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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무생법인

기자명 서광 스님

물질적 보시는 다다익선 원리 따르지 않는다

“수보리야! 만약 항하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보시하는 사람과 일체 현상에는 아(我)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인(忍)을 성취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후자의 보살이 전자의 보살보다 그 공덕이 훨씬 더 뛰어나다. 왜냐하면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누리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복덕을 누리지 않습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자기가 지은 복덕에 탐욕을 내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복덕을 누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음에 분별·집착 없는 경지
깨달음 얻고자 하는 사람은
중생에게 이로운 보시해야
예외 없는 평등한 마음 관건

무아(無我)를 깨달아서 인(忍)을 성취했다는 말은 마음에 집착이 없는 경지인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했다는 의미다. 모든 인식대상(法)에 대해서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無生) 경지다(忍).

왜냐하면 무아를 깨달은 보살은 주객을 분별하는 이원적인 마음이 사라지고(無念, 不二法門), 생멸하는 현상에 대한 집착이 소멸(無相)되어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어지기(無所得, 無願)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더 이상 그 어떤 관념이나 대상에도 머무르지 않고(無住), 머무를 곳도 없어져서(無住處) 다투지 않게 된다(無爭).

치유적 관점에서 보면 주객으로 분별하는 마음작용은 인지적 장애(망상)를 일으키고, 그 나누어진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작용은 정서적 장애(번뇌)를 일으키는데 이 둘이 발생하지 않는 심리적 상태를 우리는 마음이 비워지고(空) 고요해(寂)졌다고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공적해진 상태에서 우리는 가짜가 아닌 진짜 ‘나’를 모든 대상, 우주 만물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에 평화, 조화, 화합, 평등, 공생하는 삶을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부처님께서 왜 온 세상을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하는 것보다 무생법인을 성취한 보살의 공덕이 더 훌륭하다고 하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좀 더 현실적인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와 같은 마음의 상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가장 높고 깊은, 그리고 넓은 마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금강경’의 첫머리로 되돌아가서 우리의 기억을 살려 보자.

수보리존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킨 보살은 어떻게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부처님께 여쭈었던 장면이 생각날 것이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단 한 중생도 빠짐없이 일체중생을 모두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리라는 서원을 세우되, 그들을 제도했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유는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에 아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규봉선사는 이러한 보살의 서원과 원력을 보살이 가져야 할 4종류의 마음으로 분류했다: ①구제의 대상으로 우주의 모든 정신적, 물질적/비물질적 존재들을 포함하는 넓은 마음(廣大心) ②일체중생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개인적 평화나 행복(성문,연각)에 그치지 않고 그들 또한 이타심과 자비심을 실천(第一心)하도록 도움 ③주객에 대한 분별심이 없는 무념, 공, 한 몸, 적정한 마음(常心) ④무아, 즉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마음(不顚倒心).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한마디로 가장 높고, 깊고, 넓은 궁극적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무조건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보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보시는 사심이 없는 무아로, 예외가 없는 절대 평등한 마음으로 실천하라고 하신다.

사실 물질적 보시(財施)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중생을 진정으로 성장시키고 행복과 웰빙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것을, 필요한 정도로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오직 깨달음을 향한 영적보시(法施) 만이 소위 ‘투여량 의존성(dose depen dent)’, 즉 많이 복용할수록 효과도 그만큼 커지는 원리를 따를 뿐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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