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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장흥 천관산 탑산사-억새군락지-천관사

바람이 낸 억새길 두 절을 잇다

▲ 환희대서 연대봉으로 난 1.2km의 은빛 억새길은 다도해를 품고 있어 멋진 장관을 연출한다. 억새군락은 130만 평방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천관산 돌돛단배
하늘서 새긴 경전
대장봉에 내려놓고
은빛바다 가르며
항해 중”

하늘을 바다 삼아 항해하던 관세음보살 천관산에 이르러 잠시 쉬었더랬다. 바다에 발목 담근 채 다도해 풍광에 젖어들다 작은 섬 하나 끌어와 베개 삼고는 와선에 들었겠지. 배에 가득 실려 있었던 건 불경(佛經). 하늘서 새긴 경전 지상 어딘가에 내려놓으려 했던 것인지, 땅서 새긴 경전 하늘로 이운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관세음보살은 배와 경전을 이 산에 놔둔 채 승천했다. 그 배 한 척 보려 천관산을 오른다.

그 배 어찌 찾을까? 돛이 우뚝 선 돌로 된 배라 했다. 어디쯤? 만 권의 책이 쌓여 있는 듯 해 대장봉(大臟峰)이라 불리는 봉우리 있다 하니 그 어디 쯤 돌돛단배 한 척 정박해 있지 않겠나!

천관산(天冠山). 직역하면 ‘하늘 관’ 쓰고 있는 산. 봉오리들이 연꽃처럼 둥글게 피어 있는데 희유하게도 능선에만 기암괴석이 불쑥불쑥 솟아 있다. 산 아래서 보면 흡사 왕관 형태니 ‘천관’이라 불릴만하다. 조선의 김여중(金汝重)도 ‘유천관산기(遊天冠山記)’에서 “산정에 천자의 면류관을 드리운 듯해 천관산이라 이름했다”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산 모양만 보고 설을 푼 것일 뿐.

조선의 시문선집 ‘동문선’에 실려 있는 ‘천관산기(天冠山記, 천인 스님 저)’에 이런 기록이 있다. “… 남쪽 바닷가 옛적 오아현(烏兒縣)에 천관산이 있다. … 이 산을 지제산(支提山)이라고도 한다. ‘화엄경’에도 있듯이 ‘보살이 머물렀던 곳을 지제산이라 이름하고, 현재 보살이 있는 곳을 천관이라 이름한다’는 설도 이와 같다.”

전남 장흥군을 통일신라 때만 해도 ‘오아현’이라 했다. 정명국사가 인용한 ‘화엄경’ 속 지제산은 ‘화엄경 제보살주처품’에 나와 있다. “… 동남방에 지제산(支提山) 있으니 천관보살이 그의 권속 일천보살과 함께 있으며 법을 설하고 있느니라. …”

자연스런 의문 하나. 지제(支提)란? 사전 풀이로는 ‘흙이나 돌이 쌓인 무더기’다. 한 발 더 나가 보자. ‘지제’는 범어(梵語) ‘차이트야(Caitya)’ 음역이라 하는데, 흙과 돌 등이 쌓여 이뤄진 것, 또는 세존의 무량한 복덕(福德)이 쌓여 모인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탑이다. 신라 40대 왕 애장왕 1년(800년) 때 창건됐다는 저 절을 ‘탑산사(塔山寺·윗절)’라 한 연유가 여기에 있다.

▲ 탑산사(아랫절)서 900m 오르면 탑산사(윗절)에 닿는다. 대웅전서 내려다보는 다도해 풍광이 정말이지 일품이다.

탑산사서 조금 더 오르면 남해 굽어보고 있는 돌탑 하나 만날 수 있다. 어쩌면 저 돌탑 있어 탑산(지제산)이 되고 탑산사로 불렸는지 모른다. ‘아육왕탑’이다.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아육왕이 부처님 사리 봉안하며 세운 8만4천 탑을 일러 ‘아육왕탑’이라 한다. 그런데 저 돌탑, ‘아육왕탑’이란 근거 있는가? 장흥 땅에만 떠도는 전설 아닌가?

