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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주의와 불교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했다. 상하원 모두 90% 이상의 압도적인 당선이다. 의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내년 미얀마 대선에서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어렵지 않게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는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얀마 헌법은 외국인 남편을 두거나 외국인 자녀를 두게 되면 대통령 출마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아웅산 수지는 영국인과 결혼했고 국적이 다른 아들들이 있다. 아웅산 수지의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한 악법이지만 이를 바꾸기란 쉽지 않다. 개헌을 위해서는 국회의원 75%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미얀마는 군부가 선거결과에 관계없이 25%의 의석수를 할당받는다. 군부의 동의가 없이는 개헌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웅산 수지는 총선이 끝나고 “대통령보다 높은 자리에서 정부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자들에게 “패자들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패배한 군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지혜가 돋보인다. 어찌됐든 이제 미얀마 민주정부 수립은 상수가 됐다. 53년에 걸친 기나긴 군부독재가 종말을 고하게 됐다.

미얀마는 불교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국민의 90%가 불자이고 출가한 스님이 50만 명이나 되는 대표적 불교국가다. 국제사회는 지난날 미얀마의 가난과 군부에 의한 통치를 불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가 사회참여보다는 자기수행을, 현실참여보다는 초월을 택하는 경향 때문에 스님들은 물론 국민들도 민주화에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불교에 기댄 바가 크다. 미얀마 불교는 항상 민중들과 함께했다. 비록 군부와 일부 상층부의 승려들이 결탁하기는 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스님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군부가 군복을 벗고 제도적인 민주화를 단행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2007년 ‘샤프론 혁명’은 스님들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군부독재에 항거한 시위에서 스님들이 앞장을 섰고 이 과정에서 31명의 스님들이 숨지고 수백 명의 스님들이 감옥에 투옥됐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국민들이 분노했고 결국 군부는 다음 해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헌법초안을 만들더니 2010년 선거를 단행했다. 군부가 군복을 벗고 선거를 통해 민간정부를 표방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로부터 5년. 미얀마는 야당의 총선 압승으로 명실상부 문민정부를 탄생시킬 수 있는 초석을 쌓게 됐다.

미얀마 민주화 상징 아웅산 수지 또한 독실한 불교신자다. 그는 자서전과 인터뷰를 통해 “15년에 걸친 군부의 가택연금에도 위빠사나를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가 군부의 폭력 앞에서도 국민들에게 철저히 비폭력을 당부했던 것 또한 오랜 불교수행을 통한 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총선에서 승리한 이상 아웅산 수지는 민주투사로만 남아있을 수 없게 됐다. 스스로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내년 대선을 거치고 나면 국정은 그의 몫이다. 국민이 그에게 의지했지만 그 또한 국민을 의지해 오늘의 승리를 일궈냈다. 그리고 국민이 그에게 원하는 것은 그의 승리가 아니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정부와 경제적인 풍요를 달라는 것이다. 만약 이걸 이루지 못하면 국민은 매정하게 그를 떠나게 될 것이다.

▲ 김형규 부장
미얀마의 민주화는 곧 불교 민주주의 실험이다. 대중공의라는 합의전통, 무소유와 절제라는 불교적 가치를 통해 미얀마의 민주주의의가 천박한 자본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했던 불교가 국정의 이념으로 어떻게 불교적인 민주주의를 창출해 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미얀마는 지난해 세계 기부지수 1위였다. 비록 가난하지만 자비와 보시라는 불교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를 향한 아웅산 수지와 미얀마 국민들의 장도(長途)에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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