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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의 섭정원 종료선언

“일인 통치로는 티베트 민주화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 한국의 티베트 수행모임인 세첸코리아 대표 용수 스님이 9월8일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에게 카타와 불상을 올리고 있다.

“티베트가 국민에 의해 지배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우리의 정부 형태를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 국민들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에 의한 통치체제는 그 존속이 불확실합니다. 특히 미래 지향적인 우리 젊은 세대의 의견이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티베트인 대표의회에 참석하신 의원 여러분! 냐트리 첸포(Nyatri Tsenpo, BCE 127년)로 시작해 트리 랄파첸(Tri Ralpachen, 838년)까지 이어진 42명의 티베트 왕들에 의해 세 개의 지방 (Cholkha-sum)으로 구성된 고대 티베트가 통치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들의 통치는 거의 1000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티베트는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에서 몽골과 중국에 맞먹는 강력한 국가로 내륙아시아 전역에 그 이름을 떨쳤습니다. 티베트의 문화예술이 발달하면서 일군 티베트의 종교와 문화의 풍부함과 폭은 티베트 문명이 인도를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9세기에 중앙 권력이 분열하면서 각자 자신의 영토에만 권력이 국한된 여러 명의 통치자에 의해 티베트는 지배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티베트의 결속력은 약화 되었습니다. 13세기 초에는 중국과 티베트 모두 징기스칸(Genghis Khan, 成吉思汗)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드로곤 초갤 팍파(Drogon Choegyal Phagpa)가 1260년대에 이르러 티베트 주권을 회복했으며 그의 통치력은 티베트 세 지역에도 미쳤지만 그 이후 380여년 동안 팍모 드루파(Phagmo Drupas) 왕조, 린풍파(Rinpungpas) 왕조, 창파(Tsangpas) 왕조 아래서 지배자가 자주 교체됨에 따라 통일된 티베트를 유지하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중앙 권력의 부재와 잦은 내부 갈등으로 인해 티베트의 정치 역량은 쇠퇴했습니다.

1642년, 제5대 달라이라마가 티베트의 간덴 포드랑(Ganden Phodrang) 정부를 수립한 이후 후임 달라이라마들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면서 또한 세속적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5대 달라이라마의 통치 기간 동안에는 13개의 만호(myriarchy, 일만의 가구로 구성된 티베트행정구역-역자 주) 모두는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며 불교는 티베트에서 번성했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티베트는 적절한 정치적 통치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국제 관계를 발전시킬 기회조차 놓쳐버렸습니다. 13대 달라이라마는 1895년 세속적 권력을 맡게 되었지만 1904년 영국군의 침략으로 몽골과 중국으로 피신해야만 했고 청나라가 침입하자 또다시 인도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상황이 호전되어 티베트로 돌아온 13대 달라이라마는 1913년 티베트 주권을 재천명했습니다. 망명을 통해 얻게 된 교훈의 결과로 13대 달라이라마는 현대 교육을 도입했으며 티베트 정부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개혁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런 조치들은 긍정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사망 전 해인 1932년의 마지막 정치적 증언에서 명확히 드러났듯이 그의 전반적인 비전이 실현될 수는 없었습니다. 무기력한 정치적 통솔력과 섭정 관료들의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간덴 포드랑 정부는 지난 4세기 동안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국가운영을 해왔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저는 티베트의 정치 체계를 현대화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에 대해 인식해 왔습니다. 저는 16세에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떠맡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저는 국제 문제는 고사하고 티베트 자체의 정치 구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적절한 개혁을 시도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으며 몇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불행히도 제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해서 이런 개혁들을 더 이상 관철시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1959년 4월, 인도에 도착한 직후 우리는 교육, 문화보존 그리고, 공동체의 정착과 복지를 담당할 부서들을 설치하고 해당 각료들을 임명했습니다. 유사하게, 민주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60년 티베트인 대표 위원회가 선출되었으며 1963년에는 ‘미래의 티베트를 위한 헌법 초안(Draft Constitution for a Future Tibet)’을 공포했습니다.

국민의 지지와 참여 없이 특정 개인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통치 체계라면 그것은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정치과정에서 안정과 발전을 확보할 수는 없습니다. 일인 통치는 시대착오적이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나라를 모방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가장 대표적인 통치체제이기 때문에 600만 티베트인들의 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하도록 우리의 민주적 기구들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1990년 ‘망명 티베트인 헌장(Charter for Tibetans-in-exile)’ 초안을 작성할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년 후 망명 티베트인의 최고 입법기구인 ‘티베트인대표의회(Assembly of Tibetan People’s Deputies, ATPD)’의 전반적인 권한이 강화되었습니다. 1991년 제11차 티베트인 대표의회는 공식적으로 ‘망명 티베트인 헌장’을 채택했으며 모든 입법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망명 생활이라는 한계를 고려하건대 이것은 매우 자랑스러워할만한 성과입니다.

