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신경림의 ‘갈대’

기자명 김형중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통 노래한 시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갈대는 서로를 의지하며
집단으로 군생하는 식물
자신의 존재 정확히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 부처

인생이란 눈물이다. 마음속으로 애태우며 기다라며 눈물 속에서 떨어지는 그 눈물 받아먹고 자라는 나무이다. 첫사랑인 소녀 생각만 해도 그리움으로 눈물이다. 취직시험에 낙방하고 절망하면서 흘린 눈물은 또 얼마냐. 영화보고 울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을 깨닫고 스스로 단단해지면서 세상에 살아남는 인내의 묘법을 배운다. 쓴 약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몸을 회복시켜주듯이 눈물은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는 묘약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눈물이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 줄 모른다. 인생은 조용한 울음이다.

인간은 원래가 고독하고 슬프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이다. 그것은 인간이 사는 현상세계가 무상하여 쉼 없이 변화하고, 그 실체가 없는 허망하여 공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인연 따라 나타났다가 인연 따라 소멸하고 만다. 어느 것 하나 독자적으로 완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연기적 존재이다. 그래서 외롭고 짝을 찾아 제 몸을 흔드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며 갈대 줄기 속 빈 구멍 속에서 남모르게 조용히 우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울음소리이다. ‘갈대’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통을 노래한 시이다.

갈대가 자라는 곳은 고요한 평온이 아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강가나 바닷가가 가까운 언덕길이다. 갈대숲은 바람이 세차게 분다. 갈대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서로를 의지하며 집단으로 군생(群生)하는 식물이다.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도 그렇다. 고통의 바다인 고해요, 불타고 있는 화택이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만만한 세상이 아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보다도 눈물 흘리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인생은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버티고 견뎌내면서 살아간다. 무지한 중생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살아간다. 왜 자신이 고통 속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모른다.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 부처이고, 모르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중생이다.

신경림(1935~현재)은 우리의 인생이 갈대처럼 흔들리며 눈물 흘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읊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고통에 의한 흔들림, 소리 없는 울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삶은 내면화된 정적의 울음이다. 그러나 꺾이거나 쓰러지지 않고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버티면서 끝까지 생존하는 중생이 인간이다.

‘갈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의인화하고 상징하는 시어이다. 갈대의 인생이다. 어찌 여자의 마음만 갈대이랴. 남자도 사랑하는 여자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한없이 흔들리며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갈대처럼 살아남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텨내는 자가 살아남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우리의 인생도 세파에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갈대처럼 바람에 꺾이지는 않는다. 다만 흔들릴 뿐이다.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속으로 울 뿐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갈대’는 1956년 ‘문학예술’지에 이한식의 추천으로 등단한 처녀작이다. 시인의 깊은 사고와 철학이 잘 나타난 주지적(主知的)인 서정시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