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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임진억 씨

기자명 법보신문

▲ 심지화·43
‘기도를 해야 하는데….’

꿈속에서도 생각한다. 잠과 사투를 벌이다 깊은 잠도 못 잔다.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난 뭐하고 있나.’ 이따금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다시 도약하고자 삼배로 하루를 연다.

‘기도를 중단하지 않고 여법하게 잘 이어가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이렇게 다짐한다. 그동안 몇 차례 게으름을 피워 기도를 생략하곤 했다. 그럴때도 마음은 늘 기도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반야심경’ 사경책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친구 권유로 시작한 기도
내용·뜻도 모른채 하니
숙제로만 여겨지기도

매일 108배·사경 정진
목표 세우고 성취해가며 
 간절함·행복도  깊어져

100일 입재하고 회향하면 1차 기도,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8차 기도까지 왔다. 얼마 전 주지스님으로부터 ‘세향’이라는 기도반 이름을 받았다. 도반들 모두 잘 해왔다는 하나의 선물인 셈이다. 이게 계기였다. 미뤄둔 기도에 다시 발을 들인다. 마음을 동참시키고 몸도 동참시키고 의지를 세우기로 했다. 갑자기 모든 게 편안해졌다. 100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날마다 마음은 두 갈래로 편을 나눠 싸운다. 하지만 오늘도 난 108배로 아침을 맞이한다. ‘세향’. 세상에서의 향기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모두가 여법하게 이어온 덕에 세상에 향기가 되어 퍼지리라…. 초발심을 되새기며 처음 기도할 때가 떠오른다.

기도가 뭔지, 사경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친구들 몇 명과 선생님 권유 한 마디로 시작됐다. 삼배 예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언가 이끌려만 가는 것 같았다. 21일 기도가 시작됐다. 매일 108배하고 사경하고, 108배하고 사경했다. 처음이라 나름 재미도 있었다.

사경은 ‘반야심경’에 담긴 부처님 말씀에 마음을 덧입히는 수행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리 웃음이 나는지. 알지도 못하는 언어들로 줄줄이 무슨 주문마냥 늘어서 있는 글들에 웃음을 참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짧게 여겨졌던 기도는 멀어져 갔다. 기도가 아니라 숙제였다. 안 하고 자는 날이면 강박관념에 시달려 꿈속에서도 헤맸다. 새벽녘에도 했다. 그런 숙제가 이어져 100일이 되고 700일이 됐다. 이제 1000일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숙제는 점점 기도가 돼 가고 있었다. 아직 무엇을 참회하고 무엇을 발원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도하며 만난 좋은 인연들과 사찰을 순례하며 행복을 채워나가고 있다.

찬불가 보급에 애써 온 대륜사 덕신 스님을 모시고 동화사와 은해사를 참배했다. 도반들과 자장암을 비롯해 통도사의 작은 암자들을 찾기도 했다. 나한기도도량 운문사 사리암을 찾아 도반들과 철야로 기도하며 잠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잠이 나를 누르는 바람에 하염없이 꾸벅꾸벅 인사만 드리고 왔다. 이렇게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노라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경내가 정갈한 운문사 마당에서 사진 찍으며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 피웠던 추억들…. 1000일 기도여정이 빚어낸 마음속 풍경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간절함은 더해갔다.

‘항상 깨어있기를….’

내 마음 안의 화를 내려놓고, 사람들과 관계 속 갈등도 비워내고, 좀 더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하고, 하나씩 마음을 맑음으로 채워갔다. 그렇게 사경으로 부처님 가피 속에 좋은 기운을 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알 수 없는 기도여정에는 분명 부처님 가피가 있으리라 믿는다.

어느 순간에는 뚜렷이 알게 되리라. 알 수 없는 이 좋은 기운이 맴돌고 있음을, 세상 속 향기로운 존재로서의 나를….

오늘도 108배로 하루를 연다.

[1312호 / 2015년 9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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