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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파주 임진각-도라산역-영수암 터

경순왕·낙랑공주 사랑 실은 기차여 신의주로 떠나라

▲ 경의선 ‘DMZ 트레인’은 지난해 5월부터 서울∼문산∼도라산역간을 월요일과 주중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행하고 있다.

“망국의 한과 낙랑의 사랑
간직한 옛 영수암 터엔
잡풀 우거져 애잔 해
개성·임진각 반환점 삼아
남북 젊은이 함께 뛰자”

설과 추석 때마다 어김없이 붐비는 곳. 임진각이다. 서울에서 가까워 가끔 오는 곳이지만 올 때마다 숙연해 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도 어느 백발 할아버지는 자유의 다리를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고, 주름살 깊은 할머니는 망배단 앞에 두 손 모은 채 하염없이 서있다. 이산의 아린 사연 임진강 줄기만큼 깊고 길겠지. 그렇다는 듯, 그들의 눈에는 어느 새 이슬이 맺혔다.

▲ 저녁노을 머금은 임진강 위에 이어진 철교와 끊어진 철교가 나란히 서 있다.

임진강역을 출발한 ‘DMZ 트레인’이 철교로 들어선다.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기다림을 안고 도라산역까지만 가는 기차. 문용덕 시인도 저 기차를 탔었나보다.

‘경의선 기차를 탔다/ 옛날 수학여행 가는 들뜬 마음이다./ 강 건너 산 넘어 신의주 가는 길 더듬으며,/ 고향 땅 밟는 기분으로 도라산역에 발을 댔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절규하더니/ 반세기가 걸려/ 겨우 임진강을 건너고/ 또, 멈추었나//’(시 ‘도라산역’ 중에서)

▲ 50여년 동안 군포교에 매진해온 이재성 거사는 만나는 지인마다 영수암 복원에 힘써 줄 것을 당부한다.

오늘 동행길에 오른 이재성 분단희생자추모사업회 회장도 ‘오십년 끊긴 안부가/ 바람으로 서 있다’로 시작하는 ‘망향’ 시비 앞에 한참을 머무른다. 3·8선 그어진 후 서울에 둥지를 틀었지만 그도 고향이 북한 땅 장단이다. 그 곳에 형이 살아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15살 되던 해, 개성 외가댁 다녀오던 중 형은 자신의 생모가 보고 싶다며 장단의 강상면 마성리로 향했다. “가지 말아 형!” 동생의 마지막 만류마저도 뒤로 한 형은 산등성이를 넘었다. 형은 돌아오지 못했고 그 해 6·25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오늘은 영수암 답사팀과 동행한 여정이기에 임진강철교 대신 통일대교를 이용해 강을 건너 도라산으로 향했다. 해발 156m의 작은 산이지만 개성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산이다. 그 곳에 영수암이 있었다.

▲ 분단의 아픔이 서린 리본.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은 즉위 10년(879년) 고위급 회의를 열어 고려에게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찬반 목소리가 뒤엉켜 있을 때 큰아들 김일이 절규했다. “나라의 흥망은 하늘의 뜻인데 어찌 1000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포기한단 말입니까? 저는 무릎 꿇지 않겠습니다.” 경순왕은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 “형세는 이미 기울었다. 백성의 목숨, 승산 없는 전쟁에서 잃게 할 수 없다.” 큰아들은 삼베옷 하나 입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나물로 연명하다 생을 마쳤다. 마의태자다. 막내아들은 범공이란 법명으로 입산출가했다.

경순왕은 송도를 찾아 왕건에게 나라를 받쳤고, 왕건은 자신의 딸 낙랑공주(樂浪公主)를 경순왕에게 보내 아내로 맞게 했다. 나라 잃은 슬픔에 잠겼던 경순왕은 홀로 산에 올라 신라(新羅)의 옛 도읍(邑)을 그리워했다. 도라산(都羅山)이라 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낙랑공주는 경순왕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암자를 짓고는 ‘영원히 이곳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영수암(永守庵)’이라 했다.

망국의 한과 낙랑의 사랑이 배인 영수암은 이미 허물어진지 오래일뿐더러 사지마저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자칫 전설 속에 묻힐뻔한 영수암 찾는 사람이 있다. 이재성 회장과 김효율 인천대 명예교수다. 2003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2년째다. 사적지 관련 문헌을 샅샅이 뒤졌음은 물론 민통선 노인들과 파주시민을 중심으로 한 증언도 채록해갔다.

