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사불교명상센터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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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09.30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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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꽉 움켜쥔 새는 날아오르지 못한다”

▲ 심월당(心月堂) 쪽마루에 걸터앉는다. 마음도 쪽마루 걸치고 앉았다. 번뇌는 발아래 내려놓았다. 짐 내려놓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행자들이 있는 그대로 웃었다.

하늘이 검다. 먹먹해진 마음에 빗소리 가득했다. 번뇌도 ‘의지’를 자양분 삼아 자랐다. 무심한 시간이 흘렀다. 구름이 비 쏟아내자 하늘은 깊어졌다. 3박4일 호흡, 걷기, 자애명상으로 ‘놓아버리기’를 연습한 이들 마음도 비운 만큼 깊어졌다.

몸 고통 조복 받는다는 편견
3박4일 집중수련하며 사라져
‘때문에’였던 마음은 ‘덕분에’
내달리는 수행보다 멈춤 발원

입재부터 회향까지 스님 동참
수행자, 좌복 정리 등 솔선수범


매일 진행된 인터뷰가 회향 전날 밤은 특별했다. 조금씩 맑아지고 가벼워진 마음을 나눴다. 고통을 의지로 넘어서려고 했던 허상철(45, 가명)씨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몸이 좋지 않다는 의사 말에 폭음을 일삼으며 몸무게가 100kg까지 불었던 그였다. 일종식하며 수행을 이어오며 몸을 조복시키자 85kg까지 빠졌다. 이런 작은 성공 경험은 이번 집중수련에서도 그대로 적용했고, 명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의지’로 호흡을 붙잡으려고 하니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나 호흡을 놓치면 찾느라 ‘의지’를 일으켰다. 호흡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면 ‘뭘 해야 되나’하는 고민이 생겨 마음은 늘 분주했다.

“번뇌는 의지를 자양분 삼아 자랍니다. 호흡이 사라져도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찾기 시작하면 의지가 작용하면서 여러 번뇌가 일어납니다. 굳이 찾지 않아도 호흡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들고 나가고 있습니다.”
스님은 명상이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기 식’대로 하려니 힘들다고 했다. 크고 작은 자신의 성공체험을 수행에도 그대로 적용하면서 왜곡한다고 경계했다. 바른 이해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세속적인 성공은 윤회 흐름을 따라가고, 명상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스님과 인터뷰하며 점검 받아가자 그는 달라졌다. 무겁게 지니고 다녔던 편견이 사라지자 몸도 마음도 고즈넉해졌단다.

“명상이나 참선은 꽉 움켜쥐고 가야한다는 믿음이었다. 고통도 의지로 넘고 나면 사라지는 경험이 있었다. 놓아버리기 명상은 놀라웠다. 의지로 힘겹게 넘었던 그 경계를 너무 쉽게 지나쳤다. 처음엔 올까 망설였지만 잘 왔다. 중요한 가르침을 얻었다.”

▲ 잡초를 뽑는 등 청소울력은 수행자들 몫.

수행을 대하는 고정관념이나 편견, 고통을 이기려는 ‘의지’ 등은 몸과 마음에 긴장을 불러오는 원인이었다. 단단하게 굳은 마음근육에 번뇌망상이 부딪히니 고통이 뒤따랐다. 오히려 이완시키니 바람 드나들듯 번뇌망상이 걸림 없이 드나들었다. 머물러도 잠시뿐이었고, 나가도 흔적 남지 않았다.

이순향(52)씨는 메말라서 갈라졌던 마음이 촉촉해졌다. 처음 접한 자애명상이 그를 바꿨다. 예상치 못한 변화는 유쾌했다. 그는 이제껏 인간관계에서 생긴 갈등을 덮어왔었다. 스스로 ‘까짓것 내가 용서해주지 뭐’라고 생각하며 잊고 지냈다. 자애명상은 살짝 덮어뒀을 뿐이라고 그를 깨우쳤다. 입으로만 용서하고 말았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다. 갈등으로 생긴 상처에 켜켜이 먼지가 쌓였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일제히 먼지 피워 올려 온전히 상처를 드러내고 말았던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니 작은 깨달음이 왔다. 자신으로 인해 고집으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었다. 우선 자신부터 알아야했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나왔더라.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은 ‘내가 옳다’는 아상에서 비롯된 분노였고 어리석음이었다. 예전에는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때문에’라고 생각했다. 자애명상으로 달라졌다. 지금은 ‘~덕분에’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갈등 빚었던 상대 ‘덕분에’ 이 수행을 만났고 정말 감사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존심에 끄달리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 큰 선물을 받았다.”

