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선원 산청선원-상
보림선원 산청선원-상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10.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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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뚱이로 하는 모습놀이 관두고 오늘부터 부처로 살라”

▲ 앉았다. 저마다 자세는 조금씩 달랐다.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거나 평좌를 했다. 선정인을 취하거나 편하게 내려놓기도 했다. 구도심은 같았다. 인연 따라 생멸하는 육신이 아닌 보고 듣고 느끼는 ‘참나’를 찾는 마음은 선원에 지긋이 앉아있었다.

어둠은 깊었고 믿음은 얕았다.

보고 듣고 느끼는 ‘참나’ 찾아
2박3일 철야정진 10여명 동참
김기추 거사 법문으로 입재

대의심으로 참구하는 화두보다
육신이 인연 따라 생멸한다는
사실부터 믿고 새말귀로 참구

보림선원 산청선원(선원장 전근홍)에 몸 10여개 앉았다. 저마다 자세는 달랐다.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거나 평좌를 했다. 선정인을 취하거나 편하게 내려놓기도 했다. 구도심은 같았다. 인연 따라 생멸하는 육신이 아닌 보고 듣고 느끼는 ‘참나’를 찾는 마음은 선원에 지긋이 앉아있었다. 2박3일 철야정진을 위해서였다.

대의심과 대분심, 대신심으로 붙드는 화두가 아니었다. ‘비암비명(非暗非明) 자리를 나투자’는 화두를 들었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는 그 자리에 있는 ‘참나’를 발견하는 수행방편이었다. 새말귀였다. 산청선원에서는 옛 화두를 참구하기보다 백봉 김기추 거사가 주창한 새말귀를 들었다.

새말귀는 ‘확실한 이해’로 장착한 ‘견고한 믿음’에서 시작했다. 반면 ‘어설픈 이해’는 믿음을 약하게 했다. 의구심은 짙었다. 누구나 지구가 허공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자신이 허공 위에 서 있다는 진실을 실감하지 못한다. 지구가 허공에 있는데 지구에서 사는 생명체는 과연 견고한 땅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까.

▲ 지리산 산청선원에서는 매년 두 차례 1주일 철야정진이 이어진다.

동서남북, 위와 아래라는 방향개념도 불확실하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하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동서남북과 위와 아래는 바뀐다. 그러나 중생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기준삼고 방향을 나눌 뿐이다. 선원에 앉은 육신이 그랬다. 머리에서 가능한 이해가 가슴으로 내려와 믿음이 되기엔 그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백봉 거사의 육성 입재법문은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이 견성’이었다. 빔프로젝트가 백봉 거사 이미지와 법문 자막을 띄웠다.

“우주나 몸뚱이를 사실 그대로 보는 것이 견성이다. 불자들이 부처님 말씀을 잘 안 믿는다. 네 마음이 부처라고 해도 안 믿는다. 허공과 같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자리가 있다. 이 자리가 있기 때문에 몸뚱이를 굴린다. 빨래하고 밥하는 것은 몸뚱이라는 무정물을 시켜서 벌어지는 일이다. 여러분은 죽지 않는다. 죽는 건 인연 따라 생멸하는 몸뚱이뿐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다. 허공에 떠 있는 이 육신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실감이 가고 안 가고는 없다. 오늘 이 자리가 부처자리다. 무정물인 몸뚱이 굴려서하는 현상놀이나 모습놀이 관두고, 지금부터 부처로 행동하고 살아가시라.”

육신이라는 놈을 굴리는 법신, 즉 참나를 확연히 발견하는데 새말귀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육신을 이해해야 했다. 병든 다리와 양팔, 오장육부, 눈과 귀, 입과 혀를 끊어서 옆에 두면 그것을 ‘나’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조리 다 붙여도 ‘나’가 아니다. 몸도 시시각각 변한다. 몸 속 세포도 소멸과 생성으로 100일마다 옛 것이 된다. 고정불변의 몸은 없다. 백봉 거사가 한 수술법문이다. 육신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기 위한 백봉 거사의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법문은 머리에서만 앉았다. 속고 있었다. 새말귀는 헛돌았다. 사실을 이해해도 진실로 받아들이고 믿기는 쉽지 않았다. 전근홍(64, 청봉) 선원장이 입재인사로 거듭 당부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전 화두가 의심을 하고 들어가는 것이라면 백봉 선생님이 제시한 새말귀는 믿고 들어간다. 그래서 좀 어렵다. 스님들과 같이 공부만 할 수 있다면 화두참구도 훌륭한 방편이다. 다만 재가자들은 생업에 얽매어 있어 여여하게 참구하는 시간이 끊긴다. 육신은 헛것이다.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그 자리가 육신을 굴리고 다닌다. 이 자리는 비암비명한 자리다. 철야정진에서 일체만법이 육신처럼 헛것이라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결정을 한다면 그 자리가 뚜렷해진다.”

