍계사 국사암), 이팝나무(백양사), 골담초(부석사), 소나무(운문사) 등으로 활엽수가 4수종이었고, 침엽수가 은행나무를 포함하여 5수종이었다. 관목인 부석사의 골담초를 제외하고는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사찰의 명목들은 모두 키 큰 나무(교목)였다. 사찰의 지팡이 설화의 대상 수종이 여러종류의 수종으로 이루어진 조사결과로 미루어 볼 때, 조상들이 한정된 소수의 특정 수목만을 숭배하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숭배했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지팡이에서 유래된 명목의 수령은 쌍계사 국사암의 1200년생 느릅나무부터 수타사의 400년생 주목까지 대부분 수백 년 이상의 명목 설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상원사 사자암의 단풍나무는 설화의 유래 시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성 때문에 80여년 생으로 나타났다. 각 나무의 설화 상의 수령은 설화 주인공의 활동시기에 맞춘 것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각 명목의 수령을 직접 검증한 것은 아니다.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12곳의 명목 중 고사목인 상태로 수백 년째 보전되고 있는 나무는 송광사의 고향수였다. 수타사 주목의 경우, 몇 년 전에 고사한 그루터기가 여전히 보전되어 있으며, 오늘날 원통보전 앞에는 원 주목 가지의 꺾꽂이로 키워낸 나무를 심어 개체를 보전하고 있다. 한편 상원사 사자암의 단풍나무는 몇 년 전에 3층 전각의 증축 공사를 위해 암자 옆에 이식하였지만, 고사했다.

설화에 등장하는 향나무·매화나무·주목·은행나무·골담초·느릅나무 등은 지팡이를 꽂아도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만큼 삽목이 쉬운 수종이지만, 일반적으로 삽목으로 번식이 곤란한 수종으로 알려진 단풍나무, 전나무, 이팝나무 등도 지팡이 설화의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다. 지팡이 설화가 수목의 발근력에 근거를 둔 과학적 접근이라기보다 신통력과 기이성에 근거를 둔 종교적 콘텐츠라는 것을 시사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사찰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지팡이 설화의 명목이 나타나는데, 서울 신림동의 천연기념물 271호로 지정된 갈참나무가 그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신림동의 갈참나무는 고려시대 강감찬 장군의 지팡이에서 유래된 나무로 알려졌다.

지팡이 설화의 주인공이 활동했던 시기는 신라시대 5그루, 고려시대 4그루, 조선시대 2그루, 일제강점기 1그루로 신라시대와 고려시대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신라시대의 경우, 의상대사의 설화를 간직한 명목이 은행나무(용문사)와 골담초(부석사)로 2그루, 자장율사의 주목(정암사)과 진감국사의 느릅나무(쌍계사 국사암)가 각각 1그루씩, 승려가 아닌 고운 최치운의 전나무(해인사)가 1그루로 나타났다.

고려시대의 경우, 보조국사의 설화를 간직한 향나무(송광사와 천자암), 은행나무(적천사)로 3그루의 명목, 각진국사의 느릅나무(백양사) 명목으로 조사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법장 스님의 설화를 간직한 주목(수타사)이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한암 스님의 단풍나무(상원사 사자암)가 명목으로 조사되었다.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경우, 지팡이 설화의 주인공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없지만, 임진왜란 당시에 절집을 구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므로 조선시대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팡이 설화를 간직한 명목의 출현 시기가 신라와 고려시대 중심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불교의 수용과정에 수목을 숭배하던 토속신앙을 불교가 지팡이 설화를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지팡이 설화의 전개가 드문 이유는 불교가 전래한 이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기에 이미 불교가 이 땅에 정착하여 토착화되었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12그루의 명목 지팡이 설화 주인공 중빈번하게 등장하는 고승은 신라의 의상대사(2그루)와 고려의 보조국사(3그루)로 나타났다. 의상대사와 보조국사는 신라와 고려의 대표적 승려로서 다양한 형태의 기이한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설화의 주인공으로 충분한 위상을 갖춘 고승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체취가 녹아 있는 지팡이 설화는 옛 조상들이 수목을 숭배했던 토속신앙을 자연스럽게 불교에 융화시켜 불교의 포교활동에 이바지하였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 일본 도쿄 젠푸쿠지(善福寺)의 은행나무도 1232년경 신란쇼닌(親鸞聖人)의 지팡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국 사찰의 지팡이 명목 설화와 유사한 설화는 다른 나라나 다른 종교에서도 존재하고 있다. 일본 도쿄의 젠푸쿠지(善福寺)에 자라는 은행나무는 신란쇼닌(親鸞聖人)이 1232년경 사용하던 지팡이를 심어서 자란 명목이며, 이탈리아 베루치오 수도원의 사이프러스 명목은 성 프란시스가 1200년경 사이프러스 지팡이를 꽂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나무에 얽힌 지팡이 설화가 동서양의 대표적인 종교에서 나타나는 이유는 나무숭배에 대한 현상이 어느 특정한 지역이나 특정한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무숭배 현상은 기독교, 불교, 힌두교, 유대교에서도 종교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신성한 나무로 나타나고 있다.

고승대덕의 지팡이 설화가 수백 년 동안 사찰에서 전승되거나 설화를 간직한 지팡이 명목이 보전되고 있는 이유는 불교가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던 이 땅의 토착 신앙을 포용한 사례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꺾은 가지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새롭게 탄생하는 영원불멸의 재생성, 다른 어느 생명체보다 더 큰 덩치로 자라는 힘, 수천 년의 수명을 가진 영속성,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며, 가을이면 잎을 떨어트리는 우주적 리듬의 끊임없는 재현성은 오직 나무만이 간직한 특성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나무는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토속신앙의 좋은 대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찰의 지팡이 설화는 불교의 정착과 전파를 위해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던 조상들의 토속신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사찰의 지팡이 명목은 불교의 정착과정을 엿볼 수 있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선조들의 수목관을 확인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바로 지팡이 설화의 명목을 불교계가 보유한 소중한 자연유산이라 일컫는 이유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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