‘천관산기’에 나와 있다. “산 남쪽 언덕에 포개진 돌 우뚝 서 있는데 두어 길이다. 서축(西竺) 아육왕(阿育王)이 성사(聖師)의 신통력을 빌어 8만4천 탑을 세웠는데, 이것이 그 중 하나다.”

석가모니 부처님 일대기와 주요 설법을 한글로 번역한 최초의 책 ‘석보상절’. 부처님 사리와 탑 이야기가 주류인 ‘권24’에 ‘천관산 아육왕탑’ 이야기 한 토막 있다. “월식(月食)할 때, 그 귀신(鬼神)들이 8만4천 탑 함께 세우니, 진단국(震旦國·지금의 중국)에 있는 게 열아홉, 우리나라에도 전라도 천관산과 강원도 금강산에 이 탑이 있어 영험한 일이 있었다.”(김영배 ‘석보상절 제23·24 연구’ 참고) 아육왕이 탑 세운 시기도 적시되어 있는데 ‘려왕 마흔여섯째 해 무진(戊辰)이라’ 했다. 려왕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아쇼카왕 생전의 무진년이라 하면 기원전 233년이다.

▲ ‘석보상절’(권 24)과 ‘동문선’의 ‘천관산기’에 기록된 아육왕탑. 아쇼카 석주(Asoka Pillar)와 유사하다.

돌탑은 분명 이 산 남쪽 기슭에 서 있다. 원래 5층 돌탑이었는데 맨 위층의 돌 하나 조선시대 때 떨어졌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녹야원 ‘아육왕 석주’를 딱 닮았다.

아육왕이 세운 8만4천 탑마다 부처님 사리 안치되었다고 보면 적어도 우리 땅에 불사리가 전해진 건 기원전 233년이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사리 전래시기가 549년(진흥왕 10년)이고 ‘삼국사기’가 전하는 사리 전래 시기는 643년(선덕여왕 12년)이니 무려 800여년 앞선다. 사리 전래가 곧 불교유입이라 전제하면 삼국시대 불교전래보다 600여년 앞서고, 남방불교 가야 전래(김수로왕 7년, 48년)로 기준 잡아도 300년 가까이 당겨진다. 하! 왜 이리 가슴이 뛰나.

기원 전 이야기라 해 허투루 듣고 넘어갈 일만은 아니다. ‘삼국유사’ 속 경주 황룡사 장육상도 아육왕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황룡사 건립 17년 불사 회향한 해(569년) 남쪽 하곡현 사포(지금의 울주 곡포)에 배 한척 정박했다. 배를 조사해 보니 편지 한 장 나왔다.

“서축 아육왕은 석가 3존상을 주조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구리 5만7000근과 황금 3만 푼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며 축원한다. 원컨대, 인연 있는 국토에서 장육존상을 조성해 달라.”

▲ 송광사 말사인 천관사 역시 통영 화상이 지었다. 현재 중창불사 중이다.

부처와 두 보살의 형상을 그린 초본도 함께 담겨 있었다. 황룡사는 몽골 침입으로 불타면서 터만 남아있는데 장육상 역시 그 때 화마가 삼켜버린 듯하다. 의상대사도 아육왕탑의 영험 소식을 들었던 것일까? 탑산사에서 아육왕탑 오르는 길목에 의상대사가 수도정진했다는 의상암 터가 석등을 도반 삼아 남아 있다. 저 자리에 아주 작은 초암 하나 앉으면 참 좋겠다. 정명국사 말대로 “한가롭게 앉아 있노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엉기고 형상이 풀리어 심오한 진리의 경지”로 들어갈 것만 같다. 좀 더 올라가야 한다. 돌돛단배 찾아야 하지 않나.

