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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대지진이 할퀴고 지나간 네팔의 오늘

기자명 이중남
  • 기고
  • 입력 2015.11.17 14:30
  • 수정 2015.11.17 14:40
  • 댓글 0

천재지변에 이은 연료대란…마비 상태에 빠진 부처님 탄생지

▲ 9월26일 카트만두에서 석유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 7시간을 기다려 봐야 고작 2리터 남짓의 석유만을 살 수 있다.

평소에 업무용으로 220cc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네팔 타망불자연합 소속 다와 라마(40)는 9월26일 휘발유를 보충하러 동네 주유소를 몇 군데 찾아갔지만, 그 어디서도 휘발유를 구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인도가 네팔연방공화국 헌법 제정에 불만을 품고 정유공급을 끊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진짜로 자기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카트만두 ‘바드라까리 싱가더르바르’에 있는 주유소에서 매일 일정량을 판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주유소 여는 시간이 오전 8시30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늦으면 순서에서 밀릴까봐 이튿날 새벽 4시에 찾아갔는데, 벌써 오토바이 200대 정도가 앞서 대기 중이었다. 무려 7시간을 기다려 11시가 되니 순서가 돌아왔다. 일주일 전만해도 리터당 104루피(한화 1150원) 하던 휘발유 값이 500루피(한화 5500원)로 올라 있었고, 그 값을 다 내고도 단 2.4리터밖에 못 샀다.

우기로 지진피해 복구 차질
인도가 석유 공급 끊으면서
공식적인 연료가격 5배 폭등
정부 지원 기대 어려운 상황

관광산업 기반도 훼손되고
연료난 겹쳐 고립무원 처지
한국불교계 도움 손길 절실

10월 하순 네팔에 다녀왔다. 경주 불국사(주지 종우 스님)와 보현사(주지 기형 스님)의 후원으로 필자가 속한 단체 젊은부처들(회장 탄경 스님, 불국사 포교국장)이 지난 6월에 진행했던 지진피해 구호 프로젝트 ‘TOGETHER WITH NEPAL 2015’의 후속사업 검토를 위한 비구니승원 실태조사 목적이었다. 위 일화는 안내 겸 통역을 맡아 준 내 오랜 친구, 다와 라마가 말해 준 자신의 경험담이다. “지금 ‘더사인(Dashain, 15일간 지속되는 네팔 최대의 명절)’ 축제 기간이라서 카트만두는 텅 비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더사인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도가 연료를 끊었습니다. 차가 안 다녀요!” 해마다 더사인 기간이면 네팔인들은 보름이나 한 달 가량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카트만두의 교통지옥도 잠시 풀린다는 것은 익히 아는 바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로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다.

네팔은 동북쪽으로 중국, 서남쪽으로 인도라는 두 대국 사이에 끼어있는 내륙국가다. 지리적인 조건으로 양분하자면 중국 쪽 방면은 인구가 적은 산악 지형이고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이 중국과의 국경역할을 하는 반면, 인도 쪽 방면은 ‘떠라이’라고 부르는 아열대성 평지 위에 금이 그어져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네팔과 인도 양국은 전통적으로 개방된 국경정책을 유지해 왔고, 지금도 한 쪽 사람이 국경을 넘어 다른 쪽으로 건너가는 데 거의 아무런 제한이 없다. 이런 연유로 인도는 지난 40년간 네팔에 정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독점해 왔다. 그런데 지난 9월20일 네팔연방공화국 헌법안이 가결, 공포된 지 3일 만에 인도는 일방적으로 정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원천 중단했다. 인도계 소수종족의 소요로 네팔 쪽 진입부의 치안이 불안하다는 이유였지만, 소요가 발생한 진입부는 한 곳 뿐인데 왜 다른 진입부까지 모두 차단하느냐는 항의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도계 소수종족을 응원하는 실력행사가 명백하다.

