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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혜문 스님의 씁쓸한 환속

  • 기자칼럼
  • 입력 2015.10.23 23:38
  • 수정 2015.10.24 00:08
  • 댓글 91

새 생명이 탄생했다. 그리고 한 사미가 비승비속으로 살고 있다며 최근 제적원을 제출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 이야기다.

그는 조계종 소속이었다. 남양주 봉선사로 출가해 1999년 사미계를 수지했지만 구족계를 받지 않아 정식 승려가 되지는 못했다. 구족계 수계를 위한 승가교육 과정을 이수하기보다 해외로 뿔뿔이 흩어진 우리 문화재 반환과 제자리 찾기에 애써왔다. 2006년 도쿄대학으로부터 ‘조선왕조실록’ 47책, 2011년 일본 궁내청으로부터 ‘조선왕실의궤’ 등 1205책을 환수했다. 한국전쟁 당시 사라졌던 대한제국 국새(國璽)와 조선왕실어보를 미국에서 찾아내 반환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보신각 타종행사에 시민대표로 초대되고, KBS 감동대상도 수상했다. 그는 어느덧 반출 문화재 환수의 상징이 됐다. 최근에는 같은 문중스님이 수십 년 전에 불화를 절도했다는 의혹 등 스님들의 도덕성을 질타해 자칭 개혁세력이라는 이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이런 그가 지난 9월7일과 14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최근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다”고 충격적인 글을 남겼다. “여러 번 말씀드린 바처럼 더 이상 스님이 아니”라며 스님 호칭도 빼달라고 했다. 그는 세상 잘못 50가지를 바로 잡겠다는 부처님과 약속을 지켰으니 승복 벗고 자유롭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했다.

환속 이유처럼 들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를 만나 직접 제적원을 받아온 호법부에 따르면 지난 1월에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지난해 승복을 입고 문화재 환수를 부르짖을 때나 특정스님의 절도 의혹을 거론하며 거세게 꾸짖을 때도 그는 아빠였다. 세간의 성인 남성이 아기가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독신승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입장에서 본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계이며, 은처승으로서 불자들의 지탄받을 일이다.

그가 부득이 승려의 본분을 지킬 수 없었다거나 아니면 이제 계율을 지키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면 호법부 관계자가 찾아가기 전에 먼저 제적원을 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의 허물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페이스북에 올라온 답글들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효림 스님의 글이다. 효림 스님은 아이가 있고 비승비속으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선언에 “영원히 나는 혜문스님입니다” “ㅎㅎㅎㅎ그래도 혜문스님입니다”라는 글을 잇따라 남겼다. 영담, 명진 스님 등과 더불어 “종단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은처승, 도박문제, 사찰 재정투명화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2단계, 3단계로 나아겠다”며 종단을 질타했던 당사자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아량이 아닐 수 없다.

▲ 최호승 기자

우리 불교계가 환수해야할 성보들은 여전히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재 전문가 ‘혜문 스님’을 잃은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씁쓸한 것은 문화재를 위해 자신을 헌신했던 ‘양심적인 스님’을 잃었다는 점이 아닐까.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316호 / 2015년 10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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