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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석담무갈(釋曇無竭)

기자명 성재헌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을 읽은 적이 있다. 다짐하지 않아도 자주 생각하면 저절로 닮아가는 게 세상 이치이다. 수많은 대승경전에서 불보살을 찬탄하며 그들의 삶을 되새기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꿈에서도 잊지 못하는 그가 삶을 불안하게 하고, 조급하게 하고, 안달복달하게 한다면 잊지 못할 그 사람은 삶을 옥죄는 번뇌의 사슬이 되고, 그를 놓지 못하는 건 욕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심장에 새겨진 그가 삶을 평안하게 하고, 맘을 숙연하고 부드럽고 가볍게 한다면 각인된 그 사람은 열반의 세계로 이끄는 길잡이가 되고, 그를 되새기는 건 고달픈 삶의 위로이자 비원(悲願)이 될 것이다.

법현 스님 인도방문 소문에
부처님 사리에 공양 서원해
승맹·담랑 등 25명과 인도행
어려움 극복하며 순례 회향

그런 그리움은 곁에서 지켜보는 이마저 전율케 하는 힘이 있다. 온갖 삶의 역경과 시련마저도 그림 속 배경처럼 그의 몸짓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풍경이 된다. 그리운 부처님과 부처님의 말씀을 찾아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던 구법승(求法僧)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감동적이다. 석담무갈(釋曇無竭) 역시 그 가운데 한분이시다.

석담무갈은 중국말로 법용(法勇)이다. 그가 스승을 따라 불법을 배우던 사미시절에 직접 부처님 나라에 다녀온 법현(法顯)스님이 귀국했다. 소문을 들은 담무갈은 한편으론 그들이 부럽고 한편으론 자신이 한스러워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도 부처님 나라로 직접 찾아가 부처님 사리에 직접 공양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유송(劉宋) 영초(永初) 원년(420), 담무갈은 승맹(僧猛)과 담랑(曇朗) 등 뜻을 함께하는 25명과 함께 인도로 출발했다. 하남국(河南國)과 해서군(海西郡) 을 거쳐 죽은 짐승의 뼈마저 햇살에 바스러지는 고비사막을 횡단하고, 구자국(龜玆國)과 사륵국(沙勒國)을 지나 마침내 파미르고원에 올랐다. 이젠 설산(雪山)을 넘을 차례였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안개에 첩첩 봉우리와 만년설, 아찔한 계곡 사이는 폭류가 휩쓸고 있었다. 그들은 양쪽 기슭에 매어놓은 한 가닥 밧줄을 잡고 계곡을 건너야 했다. 밧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을 염려해 열 사람씩 건넜고, 기슭에 닿은 사람들은 연기를 피웠다. 연기가 피어오르면 무사히 도착한 것을 알고 다음 사람들도 계곡을 건넜다.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고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으면 사나운 바람에 줄이 흔들려 계곡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수없는 계곡을 건너고 3일이 지나자 깎아지른 절벽이 앞을 막아섰다. 대설산(大雪山)이었다. 유리처럼 반들반들한 바위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다행히 절벽에는 누군가 뚫어놓았을 구멍이 꼭대기까지 쌍쌍으로 이어져 있었다. 네 개의 말뚝을 이용해 아래 말뚝을 뽑아 위로 꼽아가며 기어올라야 했다. 꼬박 하루를 오르고서야 마침내 평지에 도착했다. 점검해보니, 동료 열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담무갈 일행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설산을 넘어 드디어 계빈국(賓國)에 도착했다. 그 나라에 봉안된 부처님 발우를 친견하는 순간, 그들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그치질 않았다. 담무갈은 그 나라에서 1년 남짓 머물며 범서와 범어를 배웠고, 또 중국에 전해지지 않았던 ‘관세음수기경(觀世音受記經)’ 1부를 구하게 되었다. 그리움에 사무친 그들의 여정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길을 나선 13명은 ‘사자의 입[師子口]’이라 불리는 신두나제하(辛頭那提河)에 이르러 하천을 따라 서쪽 월지국(月氏國)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처님의 육계(肉)와 불정골(佛頂骨)에 예배했다. 그리고 단특산(檀特山) 남쪽의 석류사(石留寺)에서 불타다라(佛馱多羅)라는 고승을 만났다. 그분의 가르침과 행실에 감동한 담무갈은 그를 화상으로 삼고 구족계를 받았다. 그곳에서 3개월의 하안거를 보낸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나 중천축국(中天竺國)으로 향했다. 광활한 벌판을 넘어 중인도로 가는 길, 그곳엔 인가도 없고 먹을 물마저 귀했다. 그들에게 식량이 될 수 있는 건 벌꿀뿐이었다. 팍팍한 먼지만 가득한 그 길에서 담무갈은 동료 13명 가운데 또 8명을 잃었다.

살아남은 다섯 명은 사위국 기원정사 참배를 시작으로 수많은 불적에 공양하였고, 항하를 건너 붓다가야의 보리수에 예배했다. 그리고 남천축국을 돌아 배를 타고서 고향땅 광주(廣州)로 돌아왔다. 꿈에 그리던 부처님을 찾아 목숨을 걸고 길을 걸었던 그들, 고향에 도착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부처님을 많이 닮아있었을 것이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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