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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신이 인문정신이다

기자명 함돈균

‘인문학’이라는 말은 이제 한국에서 사회현상이자 시대정신 같은 것이 되었다. 최근에는 인문학을 전통적 차원의 학문적 단위나 지식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생각과 문화 차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인문정신’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라는 말에 비해 인문정신이라는 말은 모호하다. 사회적 공공성을 지닌 인문적 가치의 심화·확산이 절실하다고 생각해서 인문기획자의 길에 한 발을 겨우 내딛고 있는 내게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난 요즘 그 모호한 ‘인문정신’이라는 걸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으로 불리는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의 한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황현산 선생님은 자기를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부르는데, 정작 당신은 ‘어른’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고 고백하고 계셨다. 문득 책상에서 생각해 보니 환갑이 넘은 자기가 공부하고 번역해 온 거의 모든 책의 저자들이 그 책을 쓸 때에는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젊은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취지의 말을 덧붙이셨다. 그 글은 그들의 순수한 역량으로 썼다기보다는, 젊음이라는 빛나는 영감의 시기에 어떤 신성한 기운과 정신이 그 육체에 깃들어 그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거라고. 이 탁월한 불문학자이자 정확한 번역가이며 아름다운 문장가가 연구하고 번역해 온 대상들이 세계문학사와 현대지성사에 기념비적인 자리에 있는 드니 디드로,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아뽈리네르, 앙드레 부르통 같은 이들이다. 이런 작가들을 다른 식으로 말해 ‘인문적 지성’ ‘인문정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생각해 보면 인문정신의 정수라 불리는 것들의 상당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년기’의 산물이다. 그러하기에 ‘요절 작가’라는 말도 있는 것이며, 이는 세계사상사의 중요 국면에서 더 두드러진다.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이들의 사상의 절정에는 예외가 없다. 인간의 육신으로 신의 나라를 설파하던 예수의 공식 나이가 서른 살 즈음이었다. 그는 청년의 정신으로 정치의 부패와 종교의 타락과 삶의 나태를 추상같이 꾸짖는 동시에, 그 정신으로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따뜻하게 몸을 어루만져 주었던 것이다. 권위적이고 귀족적이며 매우 계급적인 고대 정신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자기갱신을 통해 누구나 정신의 자유와 해방적 삶이 가능하다고 설파한 고타마 시타르타의 혁명적 사상 수행과 출가(出家)는 예수와 비슷한 나이에 이루어졌다. 기독교나 불교나 ‘청년정신’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는 어떠한가. 그들의 사상적 여정은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되었으나, 그들의 정신은 일생동안 일관되게 ‘청년정신’에 머무르고 집중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칠십이 넘어 재판에 회부될 때, 그는 두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하나는 신을 모독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청년들을 현혹시켰다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치졸한 재판 중 하나였던 이 재판의 기소이유는 후대에 진실의 눈을 통해 사람들에게 거꾸로 독해된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신의 정신에 가장 가까이 다가 간 사람이며, 청년들에게 가장 열렬히 사랑받았던 ‘청년정신’이었구나. 그렇다면 공자는? 더 말해 무엇하랴. 권력이 없어도 그를 따르는 수많은 청년사상가들을 보지 못하는가. 공자나 소크라테스나 늙지 않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인문(人文)’을 중요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현 정부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볼 현상 중에는, 역대 정부 중 청년에게 가장 인기 없는 정부 중 하나이며, 요직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라진 정부라는 사실도 있다. 사회갈등을 조장하면서까지 추진되고 있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의 연령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청년들의 입에서 ‘N포세대’를 넘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역사와 사회를 미래세대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선배세대가 실천해야 할 최고의 인문정신이다.

함돈균 husaing@naver.com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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