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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독립10주년 특집-불교와 언론][br]3. 불교언론, 어떻게 비판해야 하나

“공동체 근본가치 부정은 잘못…비판과 호교 균형이 관건”

▲ 한만수 동국대 교수회장과 우희종 서울대 교수 등이 동국대 총장 선거와 관련해 비판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이들은 그동안 동국대 이사장과 총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으며, 일부 매체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동국대 이사장 스님은 최근 우희종 서울대 교수와 불교닷컴·불교포커스를 명예훼손 등 이유로 형사고소했다.

불교언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전문매체라고 할 수 있다. 전문매체이기 때문에 종합일간지나 방송처럼 국민 모두의 현안이 되는 큰 이슈를 다루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교계 이슈를 작고 촘촘한 그물망으로 건져내어 세밀하게 전달해주는 매체로서 기능한다.

언론 비판 있어야 사회도 건강
불교언론도 비판은 필수 요소
인터넷 매체 늘면서 경쟁 치열

일부 불교언론들 과도한 비판
무분별한 흠집내기 뉴스 생산
분열·갈등 증폭시켜 화합 저해

공동체·신심 근간 흔들 수 있어
객관·중립성 입각한 비판 필수
승가화합과 발전에 기여해야

언론은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기능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불교언론 또한 불교신자를 대신하여 불교계의 부조리한 양태를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불교계의 공기로서 기능해야 한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언론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언론이 추구해야 하는 본령 중의 하나이며 불교언론도 당연히 비판 정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최근 인터넷의 발전으로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하는 인터넷 매체가 급증하고 있다. 불교언론 가운데도 인쇄신문은 발행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만 뉴스를 전달하는 인터넷 매체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매체의 수가 많아지면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용자의 관심을 끌려는 목적으로 비판의 강도를 경쟁적으로 높이는 현상이 나타나기 십상이다. 이 현상은 종합지나 전문지 가릴 것 없이 모든 언론에서 나타나며 불교언론 또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언론의 비판 기능은 사회의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화합을 훼손하고 존립 기반을 해체시켜 버릴 수 있는 무분별한 비판 혹은 정치적 편가르기식 비판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언론 스스로 숙고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일부 불교언론이 입장을 달리하는 상대방에 대해 마치 적대 세력에 대한 공격으로 보일 정도로 과도한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지형에 빠져 상대방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일삼는 일반 신문과 방송처럼, 일부 불교언론도 우리편과 상대편을 구분하여 상대방에 대해서는 금도가 없는 비판의 칼을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편가르기식 비판과 금도 없는 비판은 불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이 국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제약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언론 자유를 주요한 헌법적 가치로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도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의견 형성을 위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공익을 위한 보도와 비판 기능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초기에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과 관련하여 광우병 사태를 촉발시킨 모 지상파방송사 시사보도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방송 당시 시급한 현안의 공익적 중요성을 고려하여 재판부가 프로그램 제작자의 형사소추를 면책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가 언론의 자유로운 비판 활동을 얼마나 폭넓게 허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언론의 자유와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것은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지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절대적 자유는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비판은 제한을 받는다.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적 가치관을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체하려는 비판은 법에 의해 제한을 받고 있다. 우리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지나 이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인권보호조약 제10조도 언론의 자유는 국가안보와 공익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수정헌법 제1조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의 제정을 금지하고 있을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지만, 음란물, 아동 포르노그래피, 즉각적인 위해를 초래하는 표현 등은 수정헌법 1조의 보호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다.

국가마다 상황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부정하고 공동체를 해체시켜버릴 위험성이 있는 비판에는 언론의 자유를 적용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써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국가보안법, 군사기밀보호법 등에서 언론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존재하지만, 이 법들이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합헌으로 존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국가에서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기 위해 특히 부당한 권력의 행사나 권력의 부조리한 측면에 대한 성역 없는 언론의 비판을 허용하고 있지만, 그 비판은 공동체의 자정 능력 회복을 위한 비판이지 공동체의 해체를 초래하는 비판까지 허용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언론은 공익을 위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지만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그 책임 또한 엄중하게 짊어져야 할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이다.

불교언론의 비판도 동일하게 불교계 전체의 이익을 위한 비판이라는 제한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불교언론의 비판이 불교 공동체의 모든 것을 다 부셔 버리고 해체시켜 버린다면, 불교언론의 존립 기반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언론도 불교계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불교계 전체의 이익 실현이라는 두 축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전체 이익은 공익이라는 개념으로 정립할 수 있고, 불교 공동체 전체의 이익은 불교의 근본가치를 보호하고 확장시키는 호교(護敎)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언론은 비판과 호교의 경계선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언론이 비판과 호교의 경계선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비판과 호교의 균형은 불교언론이 전문적 매체로서 어떤 저널리즘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 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언론은 일반 언론매체가 지향하는 ‘정론직필’ 혹은 ‘자유와 인권’, ‘평등과 평화’와 같은 우리시대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불교정신에 입각한 차별화된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

불교언론만의 차별화된 가치는 불교의 근본 가치인 승가의 화합을 위한 비판으로 구현할 수 있다. 불교언론의 비판 또한 사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여 불교계 전체가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 불교언론 종사자들이 당위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이더라도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호교에 무게 중심이 놓이게 되면 불교계의 부조리를 은폐하고 결과적으로 불교계 권력층을 비호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언론의 비판정신이 무뎌지면 결국 권력과 타협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역으로 비판에 과도하게 치우치게 되면 비판 그 자체만에 몰두하고 수용자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여 불교에 대한 불신감을 확산시켜 버릴 수 있다. 불교에 대한 불신감 확산은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화시키고 그 결과 불교 신앙심의 근간을 흔들어 버릴 수도 있다. 호교의 입장에서 보면 무분별한 비판은 불교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해종 행위로 인식할 수 있고, 비판의 입장에서 보면 호교를 앞세우는 주장은 언론 본연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명분에 불과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

비판과 호교의 두 기준을 현재의 불교언론에 적용하면 어떤 모습일까? 균형보다는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서로 상대방에 대해 불신하고 비난하는 모습이 지금의 불교언론의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특히 불교계 내부의 정치적 다툼과 관련된 보도에서는 어느 한쪽 편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는 모습까지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공격거리를 생산해 내는 일원으로 합류하기도 하고 건전한 비판이 아닌 무분별한 흠집내기식 뉴스 만들기도 서슴지 않고 있다. 부조리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넘어서 현안에 관여하고 비판과 호교의 어느 한 쪽을 선택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과 같은 불교언론의 모습은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켜 승가화합이라는 불교의 근본 가치를 구현하는 것과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 김관규 교수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우리 사회 언론은 물리적 강제 혹은 경제적 회유 등을 활용한 권력의 통제로 인해 비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민주적 가치의 제도화 그리고 매체의 다양화로 비판이 자유롭게 전개되어 과거와는 다른 환경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자유로운 비판과 더불어 사회 전체에 책임을 지는 모습으로 언론을 재정립해야 한다. 불교언론은 불교계의 부조리에 대해 사실성, 중립성, 객관성에 입각한 비판으로 불교사회의 여론을 환기시키고, 이 여론이 승가의 자정 능력을 작동하게 하여 부조리한 사안이 해결되고, 나아가 승가가 화합하여 한 단계 발전해 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하는 모습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이것이 불교언론이 비판과 호교의 경계선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일 것이다.

김관규 동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317호 / 2015년 1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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