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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보조국사의 비명 (6) 세 번째 깨달음

기자명 인경 스님

‘대혜어록’ 통해 간화선 도입 단초 마련

“마침 오래 전에 알고 있던 선노(禪老) 득재(得才)의 간절한 청에 의해서 팔공산 거조사(居祖寺)에 머물렀다. 이름을 버린 여러 고사(高士)들을 맞이하여 서로 힘써 권하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닦기를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깨달음 경험 후도
거조사·상무주암서 정진
분별을 버리는 참구 통해
궁극적인 해탈을 이루다

거조사는 경북 영천에 위치한 팔공산 동쪽에 위치한다. 선노(禪老) 득재(得才)는 전기 자료가 불분명하다. 아마도 담선법회에서 한 번 만나서 함께 결사를 하자고 했던 인물 가운데 한 승려가 아닌가 한다. 송광사로 옮겨오기 전, 팔공산 거조사에서 여러 해 동안 머물면서 대중들과 함께 선정과 지혜를 닦았다는 이 구절로 인해 여기서 ‘사실상 정혜결사를 시작하지 않았는가?’라는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다.

“승안 3년 무오(1198·40세), 봄에 승지(勝地)를 찾다가 지리산의 상무주암에 머물렀다. 경치가 그윽하고 고요하여 천하에 으뜸이며 선을 닦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국사는 바깥 인연을 끊고 오로지 안으로 관(觀)함에 전념하였다. 갈고 닦아서 예리한 지혜를 내며 궁극의 근원을 찾았다. 그때에 얻은 상서로운 경험을 번거로워서 싣지 않는다. 스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다. ‘내가 보문사에서 지낸 이후 10여년이 지났다. 비록 뜻을 얻어서 부지런히 닦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여전히 정견이 없어지지 않아서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이 원수의 처소에 있는 것과 같이 불편함이 있었다. 지리산에 머물 때, ‘대혜보각선사어록’을 얻었는데, 선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가장 주의할 점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하는 것이다. 홀연히 눈이 열리면 비로소 모두가 집안일[屋裏事]임을 알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가슴에 걸린 물건이 사라지고 원수와 같은 불편함도 당장에 놓여나면서 편안하고 즐거웠다. 이로 말미암아 지혜로 아는 것이 더욱 높아져 대중들이 스님을 우러르게 되었다.”

상무주암(上無住庵)은 오늘날 지리산 함양군에 위치한다. 비명에 의하면 첫 번째 ‘육조단경’, 두 번째 ‘화엄경론’, 그리고 보조국사의 마지막 세 번째의 깨달음은 ‘대혜어록’을 통해 이루어졌다. 첫 번째 ‘육조단경’을 통해서는 자성정혜의 기틀을 확보하였고, 두 번째 ‘화엄경론’을 통해 당시에 강성했던 화엄교학과 만남으로써 선교를 통합하였고, 마지막 ‘대혜어록’을 통해서는 간화선을 도입하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위에서 독특한 점은 두 번의 깨달음이 있었지만 여전히 가슴에서 정견(精見)이 사라지지 않았고, 그것이 마치 원수의 처소에 있는 것처럼 불편하였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정견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견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선입견을 가지고 대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대상보다는 그것을 보는 주체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슴에 걸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순하게 인식의 문제, 인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필자는 정견(情見)을 실존의 근본적인 불안이나, 뿌리 깊은 자아의식, 혹은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과 같은 의미를 생각하여 본다. 하지만 비명의 언구만을 가지고 해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아무튼 국사는 근본적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세 번째의 깨달음을 통해서 궁극의 근원, 궁극적인 해탈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점은 처음에 ‘육조단경’을 통해 첫 번째 돈오를 하였지만 여전히 계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있다. 대혜선사도 남쪽지역이 비록 날씨가 따뜻하여 부채가 필요가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여전히 부채가 필요함을 말하면서 돈오 이후의 끊임없는 점수를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많은 고승들이 있었지만 한 인물에게서 정혜, 화엄, 간화선과 같은 다양한 사상을 내면으로 통합시켜 하나의 체계를 세운 인물은 보조국사가 아닌가 한다. 점수가 인도적인 성격이고 돈오가 중국적인 특색을 가진다면, 이들을 통합한 돈오점수는 가장 한국적인 사상이 아닌가 한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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