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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기도’와 ‘복’

해마다 대학입시철이 되면 전국 사찰에는 ‘100일 입시기도’라는 현수막이 걸린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학입시 합격발원 및 소원성취 백일기도’가 대부분이다. 이는 학생들의 입시 성공을 기원하는 부모들의 염원이 사찰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입시기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복(福)을 빈다’거나 ‘복(福)을 구한다’고 해서 항간에서는 구복(求福)이라고 한다. 이는 ‘복을 심는다’ ‘복을 기른다’ ‘복을 짓는다’는 행위와는 상반되는 견해다.

전자가 샤머니즘적인 견해에 가깝다면 후자는 불교적인 견해에 가깝다고 하겠다. 복을 구하기 위해 복을 심고 기르는 행위가 전제된다면 이는 다분히 불교적인 사고에 가깝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복을 짓는 행위는 하지 않고 복을 빌기만 한다면 이는 비불교적인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사찰이라는 장소에서 샤머니즘적인 구복행위가 행해지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매년 이맘 때 즈음이면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부(富)’와 ‘귀(貴)’가 기도와 신앙의 목적이라면 굳이 사찰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장소나 사람에게 기원하면 될 문제다.
입시를 앞둔 자식을 둔 부모마음은 한 결 같다. 자식 앞날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첫 관문이라고 생각되는 시험을 잘 치르기를 바란다. 시험이 곧 ‘부(富)’나 ‘귀(貴)’와 연관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 시험은 자식의 앞날이 부(富)하고 귀(貴)하게 되는 첫 시작인 셈이다. 부모의 염원은 더욱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고(故) 이기영 선생은 이러한 현상을 “전(全) 한국 종교사상에 일관하는 기복양재적(祈福禳災的) 타력의존(他力依存)의 신앙조류”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자아(自我)에 집착한 이기(利己)의 행위다. 구복 행위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믿어진다. 각박한 속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복 행위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행해지는 장소가 사찰이라는 것은 사찰존재의 본연적 물음을 유발하게 된다. 결국 기도를 통해서 복(福)을 추구하는 행위가 현실에서의 만족과 자기중심적인 이기성을 벗어날 수 없다면, 이는 이타적 공존주의와 초월적 이상을 향한 공동체 세계의 구현과는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가 바뀌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서로에게 인사를 권한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지난 과거에 지은 복이 없는데 새해부터 이 인사를 들어도 될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언제부턴가 항간에는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고민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타고난 성품과 개성이 잘 다듬어지고 보살펴져서 개인의 인연이 수승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자 기도의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기도가 부(富)와 귀(貴)만을 향한 열망이라면 이는 불교적인 것이 아니다. 꼭 100일 전에 의례적으로 자아에 집착한 이기적인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일상적으로 복을 짓고, 복을 심고, 복을 기르기 위한 기도 및 불공이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이상적인 신행이 될 것이다. 사찰의 불공문화와 기도 문화 또한 저절로 불교적인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이니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입맛 써지는 아쉬움이 반복된다.

복에 대한 여러 견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교의 지향이 세속적인 것에 대한 탈 구복에 있게 되면 사찰이라는 공간과 장소는 성스러운 곳이 된다. 그렇지 않고 세속적이고 자아(自我)에 집착한 이기(利己)에 가득한 장소가 된다면 복을 위해 만신(萬神)이 존재하는 공간과 다를 것이 없다. 복에 대한 초월성은 ‘보다 많은 존재와 함께 누리는 복’, ‘세속의 욕망을 나누어 가지지 않는 복’의 지향에 있다. ‘온갖 시주와 불공’을 통한 현세적 구복은 ‘온갖 귀신에 조상신에 대한 섬김’을 통한 복 마련하기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할 문제다.

장재진 동명대 교수 sira113@naver.com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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