전판호(65, 청산)씨는 공허했다. 믿음은 견고해지지 못했다. 잠과 싸우기 바빴다. 서울에서 참나를 찾아보고자 왔지만 아직이다. 1971년 친구 따라 백봉 거사도 처음 뵙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공부에 뛰어들었지만 새말귀는 잡히지 않았다.

이뭣고 들고 씨름했던 최긍규(55, 성월)씨는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좌선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생사문제로 공부하는데 선방의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도 못하고 막무가내로 철야정진했던 과거를 탓했다. 바른 길로 가는지 궁금해 가슴앓이도 많이 했다. 이 문제로 아내와 4년간 티격태격했다. 집 서재엔 빼곡이 불교서적이 쌓여갔지만 독학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됐다. 백봉 거사의 ‘도솔천에서 만납시다’와 시절인연이 닿지 않았다면 산청선원에 오지 못했다. 그는 다시 육신이 헛것이며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허공으로서 나’를 찾으려 애썼다.

평소에도 백봉 거사 법문을 소장해 듣는 홍승동(57, 가운)씨에게도 ‘견고한 믿음’은 미완이었다. 어둠 속에 박힌 별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1년에 800~900번을 들으며 가랑비에 옷 젖듯 설법으로 촘촘해진 믿음을 만들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잠이라는 끈덕진 번뇌는 밀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당을 밝히고 있는 가녀린 빛은 숨소리만으로도 가물거렸다. ‘허공으로서 나’보다는 ‘자고 싶다’는 수면욕이 덮쳤다. 눕거나 기대는 순간 청규는 깨진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산청선원 뒤덮은 어둠 아직 짙었고 믿음 여전히 엷었다. 어둠 속 별빛은 더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육신과 함께 선원에 갇힌 ‘허공으로서 나’는 별빛을 보지 못했다.

번뇌빗장, 눈꺼풀 위에 똬리 튼 수마처럼 천만근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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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불와 정진 살아있는 거사풍 도량

산청선원은

백봉 거사 7일 철야 지도한 곳
2013년 재정비해 1년 내 수행

‘한국의 유마거사’라 칭송받는 백봉 김기추 거사가 적멸에 든 도량이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860번지에 보림선원 산청선원이 있다.

▲ 산청선원 주차장 인근에 있는 백봉 거사 묘소와 유마탑.

백봉 거사는 1985년 이곳에서 마지막 여름과 겨울 1주일 철야정진을 지도한 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안이비설신의를 내려놨다. 스승이 육신 버리고 간 곳에 작은 묘소와 제자들이 쌓은 유마탑 그리고 선방, 요사채가 남았다.

백봉 거사 입적 뒤 사실상 방치됐던 도량이 몇 해 전부터 불을 밝히고 있다. 백봉 거사를 만난 뒤 한 번도 철야정진을 거르지 않았던 전근홍(64, 청봉) 선원장과 도반 몇몇이 2013년 3월부터 도량을 재정비했다. 30년 전 백봉 거사와 ‘참나’를 찾기 위해 공부했던 선원을 수행공동체로 일구기 위해서다.

도반들이 모여 선원 근처 땅을 마련하고 요사채 등 4동을 신축했다. 그리고 4시30분 새벽예불, 5~5시45분 참선, 6시 아침공양, 7~8시 설법 경청, 8시15분~9시 좌선에 이어 오후 3~5시 울력, 7~8시 저녁예불 및 좌선, 8~9시 설법 경청으로 하루 일과를 소화 중이다. 지금은 사실상 선원장 혼자 도량을 지키고 있다.

산청선원은 옛 모습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매주 토요일 1박2일 철야정진과 여름과 겨울 철야정진, 봄과 가을 2박3일 철야정진을 진행 중이다. 모두 눕거나 자지 않는 장좌불와다. 그럼에도 꾸준히 방부를 들이는 수행자들은 물론 경상도 지역에서 백봉 거사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재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보림선원 산청선원(cafe.naver.com/borim sancheong)’ 카페가 열렸다. 카테고리를 채울 동영상과 법문, 철야정진 소식 등 자료들을 제작 중이다. 055)972-9555


[1316호 / 2015년 10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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