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수(天水) 맥적산(麥積山) 석굴
3. 천수(天水) 맥적산(麥積山) 석굴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5.10.1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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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신심, 불국토 되다

▲ 보릿단을 쌓아 올린 형상의 맥적산 석굴에는 목숨을 걸고 절벽에 매달렸던 옛사람들의 신심이 가득 새겨져 있다. 맥적산 석굴 동벽 앞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는 순례단.

법문사(法門寺)를 빠져나와 천수(天水)로 출발한다. 천수는 감숙성(甘肅省)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장안(長安, 서안)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천축으로 향했던 스님들 역시 천수를 거쳤는데, 현장(玄)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버스는 목가적 풍경 위로 뉘엿뉘엿 내려앉고 있는 석양의 붉은 빛을 가르며 나아간다. 지금 바라보이는 풍요로운 산과 들, 논밭과 강물 어딘가에 옛적 등짐 짊어진 스님들의 발자취가 남아있진 않을는지. 이내 죽음과도 같은 사막과 드높은 설산을 마주해야 할 운명이었던 스님들이 부디 이곳에서 처음의 갸륵했던 서원을 다시 한 번 되새겼길. 아득한 과거 속 머나먼 이야기지만 마치 시간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듯 환희로운 마음으로 구법승들의 여정에 축원을 올린다.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로서
불교 전래·실크로드 요충지

142m 맥적산에 194개 석굴
소상·석상·천불 7200구 봉안

요진 시대에 축조가 시작돼
명대에까지 지속적으로 조성

법문사에서 천수까지 고속도로로 4시간30분을 달려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서울과 부산 사이에 가로놓인 긴 시간이겠지만 시공간에 대한 감각이 느슨해진 탓에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중국대륙의 믿기지 않던 광활함은 지금까지 짧은 여정만으로도 어느새 일상이 돼버렸다. 석양이 시커먼 하늘로 빨려 들어간 뒤에야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천수 도심에 도착해 짐을 풀 수 있었다.

▲ 맥적산 석굴 서벽 삼존불. 오른쪽의 보살상은 심하게 파손됐지만 주불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친 순례단은 오늘의 목적지인 맥적산(麥積山) 석굴로 향했다. 맥적산 석굴은 중국 석굴 가운데 4번째로 크다. 천수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맥적산 봉우리에 위치해 있다. 맥적산이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보릿단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오전 9시 입구에 도착해 표를 끊고 들어가니 야트막한 언덕 옆으로 잡상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언덕 중턱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사진으로 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카메라가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아…. 순식간에 드러난 광경. 깎아지른 절벽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신심. 맥적산 석굴 서벽의 삼존불과 셀 수 없이 많은 불감(佛龕)들. 저곳은 정녕 불국토인가. 한시라도 빨리 이곳 사바세계에서 저기 보이는 천상의 세계로 넘어가고픈 유혹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덕을 마저 오르자 이번에는 동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벽에서처럼 삼존불과 불감, 회랑이 맥적산 절벽을 캔버스 삼아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가피의 세례에 순례단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맥적산 석굴은 저토록 높은 곳에서, 그토록 장엄한 모습으로, 이토록 황홀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아찔한 절벽에 매달린 신심의 흔적들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맥적산에 신심을 아로새겼던 걸까.

맥적산 석굴의 창건 연대를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석굴 안에 새겨진 글에서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가운데 하나였던 요진(384~417) 시대에 축조가 시작됐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석굴 중 가장 연대가 이른 것은 북위(北魏) 시대 석굴로 문성제(文成帝, 재위 471~499)가 개착했다. 문성제는 맥적산 석굴뿐 아니라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을 개착하면서 불교문화를 꽃피우는 데 이바지했다. 이는 북위를 세운 선비족이 한족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상쇄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석굴 조성은 북위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된 뒤에도 계속됐다. 그리고 북주, 수, 당, 송, 원, 명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 142m 높이의 맥적산에는 석굴과 불감이 모두 194개가 있으며 찰흙으로 빚은 소상(塑像) 3513기 등 무려 7200여 기의 불상이 봉안돼 있다. 벽화도 그려졌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소실돼 현재는 1000㎡ 정도만 남아있다.