2001년 티베트인들은 정치적 지도자인 총리(Kalon Tripa)를 처음으로 직접 선출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비상근으로서 일상의 행정 업무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보편적인 인류 행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주제도의 요체는 간략히 말하자면 선출된 지도자가 국민 복리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이 완성되기 위해서 저의 공적인 권한을 선출된 지도부에게 이양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통치기구의 경험과 정치적 성숙도가 전반적으로 부족해서 이런 조치를 더 이전에 시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거의 4세기 동안 달라이라마들이 정치적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달라이라마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 정치 체제를 일반 티베트인들이, 특히 티베트에 있는 티베트인들이 생각해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50년 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정치적 의식을 고양하고 정치적 민주 과정에 그들이 참여하도록 격려해 왔습니다.

1969년 3월10일 저는 열 번째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티베트가 자국민에 의해 지배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우리의 정부 형태를 결정하는 주체는 우리 국민들이 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에 의한 통치체제는 그 존속이 불확실합니다. 특히 미래 지향적인 우리의 젊은 세대의 의견이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유사하게도, 1988년 3월10일 성명에서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이, 달라이라마 제도의 지속 여부조차도 국민들이 결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행정부(Kashag), 입법부(ATPD) 그리고, 국민들에게 마치 달라이라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정하고 티베트인들 스스로가 자국민의 행정과 복리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복해서 조언해 왔습니다. 입법부에 의해 채택된 법안에 대해 서명을 하는 것과 같은 의례적인 책임을 포함해서 저의 정치 및 행정적 지위에 따른 직무로부터 저는 벗어나야 한다고 13대 티베트 대표의회 의장과 사법부 수장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저의 제안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2010년 8월31일 티베트인 대표의회가 주관한 제1차 티베트인 총회(Tibetan General Meeting)에서 저는 이에 대해 다시금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이 더 이상 지연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모든 공식적인 지위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이번 회기 내에 망명 티베트인 헌장과 관련된 규정에 대해 모든 필요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티베트 내외의 많은 저의 동료들이 이런 위기의 시기에 제가 정치적 지도력을 계속 행사해 주기를 충심으로 요청해왔다는 것을 저는 여기에서 인정합니다. 정치적 권한을 양도하려는 의도는 책임을 회피하려거나 낙담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장기적으로, 오로지 티베트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이양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몇십 년 더 망명 상태로 남아야 한다면 제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티베트 망명정부가 달라이라마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게 되기 위해, 제가 능력이 있고 건강한 동안에 우리가 견실한 통치 체계를 구축해놓는 것이 절실합니다. 이 시간 이후로 그런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제게 요청할 경우 저는 여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체계의 구축이 지연되고, 또 제가 지도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기가 갑자기 닥치게 되면 그에 따른 불확실성은 우리를 압도하는 시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600만 티베트인들의 한 사람으로서,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민족과 특별한 역사적 숙명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그리고, 티베트인들이 저에게 신뢰와 믿음을 보이는 한 저는 티베트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망명 티베트인 헌장 31조에 섭정원(Council of Regency)에 관해 규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과거의 전통에 근거한 임시 조치를 위해 규정한 것일 뿐입니다. 헌장은 달라이라마가 배제된 정치 지도체계를 수립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헌장 개정은 정치 지도부는 국민에 의해 특정 임기 동안 선출되는 민주 제도의 틀에 부합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번 회기에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또 시행되기 위해서는 헌장의 관련된 조항과 다른 규정을 수정하기 위한 별도의 분리된 위원회를 지정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미래의 티베트를 위한 헌법 초안’(1963년)과 ‘미래의 티베트 정치 조직을 위한 지침(Guidelines for Future Tibet’s Polity, 1992년)과 같은 저의 정치적 선포의 일부는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달라이라마가 이끄는 현재의 간덴 포드랑(Ganden Phodrang) 정부의 명칭도 그에 맞춰 변경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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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은 2011년 3월14일 열린 제14차 티베트인대표의회(Assembly of the Tibetan People’s Deputies)에 보낸 달라이라마의 메시지입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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