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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와 민주주의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근현대 독재자들은 국민에 대한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왜곡된 역사를 교육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지났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 역사편찬과 교육은 정부나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선거로 나라의 대표를 뽑듯이 역사 또한 국민의 손에 넘어왔다.

역사 입맛대로 가르치겠단 발상
민주국가선 있을 수 없는 폭거

국정교과서, 교사 77.7%가 반대
친일독재미화, 역사에 기록될 것

그런데 최근 역사교육현장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정부가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을 시작으로 연세대, 고려대, 부산대, 동국대, 한국교원대 등 역사전공 교수들과 인문사회학 교수들의 반대성명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정부의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은 예견된 일이었다. 2011년 교과부가 역대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4·19혁명을 ‘데모’로 폄하한 영상물을 일선 학교에 배포할 때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뉴라이트 학자들이 중심이 돼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황당한 내용 외에도 1000곳 이상의 오류가 발견된 엉터리 책자였지만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정부는 노골적으로 일선 학교에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강권했다. 그러나 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에 부딪쳐 단 한 곳 외에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자 느닷없이 ‘좌파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해 단 하나의 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밝혔다. 특히 여당의 김무성 대표는 미국에 가서도 학생들을 좌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역사를 거슬러 과거를 살펴보면 국정교과서를 강요했던 나라들의 현실은 암울했다. 독일이 나치 지배 아래 놓였을 때,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제국주의 일본이 교과서를 국정화해 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쳤다. 우리도 헌법을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들을 협박했던 유신시절에 교과서가 국정화 됐다. 당시 국사교과서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 헌법을 개정하고 10월 유신을 단행했다”고 기술돼 있다. 부정비리로 얼룩진 전두환은 “제5공화국은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비능률, 모순, 비리를 척결했다”는 식의 낯부끄러운 내용을 역사라고 가르쳤다. 민주화와 더불어 무덤 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던 국정교과서의 악몽을 박근혜 정부가 다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OECD 34개국 중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정부의 검인정 제도까지도 없앤 나라가 절반이나 된다. 정부는 자학사관과 좌편향을 극복하기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학사관은 일본 용어다. 일본은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며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를 입었던 우리를 모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 일본의 자학사관을 받아들여 우리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은 일제강점기가 우리 근대화의 초석이 됐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사실상 자발적 해외취업이라는 망언을 쏟아낸 인물이다.

▲ 김형규 부장
이런 매국적인 관점이 자학사관의 극복이라면 다시 일제강점기로 돌아가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특히 좌편향이라는 말이 고약스럽다. 검인정 교과서들은 교과부의 검정을 통과한 책들이다. 그럼에도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좌편향으로 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학문의 영역에서 바라봐야한다. 정직한 역사교육을 통해 학생들을 옳고 그름에 대해 용기 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국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돼야한다. 그러나 정부는 역사교육을 정치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억해야 한다. 독재정권으로부터 획일화된 교육을 받았던 세대들이 민주화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일제와 독재미화에 앞장서고 있는 현 정부를 역사는 또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반드시 돌이켜봐야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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