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선원 산청선원 -하
보림선원 산청선원 -하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11.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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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으로서 참나, 곧 내 부처 찾아야 불보살 세계 본다”

▲ 육체로서 ‘나’로부터 허공으로서 ‘참나’로 돌아서느냐. 철야정진은 이 한 순간을 얻기 위한 담금질이었다. 수행자들은 담금질한 살림살이를 나눴다.

이민형(40, 명각)씨는 5년 전 보림선원과 인연을 맺었다. 35세이던 해, ‘도솔천에서 만납시다’가 인연씨앗이 됐다. 한 번도 실제로 뵌 적 없는 백봉 김기추 거사는 꿈속에 나타나 “앞소식을 알아야 한다”고 경책했다. 그 말이 너무 사무쳤다. 그의 가슴에 깊이 남은 한 마디였다. 그래서 선원에 계속 온다. 좌선하다 백봉 거사 사진을 잠깐 볼라치면, 거사는 웃기도하고 비웃기도하고 울어주기도 했다. 아직 ‘허공으로서 나’를 느껴보진 못했지만 백봉 거사의 따듯한 가르침을 외면할 수 없다. 이번 철야정진에 뒤늦게 왔지만 백봉 거사 육성법문을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유였다.

좋고 싫은 마음의 앞소식 찾아
법문 듣고 좌선하며 포행·울력
백봉 거사와 공부한 묵산 스님
수행자와 함께 정진하며 독려
회향 때 소감들 나누며 재발심


“여러분 성품은 밉다 곱다 하는 그 앞소식이다. 좋다 나쁘다 하는 그 앞에 있는 소식은 시공간이 없다. 성품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 밉다 곱다 하는 번뇌엔 시간이 달라붙는다. 그러나 밉다 곱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앞소식에는 시간이 없다. 성품은 허공 그리고 공겁, 법신과 같다. 색신은 나퉜다가 소멸한다.”

▲ 백봉 거사 묘소를 정리하는 울력.

1주일에 한 번씩 산청선원을 찾았지만 철야정진은 처음이던 강창희(52, 실상)씨에게 법문은 명쾌한 논리로 다가왔다. 주로 독학하며 ‘금강경’을 공부했던 그였다. ‘금강경’ 이해를 위해 여러 책도 사서 읽어봤다. 백봉 거사의 ‘금강경 강송’처럼 확연하진 않았다. 다른 해설들보다 백봉 거사 강송은 현대적이고 단순한 논리로 ‘금강경’을 풀었다. 철야정진에서 듣는 육성법문은 그에게 ‘허공으로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확신에 찬 육성은 자기 깨달음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해석이 아니라 ‘자기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배울수록 정진할수록 믿음이 강해진다. 도반들과 같이 격려하며 정진하니 의지도 되고 좋다. 공부하기 좋은 도량”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법을 9시간 들어도, 새말귀를 675분이나 붙들고 있어도 신참은 물론 베테랑에게도 철야정진은 극기 그 자체다. 206개 뼈 마디마디는 모두 저려오고 신경세포가 없는 머리카락과 손발톱조차 아려올 정도다. 몸뚱이가 무정물이고 헛것이라는 진실은 사라지고 고통만 남는다. 여기에 수마까지 덮치면 새말귀는 뿌옇게 되고 좌선은 흔들렸다. 새말귀는 둥둥 떠다녔다. 대신 색신으로서 몸뚱이에 찾아온 갖은 번뇌들은 마음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생에 결판내려고 작정해야 한다.” 홍승동(57, 가운)씨는 백봉 거사 경책을 잊지 않고 안 보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혼침에 시달렸다. 느슨하게 하면 멀었다는 스승의 죽비도 수마를 밀어내진 못했다. 그럼에도 직장인으로서 일대사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편으로 새말귀를 믿는다. 그로서는 부처인 그 법신자리가 몸뚱이를 굴린다는 진실을 그대로 믿고 수행해 자성을 깨치고 부처습관을 들이는 공부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스마트폰 잡을 때도 아내와 말다툼 할 때도 ‘법신자리가 무정물인 입을 통해 말다툼을 하며 싸우네’라고 돌이킨다. 그렇게 싸움을 싱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직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견성을 위해 정진하겠노라 재발심했다. 백봉 거사 육성법문은 그의 재발심에 힘을 실었다.

“‘참나’는 이 몸뚱이를, 이 무정물을 끌고 뭔가를 한다. 무엇이 견성인가. 몸뚱이를 굴리는 성품을 보는 것이다. 이 자리 알면 견성이며, 이 자리가 바로 부처다. 여기를 떠나서 부처를 구하지 말라. 이 도리를 지나 내 부처를 찾아야 남의 부처를 본다. 이 말 한 마디가 가장 중요하다. 사실 불보살 세계에 살면서도 내 부처를 못 찾기에 불보살이 있어도 모른다.”

▲ 백봉 거사와 공부한 묵산 스님과 촬영.

