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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단장이 답해야

  • 기자칼럼
  • 입력 2015.10.05 12:35
  • 수정 2015.10.07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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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단장님은 서구의 여러 철학자들을 돌아가며 불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안 되는지요?…서양 철학자와 서양문학작품을 다루는 것이나 연구방법론상으로 동양의 불교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와 그분은 유사하다고 사료되는데 과연 저와 그분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기에 이에 대한 해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한 A교수는 최근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자신의 연구계획서를 탈락시킨 담당부서 책임자인 인문학단장과 자신의 연구 방법이 무엇이 다른지 되물었다. 인문학단장을 맡고 있는 김진 울산대 교수는 ‘칸트와 불교’ ‘니체와 불교적 사유’ ‘하이데거와 불교적 사유’ ‘쇼펜하우어와 초기불교의 존재이유’ 등 불교와 서양철학을 비교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이기 때문이다.

A교수가 심사결과와 관련해 인문학단장의 연구 경향을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은 불교와 서양문학을 비교하는 자신의 연구 경향과 다르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그 배경에는 자신의 학문적 의의에 대해 가장 깊이 이해해줄 수 있으리라는 믿는 선배 학자에 대한 실망감도 깊이 배어있었다.

법보신문에 여러 차례 보도됐듯 A교수는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에서 17세기 영국의 저명 시인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의 시를 진속불이의 불교적 관점에서 연구하겠다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선행연구가 국내외적으로 여러 번 시도됐다” “이미 진부한 주제” 등 이유로 탈락됐다.

A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평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 자료의 제시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은 역사적으로 존 던이 불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황에서 A교수가 이미 4편의 논문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신청자의 선행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이 장려하는 사항이었으며, 정작 국내외적으로 여러 번 시도됐다는 논문 목록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A교수가 자신의 연구가 정말 진부한 지 미국의 존던학회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물었다. 그러나 존던학회장은 “진부하지 않으며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자신의 견해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A교수는 자신의 학문이 부정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의 지속적인 이의제기가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이후 A교수는 한국연구재단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으나 비슷한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감사실, 행정감찰관인 옴부즈맨 교수 2명에게까지 자신의 사연을 이메일로 보내 놓은 상황이다. 그리고 오랜 망설임 끝에 한국연구재단에 인문학단장과 자신의 연구방법론상의 차이점까지 묻게 된 것이다. 이는 개인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넘어 한국연구재단의 심사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자신이라도 앞장서겠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진 단장은 사실 불교학계로서는 큰 은인이다. 불교와 서양철학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을 통해 불교학의 지평을 크게 넓혔으며, ‘무아와 윤회’ 논쟁을 주도함으로써 불교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불교와 관련된 한국연구재단 연구지원 사업들이 다수 선정된 데에도 그의 관심과 애정이 없었으면 쉽지 않았으리란 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이재형 기자
이번 A교수의 이의 제기와 관련해 인문학단장으로서 답답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소수의 견해가 외면 받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수개월 째 심사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당사자를 위해 인문학단장이 나서야할 때인 듯싶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고 보다 공정성을 견지할 수 있는 제도개선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당사자를 적극 이해시켜 억울함을 해소시켜 줄 일이다. 그것이 인문학의 대선배로서의 역할이자 열린 학문의 정신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13호 / 2015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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