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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최고 가치, 제자리에 있을 때 드러나는 법이죠”

문화재 외호신장 이영권 경감

▲ 지난해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사립박물관장 문화재 은닉 사건의 숨은 공로자 이영권 경감. 2006년~2014년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근무하면서 문화재 분야 범죄 수사의 독보적인 전문가로 활약했다.

지난해 중요 불교문화재를 포함한 유물 수백점을 개인 수장고에 은닉해 사회적 충격을 줬던 사립박물관장 권모씨가 최근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그 자체로 관심의 대상이다. 문화재보호법상 ‘불법 취득 및 은닉’의 혐의가 인정된 흔치 않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형법에 우선하는 특별법이지만, 실제 문화재보호법을 준용해 기소가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법조계 내 입법취지에 대한 인식이 낮고 입증의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은닉죄의 경우, 혐의가 법정에서 인정된 판례는 그야말로 희귀하다. 이번 사례가 문화재계 안팎에서 대단한 성과로 주목받는 이유다.

2006~2014년 서울광역수사대서
도난문화재 8000여점 회수 성과
문화재 수사분야 독보적인 존재

불교문화재 은닉한 관장 검거로
보물급 48점 불교계 품에 안겨
첫 수사 실패 후 치열한 노력이
문화재 지식·수사력 확보 토대

불교계의 관심도 높다. 사립박물관장이 은닉한 문화재 중에는 고성 옥천사 나한상, 청도 대비사 영산회상도, 삼척 영은사 영산회상도, 순천 선암사 53불도, 안동 봉정사 독성도 등 보물급들이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총 48점의 불교문화재들은 현재 모두 회수돼 불교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 중이다. 범인의 검거는 물론 범죄의 대상이 된 문화재까지 무사히 회수했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성과다.

이같은 이례적 성과를 이끌어 낸 주인공은 바로 마포경찰서 이영권 경감. 문화재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정보력, 치밀한 전략으로 수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담당수사관이었던 그는 이‘사립박물관장 문화재 은닉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11월9일 마포경찰서를 찾아 사건의 경위를 전해 들었다.

엄청난 성과를 낸 사건들이 으레 그렇듯 시작은 사소했다. 2014년 5월,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문화재팀장으로 근무하던 이 경감에게 제보 하나가 전달됐다. 인사동의 한 경매에 도난 문화재와 유사한 작품이 출품됐다는 것. 종종 입수되는 제보 형태로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건은 뭔가 조금 다르다는 직감이 왔다. 오랜 수사경력으로 발달한 본능적인 ‘촉’이다.

이 경감은 즉시 문화재청 관계자를 대동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제보 작품을 비롯해 총 4점의 불교문화재가 도난 물품으로 확인됐다. 작품들을 현장에서 즉시 압수한 뒤 출품자를 통해 실소유자의 신원을 확보했다. 사립박물관장 권모씨.

순간 이 경감의 눈앞이 번쩍 뜨였다. 그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업계에서 워낙 유명하기도 했지만 과거 이 경감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 이영권 경감의 활약으로 불교계 품으로 돌아온 대비사 영산회상도.