기록만으로는 아찔한 수직 절벽에 기대 부처님을 조성해 나간 이들의 극진한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 다만, 천수가 사통팔달의 실크로드 거점으로서 일찌감치 불교가 전래됐고, 때문에 수많은 스님이 모여들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맥적산 석굴의 조성이 단순한 우연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맥적산은 대지에서 융기해 산의 형상을 갖출 때부터 불국토가 될 인연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 서벽 입구에서 바라본 비좁은 계단과 잔도.

순례단 스님들을 따라 맥적산 석굴 동벽 초입으로 이동한다. 위를 올려다보니 멀리서 봤던 것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의지할 데라곤 오직 급격한 경사의 계단과 나무로 만든 비좁은 잔도(棧道)뿐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계단과 잔도는 자칫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평소 고소공포증으로 고통을 받아온 터라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은 정신없이 가슴을 울려댄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취재를 포기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안절부절못하는 기자를 유심히 지켜보던 순례단 비구니스님이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두려움을 만드는 것은 높이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라는 스님의 말이 귀를 울린다. 희미해지는 용기를 쥐어짜내 비로소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 맥적산 석굴에서 가장 큰 13호굴 삼존불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수나라 문제가 조성했다.

중국인들이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생긴 것처럼 웃고 떠들며 손가락질한다. 스님의 손을 잡고 마치 잔도를 핥기라도 할 것처럼 엎드린 채 기어가는 모습이 꽤나 웃겼나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의 조언대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읊조리니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진다. 위로 고정됐던 시선을 오른편으로 돌려 석굴을 바라보았다. 높이 15.7m로, 맥적산 석굴에서 가장 큰 13호굴 삼존불이 은은한 미소로 순례자를 맞이한다.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조각한 것인데 수나라 문제(文帝)가 조성했다. 문제는 맥적산 정상에도 정염사(淨念寺)라는 사리탑을 세웠다고 전한다.

13호굴을 지나 풍만한 풍채의 불보살들이 들어선 회랑인 9호굴에 이른다. 북주 시대에 만들어진 9호굴에는 7개의 감실마다 독특한 형태의 불보살들이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것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서 있다. 비록 칠이 많이 벗겨지긴 했지만 조성 당시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감실 윗부분은 검은 그을음이 덮고 있는데 이는 당나라 시대에 지진과 전쟁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불을 땐 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사의 계단을 또다시 기어올라 4호굴에 당도한다. 4호굴은 맥적산 석굴 중 가장 높은 84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규모 또한 가장 커서 멀리서도 삼존불과 함께 두드러져 보이는 공간이다. 북주 때 만들어져 송나라 시대에 보수한 4호굴의 모든 감실은 보존을 위해 창살이 덧입혀져 있었다. 시선은 어느새 창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아름다운 불보살들을 향한다. 외벽 천장에는 비천(飛天)이 입체감을 드러내며 날아다니고 있다. 뒤를 돌아 맥적산 일대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감로수와도 같은 부처님 미소가 헐거운 육신 구석구석을 촉촉하게 적신다. 두려움은 애초부터 없었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내뱉으며 찰나의 깨달음을 비옥한 대지에 흘려보낸다.

▲ 동벽 왼편 가장자리에 위치한 5호굴의 불보살상.

한결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5호굴을 통과해 서벽으로 이동한다. 서벽에는 높이 9.13m의 삼존불이 계셨다. 오른편의 보살상은 절벽에서 뜯겨진 것처럼 심하게 파손됐지만 처진 눈매가 인상적인 주불은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주불 발치에서 합장하고 기도를 올린다. 오늘의 순례에 감사했고, 매순간 깨어있기를 발원했다. 1500년 전, 형형한 눈빛의 누군가가 가파른 절벽에 새겨 넣었던 신심이 마음에 스며든다. 이제 ‘왜’라는 질문은 필요 없다. 규모에 놀랄 필요도, 높이에 감탄할 이유도 없다. 산 아래 우거진 숲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몸을 맡기며 부처님을 올려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맥적산 석굴 출구에 도착했다. 순례단 스님들은 이미 주차장에 가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시간을 지체했기 때문에 뒤처졌던 것 같다. 끝까지 손을 잡아주었던 비구니스님이 밝게 웃으며 앞장선다. 햇살이 구름 걷힌 하늘에서 스님의 들썩이는 어깨로 쏟아져 내린다. 손에 묻어 있던 식은땀을 털어내며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멀리 맥적산 석굴 삼존불의 자애로운 미소가 세상에 꽃향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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