놓아버리니 그대로 편안했다. 쫓기지 않았다. 불안하지 않았다. 답답하지 않았다. 황성운(41, 도원)씨는 그랬다. 그는 기공으로 호흡수련을 했다. 편찮으신 어머니 간호를 위해 알아보던 여러 대체의학 가운데 하나가 기공호흡수련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잔 브람 스님의 ‘놓아버리기’ 책을 만났고, 불교로 시선을 돌렸다. ‘놓아버리기’가 소개하는 명상법으로 호흡을 알아차려나가다 한 경계를 체험했다. 가느다란 실처럼 느껴지는 호흡이 코에서부터 단전까지 직선으로 내려왔다. ‘놓아버리기 명상’ 1기생으로 등록하고 꾸준히 정진했으나 답보상태에 빠졌다. 이번 수련에 동참해서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흡족했다. ‘수행이 왜 이렇게 안될까’하는 번뇌에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어서다.

박병규(49, 혜천)씨는 집중수련에서 또 한 번 막힌 체증이 내려갔다. 간화선에만 빠져있던 그였다. 번뇌로 진정한 쉼이 이어지진 못했지만, ‘놓아버리기 명상’이 꼭 맞는 옷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그리고 발원했다.

“달려가는 수행이 아니라 멈추는 수행을, 움켜쥐려는 수행이 아닌 놓아버리는 수행을 계속하리라.”

혜안 스님은 당부했다. 일상에서도 명상을 놓지 말라고 했다. 누워 있든지 앉아 있든지 걷고 있든지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가장 두드러진 행위 자체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했다. 대상으로 삼은 주제 외에 다른 생각, 즉 번뇌망상을 버리면 된다고 일렀다.

“호흡명상, 걷기명상, 자애명상 등 정해진 것만 명상이라고 여긴다면 본질을 많이 놓치게 됩니다. 일상에서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명상 주제를 넓게 잡아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슬쩍’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살짝’ 집어서 ‘슬쩍’ 그리고 멀리 던져 버리세요. 마음이 훨씬 가볍고 편안해집니다.”

▲ 3박4일 집중수련 회향식.

회향 예불을 마치고 심월당(心月堂)에 하나둘 모였다.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마음도 쪽마루 걸치고 앉았다. 번뇌는 발아래 내려놓았다. 짐 내려놓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순간, 수행자들은 있는 그대로 웃었다. 웃을 뿐, 다른 잡념일랑 심월당에 이는 바람에 실려 보냈다.

날개 깃털에 물기 말랐다. 나뭇가지 꽉 움켜쥐었던 발에 살짝 힘을 뺐다. 이윽고 하늘 올려다본다. 시선에 마음처럼 깊어진 하늘이 담긴다. 하늘 가렸던 구름 몇 조각 미끄러지듯 흐른다. 문득 나뭇가지 흔들린다, 가볍게.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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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마음 넓게 펴주고 싱그러움 채울 수 있어

직접 체험해보니

정갈하고 조용한 수행도량
몸·마음 편히 쉬기에 ‘제격’

▲ 새벽예불 뒤 명상은 잠보다 달콤했다.

싱그럽다. 색깔로 표현하면 초록이다. 눈이 와도 늘 그럴 것만 같다. 창원 신불사불교명상센터 첫인상이다. 그래서일까. ‘놓아버리기 명상’ 3박4일 집중수련 일정 내내 몸과 마음 모두 싱그러움에 빠져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이리저리 날 뛰지 않았다. 날 뛰어도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번뇌도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을 주제로 명상에 임할 때 온전한 몰입과 알아차림이 되지 않았어도 그렇게 불안하지 않았다. 이전 수행현장 취재와 달랐다. 뭔가 얻어가야만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 조급했다. 물론 여느 수행처에서나 강박은 번뇌라며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그런 가르침이 머리로는 이해가 됐지만, 정작 마음은 거기에 신경 쓰면서 무거워지기도 했다.

신불사불교명상센터는 가벼웠다. ‘슬쩍’ 집어서 마음밖에 ‘살짝’ 놓으라고 일렀다. 설사 그렇게 못했더라도 자책하지 말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청량한 수행처에서 취재한다며 누군가는 ‘푹 쉬러 간다’고 농담 섞인 말로 격려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늘 기사작성을 위해 뭔가를 체험해야 한다는 불안과 걱정으로 마음은 쪼그라들었다. 잘 안 되면 긴장과 조급함으로 수행도 취재도 안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기도 했다. 적어도 신불사불교명상센터에서는 악순환이 되진 않았다.

호흡이든 자애든 걷기든 모든 주제를 갖고 하는 명상에서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흘러내리도록 가만히 뒀다. 마음이 편했다. 그러니 주위 소리가 마음으로 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심월당 처마에 부딪쳐 잘게 퍼지는 빗방울 소리, 도랑에 물 흘러가는 소리, 가끔 이는 바람소리….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좋아 행복감이 들었다.

‘마음도 심심할 수 있구나.’

한 가지 깨달았다. 하루 8만6400초 동안 1초도 앉아 있지 않고 걱정에 재미에 슬픔에 기쁨에 빠져있던 마음이 모처럼 심심했다. 심심하면 공허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심심해도 충만했다.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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