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헬조선 탈출하기

기자명 묘장 스님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할 일이 있었다. 사후세계가 주제였다. 익숙한 주제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자료조사를 위해 검색을 하던 중 ‘헬조선 지옥불반도 지도’를 보게 되었다. 그 지도는 지금 한국에 태어나는 것이 곧 지옥에 태어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상징하는 지도였다. 백수의 웅덩이, 자영업소굴, 대기업 성채 등 위험한 곳들이 그려져 있었다. 사실 해외구호활동을 많이 다니다보니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를 많이 가게 된다. 그래서인지 한국이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황에서 접한 그 지도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럼 지금 한국이 왜 헬조선으로 불리게 됐을까? 우선 OECD 국가들 가운데 출산율은 가장 낮고 공부시간은 가장 많으며,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가장 낮다. 사회복지는 최하위 수준이고, 가장 안전하지 않는 노동환경에서 가장 오랜 시간 일 하지만 가계부채 비율은 높다. 또한 자살율은 10만명당 29.1명으로 OECD 평균의 12배 이상으로, 2007~2011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수는 이라크전쟁 사망자수보다 2배, 아프가니스탄전쟁 사망자수보다 5배 많다.

이런 내용을 담은 기사에는 ‘권력자들은 마약을 해도 집행유예, 기업인 회장들은 수십억을 챙겨도 특사로 사면, 돈 없고 힘없는 서민들은 2~3만원 절도도 징역’ ‘헬조선에서는 평생 노예생활해도 집 못 산다’ 등의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계층의 사다리가 무너져 노력해도 안 된다는 패배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은 상태에서 이렇게 통계로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 자료로만 보면 정말 한국은 헬조선이라 불릴 만하다.
헬(hell)은 지옥의 영어 표현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은 헬조선과 어떻게 다를까? 불교의 지옥은 ‘나락’이라는 단어로도 쓰이는데 ‘절망에 떨어졌다’를 의미한다. 층층으로 뜨거운 고통을 받는 8열지옥, 끊임없이 고통 받는 5무간지옥, 8한지옥 등 그 수가 팔만사천가지를 넘는다. 이렇게 많은 지옥이 생기게 된 배경은 죄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입으로 지은 죄는 혀가 뽑히고 갈리는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되고, 살인의 죄는 끊임없이 죽임을 당하고 또 살아나는 고통을 받게 된다. 무시무시한 지옥의 모습이지만, 이것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받게 되는 고통이며, 가지 말아야 할 세상은 맞지만 나쁜 세상은 아니다. 거기다 보살의 원력으로 간다면 그것은 큰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 헬조선으로 불리는 한국사회는 구조적으로 자신이 노력해도 좋은 직업이나, 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 안 좋은 모습을 갖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헬조선을 벗어날 수 있을까? 불교의 회향정신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의 회향은 공덕을 지은 뒤에 내가 지은 공덕을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공덕을 다른 이나 깨달음 등에 돌리는 것을 말한다. 미얀마 오지에는 예전 한국의 보릿고개처럼, 배고픈 시기가 지금도 있다. 참깨가 수확되기 전 한 달이 가장 춥고 배고픈 시기인데, 이 시기를 지나면 깨를 판 돈을 모아 스님들께 공양을 베푸는 행사를 연다. 푸짐하게 준비된 음식을 가장 나이가 많은 노스님부터 먹는데, 세 숫가락만 떠 담아 드신다. 아래 스님들은 모두 그 모습을 따른다. 이제 남은 음식은 마을 어르신들에게 돌아간다. 어르신들도 조금만 드신다. 이후 장년, 청년들에게 돌아가나 그들 역시 조금만 먹는다. 맨 마지막 아이들이 음식 먹을 차례가 되면 아이들은 마음껏 먹는다.

그렇다. 어려움은 모두의 것이었으나, 마을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 양보한 것이다. 내 것을 다른 이에게 양보하는 회향정신인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한번 부자는 재산이 계속 늘어난다. 자손들은 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은 재산 대신 빚이 상속된다. 자식들이 빚 상속을 거부하면 사촌들에게도 빚이 전가된다. 이런 불평등을 회향으로 고칠 수 있다. 살아서는 미얀마의 회향처럼 자신이 가진 것들을 조금 양보하고 목숨이 마칠 때가 되면 자신의 재산을 기부 회향한다면, 세상은 평등해지고, 헬조선은 정토로 변하지 않을까?

묘장 스님 myojang@dorisa.org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