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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보조국사의 비명 (7) 송광사에 정착

기자명 인경 스님

대중과 함께 송광사로 옮겨 정혜결사 시작하다

“승안 5년 경신(1200, 42세)에 국사는 송광산 길상사로 옮겨 11년 동안 법을 펼쳤다. 도를 이야기하고 선을 닦으며 안거하고 두타에 율에 의거하였다.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스님과 재가자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명예와 벼슬을 그만 두고 처자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 친구들에게 권하여 함께 오기도 하고, 왕공과 사서(士庶)로서 이름을 버리고 결사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수백 명 되었다.”

도에 스스로를 맡기니
칭찬·비방 흔들림 없어
비록 뜻에 맞지 않아도
어머니처럼 받아들이다

국사는 지리산 상무주암이 비좁게 되자 대중과 함께 오늘날 송광사로 옮겨왔다. 사실상 본격적인 정혜결사의 시작이다. 출가자의 경우는 출가 자체가 큰 결사이지만, 일반 재가자에게는 일정한 기간 집을 떠나 집중적으로 명상수행하는 것이 수련결사이다.

송광사는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가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다. 하지만 보조국사는 ‘수선사(修禪社)’라 칭하였다.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부터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사명은 송광사로 고쳐 불렸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여기서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이다.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오늘날 학자들은 조계종의 기원을 보조국사로 하는 경우가 있고, 조계종의 근원을 신라 말 구산선문까지 소급하여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계종이란 정체성과 사상이 보조국사에 의해서 확립된 점은 부인할 수는 없겠다.

“국사는 도에 스스로 맡겨서 칭찬과 비방에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성품은 자애롭고 인내심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비록 어긋나 뜻에 맞지 않아도 딱하게 여겨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받아들여 지켜주었다.”

이 부분은 대중을 이끄는 국사의 가풍을 기술한 것이다. 대중을 이끄는 리더십의 정형을 보여준다. 칭찬과 비방에 흔들림 없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후학의 지도하는 것, 뜻에 맞지 않아도 자애심을 가질 것. 이것이 가능한 것은 내면의 진리에 따르는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 커리큘럼을 가지고 결사가 진행되었을까?

“사람들에게 ‘금강경’을 외워 지니게 하였고, 법을 세우고 설할 때는 ‘육조단경’으로 하였고, 법을 펼칠 때는 이통현의 ‘화엄론’과 ‘대혜어록’을 양 날개로 하였다. 문을 여는 데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경절문(徑截門) 세 가지로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금강경’은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그 중심사상은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상에 대한 집착이 우리로 하여금 고통을 심하게 경험하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에게 ‘금강경’을 암송하게 하였다는 것은 곧 가장 기본적인 입문의 과정으로서 결사의 출발점으로 공사상을 중시한 것을 함축한다.

두 번째는 처음 깨달음의 계기가 된 ‘육조단경’이다. ‘육조단경’의 경우도 기본적인 기틀은 공사상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성품[自性]의 갖추어진 정혜(定慧)를 강조한다. 이것은 성성과 적적을 함께 고르게 균형을 맞추는 성적등지문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원돈신해문은 원만하고 곧장 갖추어진 불성에 대한 믿음과 실천을 강조한다. 이것은 이 통현 장자의 ‘화엄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국사가 하가산 보문사에서의 깨달음 내용에 해당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만난 ‘대혜어록’에 나타난 간화선의 경절문이다.

이런 수행의 교육과정은 국사께서 직접 경험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몸소 경험한 내용이었기에 내적인 강력한 힘과 대중에게 설득력이 있었다고 본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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