아무런 대비가 없던 네팔에서는 다음날 즉각 ‘연료대란’이 일어났다. 공식적인 연료 가격은 다섯 배로 치솟았는데, 그것도 돈을 낸다고 필요한 만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미리 대기했다가 할당해 주는 만큼만 살 수 있다. 암시장 가격은 공식 가격의 두 배라고 하니, 자그마치 열 배가 뛴 것이다. 공화국 헌법 제정에 단 3일 간 환호했던 네팔 사람들은 그 뒤로 한 달 반이 넘도록 마치 자신들이 저지른 무슨 악행으로 응징이라도 받는 양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연료공급이 중단된 지 일주일 만에 문 닫은 공장이 2000개라는 기사가 났는데, 그 뒤로도 한 달이 더 흘렀으니 사태는 불문가지다. 정유뿐만 아니라 천연가스도 공급중단이기 때문에, 가스로 조리를 하는 시내 음식점들의 적잖은 수가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나는 평소에 보이차를 즐기기 때문에 늘 ‘따또 빠니’, 즉 뜨거운 물이 필요한데, 이번 방문 때는 가스비 때문에 물을 끓여 달라하기가 눈치 보여서 애를 먹었다. 나무를 연료로 쓰는 시골 식당에 갔을 때 “따또 빠니!”를 마음 편히 외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좀처럼 범죄가 없는 네팔에서도 연료 도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와 라마는 집 안에 들여놓은 오토바이 연료통이 밤새 텅 비는 쓰라린 경험을 겪은 뒤에야, 구입해 온 휘발유를 페트병에 담아서 방에 보관하고 나갈 때 필요한 만큼만 오토바이에 담아 나가는 지혜를 터득했다.

이번 연료난의 정말 심각한 측면은, 불과 반 년 전에 발생한 대지진이 남긴 상흔으로 여태 시달리고 있는 네팔 같은 빈국에 대해 이웃 강대국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인가 하는 인도주의적인 맥락에 비추어 보면 뚜렷해진다. 잘 알려졌다시피, 네팔은 지난 4월25일과 5월12일, 각각 진도 7.8과 7.3에 달하는 두 개의 강진과 천 수백 회의 여진을 만나 9000명이 숨지고 2만4000명이 다치는 대재앙을 겪었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네팔과 네팔인들의 조속한 쾌유를 응원했고, 세계 각지에서 구호의 손길이 답지했다. 그렇지만 복구작업이 제대로 완료되지도 못한 6월 중순, 100일 가량 지속되는 네팔의 우기(雨期)가 시작되어 이미 복구를 마친 곳까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번 지진에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은 중부 고산지대는 평소에도 우기 동안 산사태가 발생해 육로가 차단되는 일이 빈번한데, 올해는 하물며 지진으로 지반이 취약해진 터라 사정이 더욱 말이 아니다. 그러니 네팔의 날씨가 맑아질 조짐이 보이던 9월23일은 이웃국가로서 네팔의 복구재건 준비를 도와야 마땅한 시기이지, 그렇지 않아도 빈곤한 사람들에게 연료를 끊고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고 생계를 도탄에 빠지게 하는 짓은 도저히 할 일이 아니다.

▲ 네팔의 상징 ‘보우더’ 역시 지진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지난 6월 구호활동 당시 보우더에서 70명의 비구니 이재민들을 만나 약간의 구호품을 전달한 일이 있다. 그분들은 둑빠 린포체가 1932년 설립한 네팔 최초의 비구니 전문 수행도량 ‘따시 치메 가챨 곰파(승원)’ 소속인데, 이번 지진으로 승원의 모든 건물이 잡석더미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절터를 지킬 몇 명만 남고 대중 전체가 카트만두로 피신해 와 있었다. 그때 우기만 끝나면 모두 절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에, 어쩌면 이미 카트만두를 떠났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카트만두에 머물고 있었다. “지진으로 막힌 마을 진입로가 우기를 거치면서 더 나빠졌습니다. 우기가 끝난 뒤 도로를 복구하러 들어간 중장비는 지금 연료가 없어 멈춰 있습니다. 이 임시 거처도 기간을 정해 빌린 것이라 곧 비워줘야 하는데….” 승원을 총괄하는 주지 롭상 걀첸(비구, 58) 라마는 한숨을 쉬며 허탈하게 웃었다. 내년도와 내후년도 승원복구 설계도까지 마련해 놓았는데, 우기가 끝난 지 한 달 넘도록 돌아가기는커녕 여태 중장비를 움직일 연료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처지라니.