백봉 거사 자녀인 김화례(78)씨도 종종 참선에 동참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아버지인 백봉 거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영향을 받고, 최근엔 매일 산청선원을 찾아 참선하고 있다. 특히 백봉 거사 도반인 묵산(默山) 스님도 철야는 아니지만 함께 정진해 수행자들을 독려했다. 올해 세수 94세인 묵산 스님은 지난해 6월 산청선원으로 내려왔다. 백봉 거사 향훈이 남은 곳에서 열반하고 싶어서다. 통도사 경봉 스님, 관음사 향곡 스님, 월정사 탄허 스님, 범어사 동산 스님, 용화사 전강 스님 등 기라성 같은 선지식들을 만나 탁마했던 묵산 스님은 백봉 거사와 법거량을 나누며 교우했다. 1965년 백봉 거사를 만난 묵산 스님은 화두참구의 임계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펼쳤다. “백봉 거사처럼 분별이 뚝 떨어진 무심도인(無心道人)은 보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언제나 투명했던 그 분. 어떤 물음에도 손뼉을 치고 깔깔 웃으시던 천진한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도반을 칭송하는 묵산 스님이다.

묵산 스님과 백봉 거사 자녀와 함께 정진한 수행자들은 갈림길에 서 있었다. 육체로서 ‘나’로부터 허공으로서 ‘참나’로 돌아서느냐. 철야정진은 이 한 순간을 얻기 위한 담금질이었다. 수행자들은 담금질한 살림살이를 나눴다. 회향을 앞두고 가진 소감나누기는 ‘허공으로서 나’를 발견하겠노라 다짐하는 장이었다. 누군가는 “아직 멀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다른 이는 “바른 길 찾았다”며 기뻐했다.

또 “귀가 먹을 때까지 백봉 거사 법문을 듣겠다” “12년간 24번 철야정진을 했지만 성과가 없다. 내년 3월까지 끝을 보고 말겠다” “마음공부 잘 익혀내서 거사풍 중흥을 일으키고 싶다” 등 원력을 세우기도 했다.
법당 앞에 걸린 사진 속 백봉 거사 시선이 수행자들에게 머문다. 그리고 묻는다.

“눈이란 기관을 통해서 보는 놈이 누구냐,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듣는 놈은 누구냐. 너는 누구냐.”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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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끊어낸 ‘거짓 나’ 발견하는 기쁨 맛 봐

직접 체험해보니

백봉 거사 육성법문 인상적
잠과 싸움 이겨내기 힘들어


▲ 처음 접하는 새말귀는 수마에 휩쓸려 붙들기 쉽지 않았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자리가 뭘까. 아니 어디쯤일까.

‘비암비명(非暗非明) 자리를 나투자.’ 산청선원서 처음 받은 화두다. ‘무(無)’라는 옛 화두보다 새로운 화두인 새말귀를 권했다. 뜬구름처럼 잡히지 않았다. 대신 가족 생각과 풀벌레 소리, 요동치는 심장 박동소리, 대중가요 멜로디와 노랫말, 몇몇의 하품이 크게 들렸다. 몸에 찾아오는 다리 통증에 몇 차례 반가부좌를 풀기도 했고 가려움 못 견뎌 얼굴을 긁기도 했다.

특히 자정 넘겨 새벽 1시에 이르면 잠과의 싸움은 정말 이기기 힘들었다. 새말귀가 좀 들린다 싶으면 고개를 꾸벅거리는 자신이 느껴졌다. 이때가 되면 새말귀도 온갖 소리도 사라진다. 다만 몰려오는 수마라는 큰 번뇌와 마주하고 씨름한다. 목은 자꾸 아래로 꺾이고, 등도 굽어졌다. 편안하게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육신을 굴복시키는 셈이다.

나중엔 ‘이뭣고’ 들라 권했고, 이마저도 안 되니 일곱 번째 좌선부터 ‘허공으로서 나’를 들었다. 이 새말귀는 어느 정도 참구가 됐다. 좌선 사이사이 들려주는 백봉 김기추 거사의 육성법문이 큰 도움을 줬다. 수술법문은 압권이었다. 몸에서 팔, 다리, 목을 떼서 옆에 두면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없다. 몸이 고정불변의 어떤 실체라고 여기지만 세포는 생멸하고 몸도 1초마다 늙어간다. 2500여년 전 부처님 가르침을 현대 과학이 증명하듯 백봉 거사 법문 역시 그랬다. 산청선원서 준비한 과학적인 분석의 영상들이 백봉 거사 법문을 탄탄하게 뒷받침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들려오는 육성은 듣는 이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여덟 번째 좌선부터는 수인한 손이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면서 ‘허공으로서 나’가 붙들리는 것 같았다. ‘몸뚱이는 헛것이다. 그렇다면 허공으로서 나는 무엇인가’를 의심하고 의심했다. 방선 죽비소리가 들리면, ‘허공으로서 나가 발을 움직여 걷는다’라고 되뇌었다.

‘허공으로서 나’가 삶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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