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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찰의 자연유산-순례길

편의·무관심에 밀려 아름다운 순례길 점차 사라져

▲ 봉정암을 찾아 나선 도보 순례객들.

나라에서 첫손으로 꼽히는 순례길은 어디일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불자가 생각하는 순례길과 기독교도들이 꼽는 순례길이 다를 수 있고, 등산객들이 꼽는 순례길과 문인들이 생각하는 순례길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주변의 불자들에게 먼저 물었다. 어떤 순례길이 가장 인상적이냐고?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숲길을 추천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철 스님이 백련암에 주석하면서 걷던 희랑대와 지족암을 거쳐 해인사의 선원에 이르는 숲길을 최고의 순례길로 치는 이도 있다. 산꾼들이 추천한 순례길은 거리가 조금 있는 선암사에서 굴목이재를 넘어 송광사에 이르는 숲길을 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천 년 숲길’이란 별칭을 가진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과 적멸보궁에 이르는 선재길을 추천하는 이도 있다.

산티아고·기이산지 참배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

사찰은 지방 연결하는 거점
조선 억불로 순례길 잊혀져

순례길마다 숙소 건립하면
매년 10만명 찾는 길 가능

오늘날 불자들에게 최고의 순례길은 용대리에서 백담사를 거쳐 영시암과 오세암을 지나 봉정암에 이르는 숲길이다. 이 숲길은 남녀노소에게 공평하고, 빈부 간에도 차별이 없다. 부자라고 해서 걷지 않고는 결코 봉정암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절기에는 왕복 40여㎞, 하절기에는 적어도 22㎞의 거리를 두 발로 걸어야 갈 수 있다. 봉정암에서 수렴동 계곡을 타고 바로 백담사로 되돌아올 수도 있고, 또는 걸음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오세암으로 내려와 마등령을 넘어 신흥사로 내려 설 수도 있다.

그래도 아쉽다. 다른 나라의 순례길에 비해 너무 짧기 때문이다. 용대리-백담사-봉정암-오세암-신흥사의 비교적 길다는 순례코스가 30여㎞이니 더욱 그렇다. 일본의 이름난 순례코스는 시코쿠[四國]의 88사찰 순례길이다. ‘오헨로’라는 이 순례길은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인 고보(弘法)대사가 1200년 전에 개척한 사찰 탐방길로, 총 길이가 1200㎞나 된다. 일본인들은 걸어서 60일이나 걸리는 이 순례길을 ‘살아생전 한번은 꼭 순례해야 할 곳’으로 꼽으면서 매년 15만명이 순례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 ‘인간세상에서 하늘로 가는 숲길’이란 별칭을 가진 선운사-도솔암 순례길.

코스가 긴 순례길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순례길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곱(스페인어로 산티아고)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찾는 참배객들에서 유래되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은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까미노 프랑세스가 가장 유명한 코스다. 이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그 후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종교를 불문하고 각국의 순례객들이 40여일에 이르는 긴 도보 여정에 나서고 있다(2013년도에만 약 22만명).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단 2곳의 순례길 중, 다른 하나는 일본에 있다. 일본의 긴키지방(나라 현, 와카야마 현, 미에 현)에 솟아 있는 기이산지에 산재해 있는 사찰과 그 사찰을 찾는 참배길이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이 산지의 신성한 곳과 참배길[紀伊山地の靈場と參拜道]’이란 이름을 가진 이 순례길의 등재 이유로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경관을 들고 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독특한 문화경관이란 1200년간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이용되고 있는 순례길과 함께 117개 사찰로 이루어진 마을(고야산 곤고부지)과 독특한 풍광(오코노인), 인간의 활동으로 변형된 자연경관(논밭과 산림)을 말한다.

기이산지의 신성한 장소를 연결하는 순례길은 24㎞의 초이시미치[町石道]를 비롯하여 구마노-산케이미치-고헤치, 오미네 오쿠가케미치 등 모두 300여㎞나 된다. 이들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초이시미치이다. 초이시미치는 그 이름처럼 180개의 표석이 서 있는 순례길이다. 산 아랫마을 구도야마[九度山]의 지손인[慈惠院]절(해발 100여m)에서 고야산(해발 800여m)의 곤구부지[金剛峯寺] 콘폰다이토[壇上伽藍]까지 109m마다 서 있는 180개의 표석(標石)이 유명하다. 표석은 고보대사 때부터 마을에서 산으로 가는 순례길의 거리를 표시하도록 꽂은 나무표지에서 유래되었지만, 지금부터 900여년 전부터 돌로 만든 표석으로 서서히 교체됐고, 그 표석들이 문화경관으로 자리 잡아 세계유산이 되었다.

