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테러
종교와 테러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5.11.23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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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동시다발적인 테러로 160여명에 이르는 사람이 희생됐다. 테러의 배후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로 지목되고 있다. 테러 직후 범인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번 테러는 2001년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에 의해 이뤄진 미국의 9.11테러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되고 있다. 전세계가 깊은 애도와 함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유일신 종교가 파리 테러 배경
종교의 살육 합리화는 아이러니

신의 뜻 내세우는 전쟁은 ‘광신’
종교 얼굴 띤 야만이 평화 위협


프랑스 테러는 종교(宗敎)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최근 일어나는 테러는 종교적 배타성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종교는 성스러운 가르침인데 살육의 논거가 되고 있는 점이 아이러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도 그렇고 2011년 일어났던 노르웨이 총격 사건, 2015년 1월 파리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도 마찬가지다. 9.11테러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의해 일어났고 노르웨이 총격사건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에 의해 일어났다. 종교를 배경으로 한 테러는 성전(聖戰)으로 포장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십자군 전쟁’이라고 밝혔다. 인류에 위협이 되는 대량살상무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내용은 성전이었던 셈이다.

성전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전쟁이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이 과연 성전으로 포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성전을 앞세워 일어나는 테러나 전쟁은 어떤 폭력보다 잔인하다. 우리편은 선(善), 반대편은 악(惡)이기에 타협의 여지가 없다. 신의 뜻으로 벌이는 전쟁이기에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될 여지도 없다. 어린이나 선량한 시민이 죽어도 신의 뜻이기에 인간적인 눈물이나 애잔함도 없다. 얼마나 잔인하게 악을 응징하느냐에 따라 신이 더욱 많은 축복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다. 믿음이 아니라 광신(狂信)이며 야만이다.
11월7일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커런트 생물학’에 발표한 논문은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측면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연구팀이 캐나다, 중국, 요르단, 터키,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6개 나라 5~12세 어린이 1170명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을 비교한 결과 종교를 가지지 않은 어린이들이 훨씬 이타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들에게 각각 좋아하는 스티커를 10장씩 나눠준 뒤 처음 보는 어린이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결과를 보니 종교가 없는 아이들이 평균 4.1개의 스티커를 나눠준 반면 종교를 가진 어린이는 평균 3.3개에 그쳤다. 특히 남의 잘못에 대해 종교가 없는 어린이들은 관대한 반면 종교가 있는 어린이들은 강하게 단죄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진행한 진 데세티 박사는 “종교적 어린이들이 비종교적 어린이보다 관용이 부족한 것은 도덕적 면죄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쉬운 것은 설문 대상 가운데 불교를 믿는 어린이는 너무 적어 분석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이다.

불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나 이슬람과는 구별된다. 창조주나 나의 삶을 주관하는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양심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잣대다. 그래서 순교는 할지언정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테러나 전쟁을 벌이지는 않는다. 티베트가 철저한 비폭력으로 중국에 대항하고, 미얀마 또한 비폭력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했다.

▲ 김형규 부장
그러나 불교의 이런 관용과 포용성이 조금씩 위협받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불교와 이슬람 주민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태국에선 이슬람에 의한 테러도 일어났다. 이에 대해 정부와 국민들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불교국가인 이들 나라에서 이슬람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자비와 포용이라는 불교 본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팔레스타인 지역을 폭격하는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언덕까지 올랐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비난이 빗발쳤던 적이 있다. 그들의 뇌리 속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악마였을 것이다. 종교의 얼굴을 한 야만이 지금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20호 / 2015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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