아홉 용이 노닐다 하늘로 올라갔다는 구룡봉에 오르니 산 봉오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가만! ‘저거 돛단배 아닌가?’ 한 걸음에 달려갔다. 맞다. 돛 하나 당당하게 새워 놓은 영락없는 돛단배다. 사람들은 저 봉오리를 가리켜 ‘진죽봉’이라 한단다. 대장봉 환희대서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곳에 돛단배 정박해 있다.

▲ 구룡봉 능선서 바라 본 진죽봉.

▲ 구정봉서 바라본 진죽봉. 돛대 앞세운 큰 배처럼 보인다. 관음보살이 불경을 돌배에 싣고 와 천관산서 쉬었다가 돛대를 남겨두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 여기 대장봉에 경전 쌓아두고 돛단배는 저 곳에 매어 놓은 게다. 사람들은 ‘만권의 책’이라 하는데 잘못 안 게지. ‘만권의 경전’이다. 이 산 오르는 사람 누구라도 법향에 흠뻑 취해 환희심 불러 일으켜 보라고 ‘환희대’도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 저 배에 올랐던 보살! 관세음보살 아닌 천관보살이었나 보다. 하늘서 새긴 경전 이 땅에 내려놓으신 거다. 승천한 게 아니라 지금도 이 산에 머물러 있다.

환희대서 연대봉으로 난 억새길! 역광에 비친 억대숲은 온통 은빛으로 빛난다. 산 아래 푸른 바다 떠 있고, 산 정상에 은빛 바다 펼쳐 있으니 ‘숨 막히는 절경’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러고 보면 저 돛단배 정박해있는 게 아니라 항해 중이다.

▲ 황금 들녘을 품은 다도해에 노을이 지고 있다.

저 아래 천관사도 통영 화상이 지었다지. 중창불사가 진행 중인데 2013년 전남지역 최초로 유리 도가니가 출토됐다. 왕실을 비롯한 청해진 등과 연계되었던 천관사의 왕성했던 사세를 반영한 것이어서 교계 내외로 주목받고 있는 산사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89개의 암자가 이 산에 들어 앉아 있어 독경 소리가 끊이지 않던 산. 천관산은 불산(佛山)이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탑산사(아랫절, 조계종) 주차장. 탑산사 참배 후 동백꽃 군락지를 지나 1시간 정도 오르면 통영(通靈)화상(800년)이 창건 했다는 탑산사(윗절, 태고종)를 만난다. 절 바로 위 왼편에 아육왕탑이 있고 20여분 더 오르면 구룡봉에 닿는다. 환희대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도착. 천관사로 내려갈 경우 환희대 갈림길에서 하산하는 게 안전하다. 장흥군이 내놓은 천관산 등산로만도 10개 코스. 어느 길로 들어서도 천관산 구룡봉이나 환희대, 연대봉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남해 풍광을 아껴 두었다 보고싶다면 천관사 주차장을 들머리로, 바다를 보며 산을 오르고 싶다면 탑산사를 들머리로 삼아야 한다. 탑산사와 천관사는 먼 길이다. 마중 나올 차가 없다면 원점 회귀 코스로 잡아야 한다.
 

이것만은 꼭!

 
천관사 3층석탑  : 천관사 경내 입구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사찰 인근 논바닥에 일부가 훼손된 채 방치되어 있었다. 1984년께 현 위치로 옮겨 복원했다.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넘어오는 과정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보물 제795호.

 

 

 

 
천관사 5층석탑 : 극락보전 앞에 서 있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3단 받침을 두었고, 윗면은 경사가 급하다. 지붕돌은 두꺼운 반면 3단의 지붕 받침은 매우 얇아 대조를 이룬다.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관사 석등 : 5층 석탑과 함께 서있다. 네모꼴의 지대석 위에 기둥처럼 긴 간석과 불창돌, 지붕돌로 이뤄져 있다. 지붕돌의 여덟 귀퉁이가 멋지게 들려있다. 장흥 보림사 석등과 양식이 같다.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보고 있다.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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