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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기자명 법상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1.23 13:48
  • 수정 2015.11.23 13:49
  • 댓글 0

얼마 전에 지인이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면서 작은 거북이 한 마리를 키워달라고 보내온 적이 있었다.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싶어 밥만 잘 주면 된다기에 열심히 밥도 주고,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키워왔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책도 찾아보고, 검색도 하면서 필요한 집이며 등도 사다 달아주면서 키우다보니 어느새 따뜻한 애정 같은 것이 생겨났다. 유기농 마트에 가서 배추잎도 사오고, 음식을 적게 먹을 때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을 졸이기도 하면서, 무언지 모를 생명에 대한 경외감 내지 연결성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작은 것이 꼬물거리며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신기했던지 모른다.

작은 생명도 인연 맺으면
의미 있는 존재로 재탄생
서로 연결돼 둘이 아니기에
깊은 자비로 연결되는 관계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이틀 동안 출장을 다녀오고부터 조금씩 먹이를 적게 먹는다 싶더니, 움직임도 많이 느려지는 것이 아닌가.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가 하고 따뜻하게 난로도 틀어 줘 보고, 공부도 해 가면서 방법들을 강구해 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까운 동물병원 몇 곳을 찾아 가 봤는데도, 이 작은 거북이를 봐 줄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파충류들을 전문으로 받는 병원들이 국내에 몇 곳 있다고 했다. 전화를 걸어 다음 날 거북이를 데려 가겠다고 예약한 뒤, 그날 밤 한 걱정을 하며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거북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나도 모르게 저절로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이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죽었는데, 이렇게 가슴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신도님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인연 따라 오고 가는 것이니 눈물을 보이기보다는 의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쉽게 설법하던 내가 이 작은 거북이 앞에서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이렇게 오래도록 아픈 눈물을 쏟아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날 아침, 나는 죽은 거북이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전 내내 명복을 빌어주었다. 혹시나 싶었지만 여전히 거북이는 깨어나지 않았고, 혹시나 찾아봤더니 이 종은 겨울잠을 자는 거북도 아니었다.

사실 그 거북이는 길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수족관 같은 곳에서 스쳐지나갈 수 있는 무의미한 생명일 수도 있었다. 그런 많은 생명들 중에 한 마리가 어느 날 나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그렇게 무의미하던 생명이 인연을 맺음과 동시에 나에게 의미 있는 한 존재로 재탄생되었던 것이다.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이토록 놀라운 일이었던 것이다. 결코 쉽고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에는 화분에 물을 주고 인연을 맺은 연구원이 수백,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출장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날 뻔 한 바로 그 순간에 연구소 안의 그 화분에 연결된 검류계가 급격하게 떨리는 장면이 나온다. 연구소 안의 식물과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연구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식물 하나 조차도 사람과 인연을 맺게 되면 이렇게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곧 그와 연결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연결성은 곧 그와 내가 둘이 아닌 존재라는 내밀한 의미에 한층 다가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둘이 아닌 자각이 곧 자비심이다. 즉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곧 둘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우리와 연결된 그 모든 사람들이, 지금 생각에는 사소한 업무적인 관계라거나, 그렇게 친하지 않은 관계라거나, 형식적인 관계일지라도 그들과 내가 인연을 맺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법계라는 진리의 세계에서는 나와 그가 둘이 아니며 서로 깊은 자비로 연결된 관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 법상 스님
어릴 적 읽었던 어린왕자에서도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넌 언제나 책임이 있어. 넌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매 순간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지 않던가.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갔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또 유정, 무정의 모든 존재들과 사실 우리는 매 순간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고, 매 순간 책임지고 있었던 것이며, 매 순간 그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1320호 / 2015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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