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와 조선왕조실록
국정교과서와 조선왕조실록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5.10.19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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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이 많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기록유산만 13건. 세계 4위의 기록문화 강국이다.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기록문화유산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에 입각해 충실히 기록했던 남다른 역사 때문이다. 197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은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야 되는지 기준을 보여준 역작이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에 걸친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실록은 선왕이 죽으면 후대 왕이 선왕의 기록을 모아 편찬을 했다. 그러나 정작 실록을 편찬한 왕은 자신이 편찬한 실록을 볼 수 없었다. 왕의 자리는 정변이 아닌 이상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다. 왕이 실록을 보게 되면 부왕을 미화하거나 비판적으로 기록한 신하에 대해 분노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은 왕의 보복이 두려워 사실을 기록할 수 없게 된다.

편찬자 왕은 실록 열람 못해
왕과 권력 외압 원천적 봉쇄

정부, 국정교과서 강행은 폭거
현대판 분서갱유로 기록될 것


성군이었던 세종대왕도 부왕의 기록을 보고 싶어 했다. 태종은 형제들과 수많은 정적들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했다. 혹시 실록에 부왕이 부정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신하들이 허락하지 않았다. 왕이 재차 부탁을 하자 신하들이 이렇게 경고한다. “전하께서 꼭 보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실록은 전하에 대해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실록을 본 왕으로 기록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세종은 실록 열람을 포기했다. 실록에는 세종대왕이 두 차례 부탁이 거절되자 혹시 아버지인 태종이 할아버지인 태조의 실록을 본 적이 있나 알아봤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절대 왕권을 구가했던 태종도 태조의 실록은 보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은 왕과 권력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오로지 사관과 신하들에 의해 기록됐던 왕조사라는 점에서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왕조시절에도 역사에 대한 기록만큼은 이처럼 냉철했다. 왕이든 권력자든 자신과 관련된 역사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래야 역사는 진실 되게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부국, 가장 짧은 기간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강한 이 나라에서 왕조시절에도 없던 역사퇴행이 벌어지고 있다.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종북좌파 교과서라고 매도하던 정부가 결국 국정 전환을 결정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이름을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명명했다. 과거 정의롭지 못하거나 올바르지 못할 때, 사회가 우울할 때 정부는 국민들에게 역사적 사명을 외치고 정의를 요구하고 명랑할 것을 강요했다.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용어에서 ‘역사적 사명’ ‘정의사회구현’ ‘명랑사회’와 같은 독재정권 시절 국민들에게 재갈을 물리며 강요했던 용어들이 떠오른다.

지금의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현 정부의 교육부 지침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이들 교과서가 종북좌파 교과서였다면 정부는 무슨 이유로 이들 교재를 승인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검정교과서는 민주화된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검정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나 왕조국가 아니면 종교적인 자유가 없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면서 불의에 저항했던 역사를 자학사관이라거나, 부정적인 역사에 대한 기술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발행 방침 확정 이후 각 대학 교수들의 집필 불참 선언이 쏟아지고 있다. 고려대, 연

▲ 김형규 부장
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동국대 등 역사학자들의 집필 거부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근현대사학회 소속 학자 500여명 전원도 불참성명을 냈다. 이들 학자들은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고 있다. 민주주의 기본은 다양성에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방향의 역사를 가르치겠다고 나서고 있다. 현 정부는 친일과 독재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끄러운 역사를 미화하려는 유혹이 생기는 것 또한 이해는 된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더 이상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훗날 역사는 현 정부의 폭거를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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