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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전경희 씨

기자명 법보신문

광명진언·관음 보문품 등
1회 사경에 진언 염하고 절
100일마다 주제 바꿔 사경

▲ 소선행·45
나에게 기도는 생각만 할 뿐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벽마다 범어사 대웅보전에 불 밝히며 기도하는 14년 지기 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아직 인연이 아니었는지 절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금정사에서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교리토론은 했지만 경전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막내 아이가 다니던 음악학원 선생님이 홍법사 일요어린이법회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참여를 넌지시 권했다. 오가며 보던 아미타대불이 있는 곳이 홍법사라는 사실을 새삼 알았다.

막내는 일요법회를 마치고 리듬체조, 댄스, 합창 등으로 무대 위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키워갔다. 그런 아이를 보고 있으면 뿌듯하고 기뻤다. 그래도 홍법사는 아이의 문화활동 공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아이들 발표회가 있는 날이면 절에 가서 가끔 108배를 올리기도 하지만 한 줄 발원도 없이 마음 둘 곳도 모른 채 그저 나무아미타불만 염하며 절했다.

어쩌면 아이가 시절인연을 맺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자모 신행 다짐반’과 연이 닿았다. 자모 신행 다짐반의 기도반은 이미 1000일 기도를 기약하고 100일씩 6차 기도를 진행 중이었다. 뒤늦게 참여한 터라 낯설었지만 선배 도반들 격려 속에 40일을 함께했다. 처음 하는 기도라 설레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100일도 아닌 40일 채우기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마지막 며칠은 어떻게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7차 100일 기도에 입재했다. 내게는 첫 번째 100일 기도였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빠지지 않고 100일을 채우리라 다짐했다. ‘천수경’을 기본으로 신묘장구대다라니 10독과 광명진언 사경을 했다. 적게는 10회, 많게는 20회를 과제를 정하고 시작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독경하는 동안에는 온 몸이 가려웠다. 졸음과 파리, 모기 등 갖가지 방해꾼에 시달렸다. 하루하루 채워가는 정진달력에 마군이 구멍을 내려했다. 사경은 한 번 할 때마다 1배씩 진언을 염송하며 절했다. 마무리는 7배로 했다. 100일 동안 언제나 같은 자세로 사경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1080회를 마친 사경노트를 보니 매일매일 글씨가 달랐다. 어느 날은 졸면서 썼나 싶을 정도로 삐뚤삐뚤 엉망이었다. 다른 날은 뭔가에 쫓기는 듯 글씨가 날아다녔다. ‘이것도 기도를 방해하려는 마구니 장난일까.’ 사경글씨는 산란한 마음을 닮았다.

100일 기도정진이 절반 정도 지날 무렵 동참한 조계종 재가안거 하안거 결제가 전환점이 됐다. 조금씩 흐트러지려던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백중기도가 있었다. 그 동안 독경, 사경, 절은 형식도 모른 채 하고 싶은대로 해왔다. 처음으로 참석한 대광명전 기도법회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사시예불부터 법문, 관음시식 등으로 이어지는 법회 동안 다른 보살님들 따라 절하고 독송집 뒤적이며 경을 찾아 읽으면서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다. 기도하고 정진하는 기쁨도 조금씩 알게 됐다. 14년 지기 언니와 막내 아이, 음악학원 선생님, 홍법사, 자모 기도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특히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도반들과 인터넷을 통해 하루하루 써가는 일기에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고 또 배워가며 100일을 이어올 수 있었다. 감사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인연이 어디까지인지 모른다. 다만 인연 다하는 날까지 기도가 일상이 되도록 서로 힘이 되리란 사실은 확실하다.

이번 8차 기도는 관세음보살 보문품 사경을 과제로 정했다. 기도모임이 ‘세향(世香)’이란 이름을 받았듯, 작은 기도 공덕이 세상에 향기가 될 수 있도록, 연꽃 피우는 마음으로 여여하게 살아가리라.


[1316호 / 2015년 10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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