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소유와 경제활동

대학시절 수행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학교를 휴학하고 수행을 지도하는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인 수행을 했다. 수행에 진척이 있어 전문적으로 수행자의 길을 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먹고 사는 부분은 노동을 통해서만 해결된다. 스님이 될 생각이 아니라면 학교에 복귀해 대학을 졸업하고 하루빨리 직업을 가져야 한다. 수행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려고 들면 그때부터 수행은 직업이 되고 만다. 수행은 매일 30분 정도 잊지 않고 아침에 좌선에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부처님, 정당한 재화획득 독려
경제활동 부정했다 주장 편견

근래 경제활동 지나치게 부각
무소유 정신이 퇴색될까 우려

선생님 말씀에 따라 대학으로 돌아가 졸업하고 직업을 가졌다. 매일 30분 좌선은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은 평생의 교훈이 됐다. 수행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접고 의식주는 건강한 노동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은 것이다.

불자들은 신행을 이야기할 뿐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교가 기본적으로 탐욕을 멀리하고 청빈과 무소유를 강조하다보니 경제적 활동자체가 경시되는 분위기다. 특히 가난한 여인의 빈약한 등 하나가 왕과 부자들의 크고 화려한 등보다 훨씬 귀하다는 ‘현우경’의 빈자일등(貧者一燈)에 관한 고사가 부(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를 쌓은 것은 불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삶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의 가난을 위안 삼기도 한다. 재물은 부정한 것이므로 되도록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스님들의 가르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불교경제학’이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경제활동에 대한 다른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청빈과 무소유는 출가수행자들에 대한 가르침일 뿐 일상에서 생활을 영위해야하는 재가자들에게 부처님은 정당한 방법에 의한 재화획득을 오히려 독려했다는 주장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경제에 관한 획기적인 개념이 들어있다는 논거는 서양경제학자 슈마허에 의해 제기됐다. 1973년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책을 통해 불교경제학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 이후 국내에서도 논문 발표와 세미나 등을 통해 불교경제 혹은 불교경영학에 대한 논의들이 꾸준히 제기됐다. ‘잡아함경’ ‘금색왕경’ ‘육방예경’ 등 각종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은 가난으로 인한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더한 지옥이라고 표현하며 근면성실함으로 재화를 획득하고 이를 꾸준히 확장시키라고 당부하고 있다. 다만 부정한 방법에 의한 재화 획득과 도살과 무기매매 등 살생하는 직업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재화는 반드시 남을 위한 보시로 회향돼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부처님 당시 수많은 장자들이 부처님을 따르고 승단에 보시했던 것도 경제활동에 대해 이런 명확한 관점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가 경제활동에 부정적인, 염세적이고 반사회적 종교라는 비판은 근거를 잃은 셈이다.

그러나 불교경제학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면서 우려도 낳고 있다. 부처님이 부자 되기를 권장하고 자본주의 모델이 이미 불교에 있었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무소유를 향한 부처님의 역습’이라는 조어도 등장한다. 출가수행자가 아닌 이상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활동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교의 궁극적인 삶의 방식은 청빈과 무소유에 있을 것이다.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 김형규 부장
재화는 잘못 다루면 결국 탐욕과 파멸로 가는 불씨가 되기 쉽다.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부패한 중세 가톨릭에 반대해 청빈과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며 탄생했던 기독교가 이제는 자본주의의 첨병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다. 재가자들을 위해 방편으로 설한 경제활동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불교의 본질을 잃을지도 모른다. 한국불교는 지금 무소유 정신이 부끄러울 만큼 충분히 세속적이고 탐욕적이기 때문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3호 / 2015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