2006년 8월 이재성 회장 외 100명은 영수암터에 표목 설치를 허가해 달라는 민원을 파주시청에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파주시청은 ‘불가’를 통보했다. 기초적인 유적발굴조사를 통한 확인이라도 있어야 표목설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종단이나 불교학계가 뛰어 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 영수암 터에서 김호철 도라전망대 반장이 주변 지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태회 거사, 천경 스님(1사단 12연대 군종장교), 이재성 회장, 우관재 파주시문화원장, 한길룡 경기도의원, 김효율 인천대 명예교수.

영수암터는 도라전망대를 기준으로 오른쪽 길 바로 옆에 있었다. 허나 가는 길은 없다. 우거진 잡풀을 헤집고 길을 만들며 걸어야만 한다. 산 속으로 50m쯤 들어가자 암자 앉을 법한 평탄한 터가 있다. 우물터가 있고 기와도 흩어져 있다. 여기가 영수암 터일까? 

경순왕은 고려경종 3년(935)에 승천했다. 영수암이 조금씩 훼손되어 가자 또 다시 절을 건립해 경순왕의 명복을 기원했고, 영원히 번창하라는 뜻에서 창화사(昌化寺)라 불렀다. 창화사는 6·25한국전쟁 당시 전소됐다고 한다.

영수암을 보수하며 창화사라 했는지, 아예 새로운 절을 지어 창화사라 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김효율 교수 분석은 이렇다.

“‘창화사는 도라산에 있다’는 기록과 ‘창화사를 영수암이라 불렀다’는 증언기록까지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낙랑공주는 영수암을 보수해 창화사라 불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 새로운 절을 지었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가 배인 영수암 지근거리에 두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이 터가 영수암터든 창화사터든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과 김 교수가 판문점 JSA 내에 군법당을 마련하며 ‘영수사’라 한 것도 통일과 함께 영수암 복원불사도 이뤄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31일 멈췄다. 1000여개의 총탄자국이 있다.

도라산역에 서있는 ‘평양 205Km 도라산 서울 56Km’표지판이 왠지 아련하게 들어온다. 신의주를 향해 길게 뻗은 선로를 묵묵히 지켜보던 이재성 회장이 한마디 건넨다.

“언제쯤 저 철길 마음껏 달릴 수 있을까! 몇 겹의 산이 막고 있어도 우리는 가야 해요. 개성과 임진각을 반환점 삼아 뛰어보기라도 해야지요. 서로의 어깨 맞대고 뛴다면 땀 냄새인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로 변하지 않겠습니까. 남북의 젊은이들이 함께 뛰는 그 순간 지구를 통째로 흔들만한 기운이 용솟음칠 것이고, 그 기운이 저 기차를 신의주까지 밀어올릴 겁니다.”

임진강역서 개성역까지는 22Km. 남북이 지혜를 모아 길을 낸다면 마라톤 코스로 제격이다. 꼭 뛰지 않으면 어떠한가. 힘들면 걸으면 된다. 하프 마라톤도 좋고 10Km코스도, 5Km코스도 좋다. 도라산역에서 단 몇 걸음이라도 더 내딛어 보자는 거다. 몇 보 안 되는 짧은 걸음이라도 잇고 또 이으면 개성과 대동강, 평양을 지나 남시를 거쳐 신의주까지 이르지 않겠나.

▲ 평화누리공원의 바람개비.

정끝별 시인이 그랬던가. ‘당신이 나를 동무라 부르면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겠습니다.’ 그 마음과 안부 한 마디 평화누리 공원 바람개비에 실어 보내고 싶다.

“동무, 송악산에도 한가위 보름달 떴습니까? 이제 곧 단풍 들겠습니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파주 임진각 주차장. 임진각 전망대에 오르면 자유의 다리와 임진강철교, 끊어진 철교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도라산역으로 갈 수 있는데 가능한 한 임진강역에서 출발하는 ‘DMZ 트레인’을 권한다. 신분확인 절차가 있으므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만 한다.
임진강역에서 신분확인을 마친 승객에게는 출입증을 나눠준다. 선택한 상품에 따라 ‘일반관광’과 ‘안보관광’이 적힌 출입증을 받는다. 도라산역을 떠날 때까지 출입증은 신분증과 함께 항상 휴대해야 한다. 개성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도라전망대에 가려면 ‘안보관광’을 선택해야 한다.
임진강역으로 돌아온 후에는 평화누리공원을 꼭 한 번 산책하기를 권한다. (임진각 관광안내소 031-953-4744)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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