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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심사자, 갑질하는 판관 아니다”

  • 교학
  • 입력 2015.11.03 11:32
  • 수정 2015.11.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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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민·장재진 교수 관련 기고
‘문/사/철’ 42호서 논문심사 비판
특정신념에 기초해 평가하거나
막무가내식 훈계도 서슴지 않아
무성의한 심사자들은 추방해야

▲ 권오민 경상대 교수
“학술논문 심사자는 논문 지도교수가 아니며, 불교의 특정이념을 수호하는, 또는 불교학의 시비를 판정하는 불교학의 감독관은 더더욱 아니다.”(권오민 경상대 교수)
“논문 심사자는 ‘판관이 된 듯 오만한 마음으로 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연구자로서 애정 어린 충고와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장재진 동명대 교수)

현재 불교학계서 학술지를 발간하는 학회나 연구기관은 20여곳. 이들 학회는 매년 1~4회 투고논문에 대한 심사과정을 거쳐 학술지를 펴낸다. 그러나 논문심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으며, 종종 심각한 감정대립으로 치닫고는 한다. 이런 가운데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와 장재진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가 ‘문학/사학/철학’ 제42호에서 불교학계 논문 심사 문제를 다룬 글을 기고했다.

권오민 교수는 ‘불교학 관련 논문심사 유감’이란 글을 통해 “(논문심사 과정에서) 때로는 이념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며 ‘조언’이라는 형식을 빌리고는 있지만 때로 심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학술활동의 동료라는 신분도 망각한 채 마치 지도교수가 지도학생을 훈계하듯 지시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자신의 논문인 ‘알라야식 존재증명과 경량부’를 '불교학보'70집에 게재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현행 논문 심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권 교수는 ‘알라야식 존재증명…’ 논문에서 지금까지 유가행파와 경량부의 친연관계가 상식처럼 회자됐고, 경량부의 적대자인 설일체유부(=소승)는 당연히 유가행파(=대승)와도 적대적 관계로 그려진 것에 대한 선입견을 파기돼야 함을 꼼꼼히 논증했다. 그런데 심사자는 특정신념에 기초한 불교학의 감독관의 교시 같은 평을 하는가 하면, “아직 한문구조를 분석하는 능력이 미숙하다”거나 “교학 용어를 교학 전체 체계 속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도교수의 막무가내식 훈계도 서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상투적 말로 총평했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부정확하고도 불명료한 논거로써 제시하고 있거나 탄식 내지는 비아냥대거나 심지어 반론이나 비판까지 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반론이나 비판, 비난은 논문 심사자의 역할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반론이나 비판할 것이 있다면 공개적으로 별도 논문으로 제시해야지 익명의 심사자가 논지 자체를 무시하고 억지의 반론과 비난을 쏟아내면 심사 받는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호 교통이 보장되지 않은 반론과 비판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일방적 훈계와 지시일 뿐이다. 그렇지만 편집자로서는 당연히 그에 따른 수정을 요구할 것이고, 그리하여 수정하면 그것이 무슨 논문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권 교수는 이 같은 심사자의 폐쇄적 권위의식은 여전히 학계에 횡행하는 교파적 우월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오늘 우리의 불교학에서는 과거의 불교도들이 자신들의 철학을 산출하기 위해 거쳤을 기나긴 탐구의 과정을 생략한 채 이념·신념만으로 대결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이어 “불교는 지혜의 종교다. 이 때 지혜는 간택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이는 분별적 이해나 탐구를 의미한다”며 “이제 특정 경론에 대한 무한 신뢰나 신념에서 벗어나 비판이나 탐구라는 불교학의 본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재진 동명대 교수
장재진 교수는 학제간 융·복합을 중심으로 불교학계 논문 심사의 문제점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학문적 영역과 역량에 따라 심사자를 구분한 뒤 자격이 없는 심사자들에 대해 적시했다. 첫째는 ‘이 연구는 논문이 안 됨’ 등 짧은 글귀로 무책임한 평과 함께 ‘게재불가’를 하는 사람들이다. 블랙리스트에 거론되는 이들은 학자로서의 양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적 오만이 극에 달한 사람으로, 이런 부류는 각 학회 편집위원장 회의를 개최해 논문심사에서 영구히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수정 후 게재’에 해당하는 정도의 문제를 지적해놓고 ‘수정 후 재심’의 심사평을 올려놓는 사람이다. 나머지 2명의 심사자는 문제가 없다고 평가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수긍하지 않으며, 자신이 못마땅한 부분이 있다면 ‘수정후 재심’으로 처리해 확인하고자 하는 스타일이다. 셋째는 큰 맥락에서 논문을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부분을 지적하면서 마치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평을 하는 심사자다. 이밖에 전문성이 결여돼 있는 심사자와 소통의 의지가 없는 심사자도 논문 심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꼽았다.

장 교수는 3인의 심사자 중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경우 투고자가 3인, 심사자가 3인, 편집위원장이 3인을 선정해 총 9인의 공개토론 및 재심의 위원회를 개최하는 것도 엄정한 심사를 통해 학자들의 창의적인 연구를 독려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논문 심사자는 같은 연구자로서 애정 어린 충고와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이 같은 풍토가 조성되려면 심사자나 투고자가 대척점에 놓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보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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