때는 8년 전, 이 경감이 처음 서울광역수사대에 배치됐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모씨는 그가 문화재 분야에서 처음으로 담당했던 사건의 피의자였다. 당시 권모씨는 전국 사찰과 서원 등에서 도난 당한 문화재를 취득해 보관해오다, 공소시효가 지난 뒤 박물관에 전시하거나 보관해 오다 적발됐다. 규모도 상당했다. 창녕 관룡사 ‘영산회상도’와 장성 백양사 ‘아미타 극락회상도’, 나주 불회사 범종, 대흥사 ‘지장시왕도’ 등 불교문화재 7점을 포함해 모두 252점에 달했다. 대부분 작품이 도난 이후 공소시효가 지나서야 공개된 정황을 살펴볼 때, 의도적으로 장물을 확보·은닉했다는 혐의가 짙었다. 유죄를 확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혐의 없음’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권모씨가 “문화재들을 직접 보관함으로써 해외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막고 향후 전시를 하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립박물관장 권모씨는 혀를 내두를 만큼 치밀하게 법의 포위망을 피해갔다. 담당수사관으로서는 허탈함을 넘어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이 경감은 “문화재 분야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특히 어려워 수사 과정이나 법의 적용에 있어서 세세하게 고려할 것들이 많은데 당시엔 나도 이쪽 분야의 경험이 없어 서툴렀다”며 “수사 과정에서 은닉의 구체적인 정황을 보다 자세히 확보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무엇보다 컸고 경험이 쌓이고 노하우가 축적될수록 더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실패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실패를 거울삼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결국 문화재 수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 경감은 이후 문화재와 장물 관련 판례를 모조리 찾아 분석하고 연구했다. 당시만해도 문화재보호법이 적용된 판례는 흔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은닉죄가 인정된 판례는 서너건에 불과한 반면, 인정받지 못한 판례는 숱하게 많았다. 그만큼 은닉 혐의 입증은 쉽지 않다. 형법상 장물죄 관련 판례까지 샅샅이 뒤졌다. 혐의 인정 유무의 핵심이 되는 포인트를 찾아 분석해 뒀다가 현장에서 적용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문화재 관련 교육도 적극적으로 찾아 들었다. 특수분야인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분야별 문화재 전문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듣고 배우며 인맥도 쌓았다. 이론은 수없이 이어지는 현장 경험을 통해 그 만의 노하우로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수사력도 크게 늘었다. 문화재 사범 개개인의 취향과 특성, 지역별 유통경로, 조직과 인맥도 등이 안 봐도 훤히 꿰뚫을 정도였다.

덕분에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서울광역수사대에 근무하면서 문화재 수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무수히 많은 성과를 냈다. “문화재 범죄 수사는 이영권 경감을 기준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그만의 노하우로 문화재 분야의 경찰 수사력과 혐의 입증 방식 등을 크게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이경감이 서울광역수사대 문화재팀에서 근무하던 2006년부터 2014년까지의 일궈낸 성과는 숱하다. 8년간 언론에 보도된 굵직한 사건만 22건, 수사를 통해 회수해 낸 문화재만 8000여건이 넘는다. 이 중 불교문화재가 30~40%에 달하니 단연 ‘불교 문화재의 외호신장’으로 불릴 법하다.그러고보면 2014년 사립박물관장 권모씨와의 악연이 다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경감은 “수사 과정에서 사립박물관장 권모씨의 이름이 나온 순간 전율이 흐르는 듯 했다”고 회상했다.
이 경감은 수사에 착수하기에 앞서 치밀하게 전략을 짰다. 눈앞에 드러난 상황을 성과로 만들기보다, 이를 통해 이면에 숨겨진 더 큰 그림을 찾아 한번 제대로 수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권모씨와 마주한 이 경감은 각종 정황과 진술을 통해 제3의 수장고의 존재를 확신했다. 기나긴 설득이 이어졌고 권모씨는 결국 그에게 아무도 알지 못하게 철저하게 숨겨진 제3의 수장고가 있음을 털어놨다.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 이 경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창고였다. 곰팡이와 먼지, 악취가 진동했다. 유물이 보관돼 있는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보관 물품들은 습기를 차단하기 위한 신문지와 마분지, 비닐과 충격 방지 필름 등으로 완전히 밀봉된채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창고 안에 어떤 작품이 보관돼 있는지를 확인할 관리 대장이나 간단한 목록조차 없었다. 창고에 작품을 넣은 당사자만이 알수있는 진짜 비밀 창고였던 셈이다.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문화재들은 이 경감의 노력으로 제자리로 회수됐다. 전문지식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끈기,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경감은 “이번 사례는 개인적으로도 참 뿌듯하다”며 웃었다. 문화재 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범인 검거보다 문화재의 회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는 “문화재가 범죄로부터 회수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이 없다”고 전했다. 문화재 중에서도 특히 사찰 문화재가 그렇다.

“법당 내 온전히 자리를 지키는 탱화와 불상을 보면 그 자체로 환희가 느껴질만큼 아름답고 여법함을 느낍니다. 화기가 훼손된 채 떠도는 불화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지요. 모든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법입니다. 제가 문화재 수사에 몰입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 이영권 경감 너머, 불국사 사천왕상이 빛을 발한다. 수년전, 직접 사진을 찍은 뒤 쭉 모니터 바탕화면으로 사용하고 있다. 엄하면서도 여유롭고, 화려하면서도 투박한 듯 날카로운 사천왕상의 매력에 푹 빠진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문화재 범죄 근절과 도난 문화재 회수를 향한 이 경감의 남다른 원력 또한 사찰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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