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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보우(普雨)-상

기자명 성재헌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가 박해의 시련을 뚫고 자라난 꽃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순교자들을 성인(聖人)으로 받든다. 돌아보면 한국불교가 겪은 시련의 역사가 그들 못지않고, 신념을 지키다 억울하게 사라진 불교도들 역시 그들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져간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노고에 감사하는 불교인은 현재 그리 많지 않다.

조선개국 후 쇠락한 불교
문정왕후, 보우 스님에게
불교 부흥의 역할 맡기자
유생들 ‘요승’이라며 공격

왜일까? 삶을 한바탕 허수아비 놀이마당쯤으로 여기는 불교도들의 시각 때문일까? 지배자들의 역사관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나약한 노예근성 탓일까? 딱히 이유를 꼬집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삐뚤어진 역사의 평가를 바로잡아야 할 분이 수두룩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가운데 첫 번째는 아마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1509∼1565) 스님이 아닐까 싶다.

순혈 유교도임을 자부한 신진 사대부의 혁명으로 조선이 개국하면서부터 불교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권력자들의 불교탄압은 교묘해지고 심각해졌다. 방대했던 사원의 재산을 몰수해 자생력을 고갈시키고, 도첩제를 악용해 유능한 인재들이 불교도가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 조선중기, 그들의 패악은 극에 달했다. 몰상식하고 문화의식이 결여된 유생(儒生)들은 사찰을 불태우고 재물과 보물을 약탈해 갔으며,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존경받던 스님들은 사대부들의 가마꾼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천민에다 노예처럼 부리면서도 수틀리면 “예의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죄목을 씌워 폭행했고, 심지어는 살해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만인을 사랑한다는 인(仁)과 상대를 존중한다는 예(禮)는 허울 좋은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다 백성의 안위를 보살피고 정의를 실현해야 할 국가권력은 한 술 더 떴다. 연산군은 아예 선종의 본산이었던 흥천사와 교종의 본산인 흥덕사를 연회소로 만들고, 원각사를 기방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눈엔 사찰과 승려가 놀이터와 기생만 못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자루 촛불 같은 삶을 살았던 분이 바로 보우 스님이다.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용문사로 입산한 스님은 견성암 지행(智行) 스님의 지도를 받으며 15세에 출가했다. 이후 10여년의 세월을 금강산과 설악산 등지를 떠돌면서 참선수행에 매진했고, 주머니 속 송곳이 절로 삐져나오듯 명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에 맞불려 흥법(興法)을 발원했던 문정왕후가 집권하면서 조선의 불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문정왕후는 불교를 부흥시킬 적임자로 보우 스님을 지목하고, 1548년(명종 3) 12월 봉은사 주지에 임명했다.

봉은사 주지에 취임하고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유생들의 부당한 폭력을 저지시키는 것이었다. 보우는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해, 왕능에 소속된 사찰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고 물건을 훔친 유생들 중 가장 횡포가 심했던 황언징(黃彦澄)을 처벌하도록 문정왕후에게 청했다. 또한 봉은사와 봉선사에 방(榜)을 붙여 무단침입을 금지시킴으로써 유생들의 횡포를 막게 했다.

당연한 요구이고, 상식적인 처사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 절집을 놀이터로 여기고 스님들을 하인이나 기생쯤으로 보았던 유생들에겐 뜻밖이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조정에까지 비화되어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상소가 빗발쳤다. 심지어 성균관 생원 안사준(安士俊) 등은 문정왕후가 이러한 조처를 단행한 것은 보우가 뒤에서 조종한 것이라며 요승(妖僧) 보우의 목을 베고 황언징을 풀어주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문정왕후는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문정왕후를 중심에 두고 보우 스님과 유생들 사이의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었다. 황언징이 붙인 ‘요승’이란 닉네임은 조선유생들의 공용어가 되었고, 상식과 정의를 주장한 보우 스님은 조선유생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보우 스님에게 붙여진 ‘요승’이란 딱지가 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붙어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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