▲ 월정사-상원사의 ‘천년 숲길’, 선재길.

지난 9월 일본 사찰림의 경영 현장을 확인하고자 곤구부지를 방문했던 길에 24㎞의 초이시미치를 걸었다. 삼나무와 편백 숲 속으로 난 참배길을 걷는 이들은 다양했다. 전통 순례복장을 하고 줄을 지어 걷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고, 중년의 부부나 안내 지도를 손에 든 젊은 외국인도 있었다. 

일본은 어떻게 1200년전의 순례길을 오늘날까지 지켜올 수 있었을까? 속도와 효율을 숭상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직립보행’의 가장 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순례길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이 초이시미치를 걷는 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일본의 세계적 불교 순례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변변한 순례길을 갖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봤다. 사찰은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이자 지방을 연결하는 거점이었다. 고려시대 사원의 역할을 생각하면 쉬 상상할 수 있다. 물건의 생산과 집산이 사원에서 이루어졌고, 사람이 묵어가는 곳도 사원이었다. 수백 년간 지속한 억불숭유 정책에 따라 사원의 전통이 조선시대에 단절된 것도 순례길 방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밖에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이 떠올랐고, 급격한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의 개발지상주의도 떠올랐다. 사찰림을 공원(국립, 도립, 군립)용지로 편입한 정부정책의 무비판적 수용과 그 반대급부(입장료 수입 등)도 생각났다. 문화재의 가치는 알지만 문화경관이나 자연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안목도 더불어 떠올랐다.

순례길 망각 현상은 송광사나 해인사에서도 확인된다. 오늘날 송광사를 찾는 방법은 차량을 이용하거나 선암사에서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에 이르는 등산로가 있지만, 옛 지도(1918년도 판 5만 분의 1 지도)에는 서편 출입로와 굴목재 산길 이외에, 벌교에서 곡성(주암)으로 가는 지름길(산길)이 이읍-인구치-송광사-감로암-관재-신흥리-가치-복다로 거의 일직선처럼 표시되어 있다. 벌교나 곡성에서 송광사를 찾는 신자들의 조선시대 순례길은 오늘날은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 세 고갯길(인구치와 관재와 가치)이었음을 1918년도 판 지도는 증언하고 있다.

해인사의 옛 순례길 역시 비슷하게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1918년도 판 지도에 표시된 옛 순례길은 무주에서는 증산을 거쳐 금곡, 장전리를 지나 석항령과 분계령을 넘어서 해인사에 도달하고, 거창에서는 가북과 용암리를 지나 개금동에서 고개를 넘어 해인사로 이어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산행을 목적으로 가야산을 찾는 산꾼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불자들은 자동차를 이용하여 절을 찾고 있다. 그래서 옛 순례길은 점차 우리 기억에서도 스러져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유지되었던 길 자체도 지도상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가끔 겸재가 금강산을 찾았던 때, 거쳐 간 행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한다. 그 당시 숙소는 당연히 사찰이었을 것이다. 건봉사를 기점으로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표훈사에는 어떤 순서로 들렀을까? 정양사, 보덕굴, 마하연, 도솔암, 장경암, 지장암. 관음암, 안양암과 같은 암자들의 순례코스는 어땠을까? 상상의 나래는 땅끝으로 이어져,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초의선사가 다산에게 차를 전하기 위해 만덕산 백련사까지 걸었던 남도의 다도(茶道)는 어떤 길이었을까? 대흥사와 선암사와 화엄사와 쌍계사를 이어주던 차(茶)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이었을까?

상상의 나래는 마침내 나라 최고의 순례길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까지 펼쳐진다. 도보 순례를 활성화하는 첩경은 먼저 백담사, 영시암, 오세암, 봉정암, 신흥사에 각각 순례객 100~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부터 건립하는 일이다. 숙소가 준공되면 그 순례길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은 금세 나라 안팎으로 퍼져나가 매년 10만 순례자가 찾는 코스가 될 터이다. 다음 순서는 적멸보궁이 있는 정암사-법흥사-상원사-봉정암-백담사(또는 신흥사)를 이어주는 사찰의 옛길을 발굴하여 ‘4대 적멸보궁 순례길’을 새롭게 여는 일이다. 매년 100만 불자가 찾는 적멸보궁 순례길의 탄생은 헛된 망상일까? 공상이라도 이런 공상은 언제나 즐겁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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