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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찰림 경영

각종 규제와 무관심에 사찰림 사실상 방치

▲ 오대산 사찰림에서 벌채한 소나무와 전나무로 축조된 월정사 적광전.

한국 산림(637만ha)의 약 1%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림의 경영 실태는 어떤 형편일까?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불사에 사찰림에서 벌채한 목재를 이용하고 있는 사찰은 있을까? 지난해 ‘사찰림의 활용방안’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이런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숲은 사원경제 생산기반

화석연료·목재 수입으로
숲 운영기술 모두 사라져

70~80년 무분별한 남벌
좋은 목재 고갈도 한몫

사찰에 산림부 운영하며
숲 가꾸는 일본의 사례
한국불교 밴치마킹 필요

아쉽게도 어느 사찰에서도 사찰림 경영이나 사찰림 벌채에 대한 궁금증을 명쾌하게 해소해줄 사례는 쉬 찾을 수 없었다. 사찰림에서 임산물을 생산하는 사례는 몇몇 사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통도사와 구인사와 봉정사는 송이와 산나물 또는 잣을 생산하고 있었고, 해인사는 국토녹화기에 조성된 잣나무 숲에서 1000포대(60~80kg)의 잣송이를 수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찰림의 경영에 관한 기록은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사찰림의 위상은 달랐다. 사찰이 소유한 숲은 농경사회에서 사원경제의 한 축이자 임산물의 주요한 생산기반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찰 운영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가람 주변의 산림에서 식자재(食資材)와 연료와 건축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해 왔던 과거 자급자족식 사찰 운영형태는 더는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사찰경제도 산업사회의 시장경제에 편입되어 식자재의 대부분을 인근 시장에서 조달하고 있다. 또 임산연료는 석유나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나 전기로 대치되었고, 가람 축조용 대경재 조차 외국산 수입목재로 충당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사찰 운영에 이바지하는 사찰림의 역할은 미미해졌고, 사찰림 경영은 화석화(化石化)되었다. 따라서 사찰에서 산림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전통은 단절되었고, 그에 따라 가람에 전승된 사찰림 운영 제도와 전통 기술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과거의 사찰림 운영 실태는 어땠을까? 역사가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가람 주변의 산림에서 벌채한 목재로 축조되었다. 현대적 도로나 운송수단, 벌목 장비가 없었던 조선시대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사찰 주변의 숲에서 가람 축조용 목재를 조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사례는 역사적 기록으로도 확인된다.

송광사의 경우, 헌종 8년(1842년) 봄에 난 불로 2000여 칸이 넘는 건물들이 일시에 소실되었는데, 중창공사를 하면서 필요한 공사비와 목재를 조달한 자세한 기록이 ‘조계산송광사사고’에 담겨 있다. ‘송광사사고’에는 큰 화재가 있었던 그해 가을부터 조정에서는 중창에 필요한 목재를 조계산에서 수급하게 했다. 조계산에서 구할 수 없는 대경재(大徑材)는 개인이 소유한 여러 곳의 사양산(私養山)에서 벌채하게 했고, 지리적으로 떨어진 벌채지의 목재를 송광사로 운송하기 위해 전라도 53개 사찰에 이들 벌채목의 운반을 책임지게 한 기록이 남아 있다.

월정사의 경우, 6·25 동란으로 전소한 칠보보전 자리에 적광전을 1968년 다시 세울 때 필요한 대경재를 대부분 인근 오대산에서 벌채하여 사용하였다. 구체적으로 적광전의 외부 기둥 18개 중 16개는 오대산 자생 소나무이고, 2개는 괴목(느티나무)이며, 내부기둥 10개는 오대산에 자생하는 전나무로 축조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월정사 일대의 숲은 사찰의 중건이나 보수를 위한 목재 비축기지였음을 적광전 중건에 사용된 재목으로 알 수 있다.

우리 산림면적의 1%나 되는 사찰림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오늘날 사찰은 왜 사찰림에서 가람 축조용 목재를 조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근본적인 이유의 일단은 사찰이 곤궁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사찰운영 재원을 조달하고자 시행한 산판 사업의 부작용으로 좋은 산림이 남아나지 못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산판 사업으로 헐벗은 사찰림은 국토녹화기(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에 다시 조성되어 울창해졌지만, 30~40년생의 비교적 어린나무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옳은 재목으로 사용할 임목들이 많지 않은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또 명산대찰의 사찰림 대부분이 공원(국립, 도립, 군립) 부지로 지정되어 사유림처럼 독립적으로 경영할 수 없는 다양한 규제에 묶여 있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사찰림 방치는 당장 사찰림 경영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소득이 많지 않고, 산림이용에 대한 다양한 장애요소(공원 운용에 필요한 규제 등)가 그대로 있으며, 사찰림 운영에 필요한 인력, 제도, 경험 등이 30여년 이상 지속된 무관심으로 인해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럼 사찰림 경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물음에 명료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개개 사찰이 처한 형편이 다르고, 또 사찰림의 면적이나 수령, 수종구성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국내에 사찰림의 운영이나 경영 사례로 참고할 만한 모델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1000년 동안 사찰림을 경영하고 있는 곤구부지(金剛峯寺)의 사례를 참고하고자 지난 9월 일본을 다녀왔다.

