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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국정화는 독재적 발상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곧 “짐이 바로 국가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다. 터무니없는 걱정이 아니다. 역사의 진행방향을 완전히 거꾸로 되돌리는 교과서 국정화 발상이 관철되어 시행된다면, 절대 왕정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도대체 학자, 전문가, 의식 있는 지성인 층 모두가 반대하는 교과서 국정화를 그렇게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누가 뭐라 변명을 해도 권력의 정점에 있는 한 개인의 고집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짐이 바로 국가”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시대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우리가 지향하는 역사에는 적어도 우리 모두가 암암리에 합의하고 있는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국민의 선택권이 점점 더 커지고 존중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국가 자체가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여러 의견들이 충돌하고, 그 충돌하는 의견들을 조정하여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의견의 충돌을 국론의 분열이라고 몰아붙이고, 하나의 통일된 방향성을 지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밑바탕에는 불순하고도 음험한 특정 세력의 욕망과 음모가 스며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여러 의견이 충돌할 때 그 충돌을 조정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국가’다. 의견이 충돌할 때 이것을 조정하는 과정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가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 충돌과 조정의 과정을 국론의 분열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과 같은 ‘국가’를 설정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국민을 통제하겠다는 독재적 발상일 뿐이다. 그러한 방식을 거론하는 것부터가 역사의 진행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이며, 민주화의 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왜 이리도 국민을 못믿는가? 왜 이리도 국민을 무시하는가? 우리 국민들이 어떤 특정 세력이 어떤 불순한 주장을 하면 그냥 휩쓸려 나라를 망치는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그런 국민들인가?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해 불순한 세력에 농락을 당하기만 하는 그런 국민들인가? 그렇지 않다.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당신들보다 우리 국민들은 훨씬 더 현명하다. 당신들보다 우리 국민들이 더욱 더 나라를 사랑하며, 잠시 다툴 수는 있어도 결국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는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 이 나라의 정치사에서 민주화의 자취를 일구어낸 것은 정치가들이나 위정자들이 아니다. 국민들이다. 가난한 나라를 지금의 경제 대국으로 키워낸 것도 경제인과 기업인의 힘이기 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우리 국민들의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설사 우리가 의견이 갈려 조금 시끄럽게 다투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며 민주를 배워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한 과정을 국론분열로 몰아가면서, 힘으로 그것을 평정하여 하나의 관점만을 강요하겠다는 당신들이야말로 진정한 국론분열의 주범이다.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의 주장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른 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고, 서로 옳다는 주장들이 부딪혀서 보다 한 차원 높은 옳음을 이루어 나가는 길이 바른 길이다. 그런 주장들의 부딪힘 자체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도하고 폭력적인 힘이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주장들을 폭력으로 누르려는 독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일을 벌여서는 안 될 일이다. 역사를 역행하는 파시즘적 행태를 애국으로 포장하고 있는 그런 시도들을 향해 우리는 엄하게 경고한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하지 말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국민을 무시하지 말라. 국민에 의해 단죄될 것이다!

성태용 교수 tysung@hanmail.net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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