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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중생은 중생이 아니다

기자명 서광 스님

수시로 변화는 마음을 자신으로 착각 말아야

“이때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미래에 이 법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는 중생이 있겠사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수보리야! 그들은 중생이 아니요,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중생이라 하는 것은 중생이라는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이기 때문이다.”

영화 끝나면 흰 스크린 나타나듯
생멸심 멈추면 본래 마음 드러나

수행은 생멸심에 휩쓸리지 않고
그릇된 생각과 관념을 보는 것

‘기신론’에 의하면 중생의 마음은 진여심과 생멸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여심(眞如心)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참된 마음바탕으로,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거나 시간과 장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불생불멸하는 마음이고 차별하지 않는 절대 평등한 마음이다. 반면에 생멸심(生滅心)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화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수시로 좋아하고 싫어하면서 끊임없이 차별하고 평등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생멸심 때문이다.

우리가 중생이 아니고,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닌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여심과 생멸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진여심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분명 중생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환경이나 조건, 상대가 우리를 대하는 방식, 태도에 따라서 화내고 좋아하고 우쭐대고 기가 죽는, 수시로 변화하는 생멸심의 자리에서 보면 우리는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니다.

한편 중생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수시로 변화하는 우리의 마음을 진짜 우리 자신으로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냥 상황과 조건에 따라
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일시적 모습이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식었다고,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고 좌절하고 분노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탐욕과 화와 무지에 의해서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처럼, 때로는 격하게 일어나는 파도처럼, 항상 그렇게 생멸하는 것임을 알고 내 마음이든 상대의 마음이든 붙잡으려 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변화하는 것이 바로 중생의 마음(중생심)이니까 말이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집착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맞다.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호흡으로 주의를 돌려서 생멸하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면 우리는 문득 그 마음의 틈새를 볼 수 있는 예기치 않은 행운을 얻게 된다. 마치 영화가 끝나면 온갖 영상들이 사라지고 하얀 본바탕의 스크린이 드러나듯이, 우리의 생멸심이 작동을 멈추는 찰나에 그 마음의 본바탕인 순수하고 깨끗한 불생불멸의 본래 모습(진여심)이 드러난다고나 할까.

마음수행은 생멸하는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대신에 생멸하는 마음의 파도를 일으키는 그릇된 생각과 관념을 보는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지, 상대를 자신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공급자로 보고 좋아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즐거움을 빼앗는 박탈자로 보고 화를 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순간순간 부딪치는 갖가지 조건과 대상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면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생각과 감정의 거친 파도와 잔잔하게 출렁이는 느낌과 감각의 물결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생멸하는 마음은 크고 작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마음수행을 하게 되면 그 고통이 결국은 우리를 본래의 마음자리로 안내하는 일종의 운송수단 역할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생멸하는 마음의 파도를 통해서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바로 불생불멸의 진여심이기 때문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생멸하는 순간순간들을 포착하는 힘을 길러가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수행의 과정이고, 우리의 참모습을 발견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13호 / 2015년 10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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