▲ 무너진 사원의 잡석더미를 정리하고 있는 스님·군인들.

롭상 걀첸 라마처럼, 네팔에서 비구니승원은 대개 승원을 총괄하고 살림을 책임지는 “겐뽀(주지, 비구)”를 둔다. 그렇지만 작은 승원들까지 모두 겐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돌라카 지역 쩌리꼬트에 있는 두 승원을 방문했을 때, 겐뽀가 있고 없는 것의 차이를 확연히 목격했다. 한 곳은 반년 전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여전히 나뒹굴고 있고 스님들은 빈터에 골함석(양철지붕)과 각목으로 엮어 세운 임시거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한 곳은 방사와 주방 같은 기초 생활시설이 말끔히 복구되어 있어 언뜻 지진피해를 입지 않은 곳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스님들이 생활하는 분위기도 두 절이 약간 다름을 어렴풋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초 생활시설이 복구되어 있던 두 번째 승원도 대법당과 주민회관 같은 대규모 건물은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터다지기나 하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개 산을 좋아하고, 그래선지 ‘네팔’ 하면 히말라야와 그 기슭에 살아가는 소박한 산촌 사람들, 바람에 나부끼는 룽다(‘바람의 말’이 그려진 오방색 불교 깃발)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네팔이 주로 산악인들을 통해 우리 대중매체에 보도되는 일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네팔의 정치권력은 고산(高山)이 아니라 구릉에 살고 있는 아리안 계통의 힌두교도들이 장악해 왔고, 가까운 시일 안에 그런 구도가 바뀔 전망도 없다. 지난 대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네팔 중부 일대는 몽골리안 계통의 티베트 불자들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지만, 네팔 전체로 보자면 이들은 정부의 고려대상에서 늘 후순위로 취급받아온 소수자들이다.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정부 지원이 앞으로 개시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재민들의 생계와 직결된 영역이나 공교육 정상화 정도에 그칠 것이지, 이번 조사의 목적처럼 승원들 현황이나 스님들 살림살이에 대한 염려와 관련될 리는 무망(無望)하다. 전통적으로 중동부 산지 경제의 근간이 되어온 관광산업도 올해는 지진의 여파로 예약 취소율이 절반에 이른다고 하니, 적어도 향후 수년간은 관광업을 통해 외부자금이 들어와 승원으로 흘러드는 일수(溢水, spillover)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번 방문기간 동안에는 마음고생도 많았다. 실태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서 그 자료를 근거로 지원 대상을 가려내야 하는데, 다녀 보니 어느 한 곳 도움이 절실하지 않은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순박한 이 사람들은 먼 나라 불자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도 고맙다며 거푸 감사를 표했다. 그렇지만 우리 단체에 거대한 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몇 사찰들의 십시일반 후원에 힘입어서 하는 소규모 프로젝트일 뿐인데, 공연히 딱한 처지에 놓인 조사 참여자들에게 기대감만 갖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귀국 후 줄곧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 10월28일 네팔 국영 정유사와 중국 페트로차이나 간에 정유공급 계약 체결 보도가 분명 나왔는데, 일주일이 넘도록 연료난이 완화될 기미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 이중남
젊은부처들 정책실장
지난 4월 네팔 대지진 이후 반년 간 수많은 국제구호단체들과 각국 공적개발원조기금이 네팔로 향했고, 그 덕분에 이제 네팔의 ‘긴급한 공적 필요’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공공부문 투입량을 훨씬 초과하는 거대한 민간의 수요를 해결할 숙제는 민간부문 스스로의 몫으로 여전히 남겨져 있다. 네팔 불교는 대지진으로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앞으로 복구재건을 촉진할 밑천인 관광산업 기반도 크게 훼손당했고, 최근에는 황당무계한 연료난에까지 시달리고 있다. 문자 그대로 고립무원의 처지다. 이런 때에 한국 불교계와 불자들이 조금씩만 더 힘을 모아, 조금만 더 조직적으로, 지친 네팔의 승원과 스님들, 불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면 그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울까. 후원문의 02)763-4226(젊은부처들)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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