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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지도자들과 사중은

대법원은 지난 8월20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과 추징금 8억8300만원을 확정했다. 이는 그녀가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불구속기소된 지 5년 그리고 대법원에 상고된 지 2년 만에 대한민국 사법부가 내린 판결이다.

대법원의 유죄판결이 선고되자 한명숙 씨는 “정치권력이 개입한 불공정한 판결”이고 자신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죄판결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을 말살하려는 신호탄”이라며 재판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야당 지도자들의 이러한 발언은 우리나라 사법부의 권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부적절한 행위로 볼 수 있다.

한명숙 씨는 검찰에서 조사를 받을 때 성경을 손에 들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청렴과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꽃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또 선고 후 4일간의 말미를 얻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한명숙 씨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권좌에 오른 여성 정치인이다. 우리가 그녀가 재판과정에 보여준 일련의 언행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은 그녀가 갖는 이러한 특별한 위상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생존은 ‘네 가지 막중한 은혜(四重恩)’ 때문에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즉 부처님의 은혜, 국가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그리고 동포들의 은혜를 말한다. 부처님의 은혜는 곧 진리의 은혜를 말하며 그 진리는 우리의 마음에 양심으로 나타난다. 국가의 은혜를 옛날에는 왕이나 국가 통치자의 은혜로 나타내기도 했다. 현재의 예로서는 지금 북한 동포가 김정은의 은혜로 산다고 하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인 한명숙 씨가 검찰조사에서 성경을 들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법정에서 유죄판결이 내리자 ‘양심의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진리에 대한 은혜를 갚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성경이 자신에게 검찰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양심이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기독교인과 양심적인 국민 중에 그녀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한명숙 씨는 김대중 정권 때 장관을 지내고 노무현 정권 때 총리가 되었다. 따라서 그녀가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에 그녀에게 관직을 준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일종의 국가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녀가 ‘역사의 법정에서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시대였다면 그녀가 투옥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녀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그녀가 부끄러운 범죄로 수감되기 전 전직 대통령들의 묘소를 참배한 것은 그녀에게 막중한 권력을 위임한 그들에 대한 보은이 아니라 오히려 누를 끼치는 행위가 아닐까?

많은 국민들이 강하고 합리적인 야당이 존재하여 여당을 견제하고 또 필요한 경우에 정권 교체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만장일치의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이를 야당탄압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법조인인 그가 오늘의 출세를 가능하게 한 대한민국과 그 사법체제의 막중한 은혜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대권을 꿈꾼다면 먼저 그럴만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그릇이 못 되는 사람이 분에 넘치는 자리를 탐하면 뜻을 이루기 어렵고 또 이룬다 해도 결국 자신과 국가에 큰 재앙을 불러옴을 알아야 한다.

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불교의 ‘사중은’을 존중하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얄팍한 정치공학에만 의존하는 지도자로서는 성공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웃음거리로 오래 남게 될 것이다.

이기화 서울대 명예교수 kleepl@naver.com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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