▲ 일본 고야산 곤고부지 사찰림 43임반의 편백 숲.

곤구부지는 고보(弘法)대사가 서기 816년 일본 와카야마현(和歌山県) 고야산(高野山)에 개창한 사찰이다. 사찰림은 개창 당시 주변 70리의 청정지역을 하사 받은 사패지에서 유래하며, 994년에 고야산에 난 큰 화재로 소실된 가람 재건용 산림벌채로 사찰림 이용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후, 불탄 고야산을 복구하고자 1011년에서 1015년 사이에 편백을 고야산 일대에 대규모로 심었으며, 사원의 복구와 수리에 필요한 목재를 조달하고자 모두베기(개벌)는 지양하고, 오래된 나무만 골라베는(택벌) 방법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특히 장래 필요한 건축용재를 육성하고자 6수종(삼나무, 편백, 금송, 소나무, 전나무, 솔송나무)의 묘목으로 주로 숲을 조성하였으며, 1813년부터는 사원 건축용으로 중요한 이들 6수종의 벌채를 금하고, ‘고야 6수종’으로 지정 관리해 왔다고 한다.

▲ 곤고부지 사찰림 23임반의 대경목 생산용 80년생 편백 숲.

곤고부지의 사찰림은 근대에 이르러 무수한 부침을 겪었다. 메이지 시대(1869년)에는 강제로 국유림에 편입(1905년에서 1907년까지)되기도 했고, 보관림제도(1917년)에 따라 2578정보의 산림을 사찰에서 관리했던 때도 있었다. 사찰림의 무상양여와 분수조림 제도에 따라 그 후에도 사찰의 산림 관리면적은 수시로 변했다. 오늘날은 총 1642정보(경내림 94정보, 사찰림 1548정보)의 산림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부와 사찰 간에 수확 후 3:7 또는 2:8의 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483정보의 분수림도 보유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내용은 1951년도부터 사찰 조직의 하나로 산림부를 설치하여 산림경영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산림을 경영하고 있는 점이었다. 산림 경영을 위한 의사 결정 기관으로서 산림경영위원회와 그 책임자(산림부장)를 두고 있는 것이나 사찰과 산림 당국 간에 형성된 상호신뢰와 협업 분위기는 국외자의 입장에서도 부러웠다. 오늘날 산림 경영의 주된 목적은 가람의 건축 및 영선에 필요한 자재의 원활한 공급과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산림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경관 관리와 장엄한 종교적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 경내 주변지역 200정보는 금벌림(禁伐林)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한다고 한다.

일본의 사찰림 운영 사례는 우리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산림을 다룰 수 있는 전문인력과 전문기구가 개별 사찰에 존재하고 있는 점이다. 개창 1200주년 기념으로 바쁜 일과 중에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준 곤고부지의 야마구찌 분소(山口文章)스님은 교토부립대학 임학과 출신으로 오사카의 임업회사에 재직한 후 곤고부지에 부임하여 산림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사찰의 중건, 보수, 수리에 필요한 목재를 사찰이 소유한 숲에서 충당한다는 원칙과 남은 목재는 목재가 필요한 다른 사찰에 제공한다는 원칙을 피력할 때는 부러웠다. 그리고 1843년에 소실된 중문(中門)을 개창 1200주년 기념으로 172년 만에 재건할 때 사용된 대경재 대부분을 사찰림에서 조달하였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는 우리의 처지가 생각나 부끄러웠다.

사찰림 경영 모델을 선도할 사찰은 왜 우리에게 없을까? 국가(임업진흥원)는 개별 사찰의 필지별 토지정보(주소, 면적, 위치, 토지이용), 임업환경정보(나무, 토양, 지형, 기후), 임업경영정보(적정재배임산물, 적정조림수종, 임지생산능력) 등의 종합산림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불교계가 사찰림을 방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모를 일이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ychun@kookmin.ac.kr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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