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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그물질 하는 정부

“세상이 그리 된지 오래지…”라고 반은 포기 가까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다가도, “이건 해도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닌가?”하는 심정이 될 때가 있다. 이번 광화문 시위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보는 느낌이 바로 그렇다.

어떤 것이 근본이고 어떤 것이 지엽적인 것인지가 도대체 구별되지 않는다. 아니 애초의 목적이 근본과 지엽을 뒤집어엎는데 있지 않은지 의심스럽다. 또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가장 저열한 형태를 벌이면서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마치 그것이 법질서의 수호요 사회정의의 실현이라는 구호로 포장하는 참담한 현실을 본다. 맹자(孟子)가 “백성을 그물질한다”고 표현한 것이 지금 정권이 하는 짓이 아닌가 싶다. 소통과 화합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 극단적인 양극화와 편 가르기를 조장하는 것이 정권의 역할인 것 같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 보자. 광화문 시위 사태를 보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눈이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전의 촛불 시위에 이어 가장 많은 대중이 모여 시위를 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부각되어야 한다. 무엇이 이렇게 대중들을 움직이게 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것이 전체는 아닐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정서를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틀에서 사태가 조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이 논의의 초점인가? 시위의 불법성과 적법성? 과잉진압인가 아닌가? 전혀 다른 영역에서 문제가 논의되고 있고, 논의의 무대를 그 쪽으로 옮기려 한 것이 애초에 정권의 목적이 아니었는가를 의심케 한다. 원래 시위라는 것은 소통이 끊어졌다고 믿어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자를 보라. 시위(示威)는 기세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가 계속될 때 기세를 보임으로써 소통의 물꼬를 트고자 함이다. 거기에 수반되는 조그만 문제점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고, 또 극단적 진압을 동원함으로써 논의의 무대를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사태가 아닌가 싶다.

법질서의 수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법질서라는 것을 내세워 불법을 휘두르는 것이 오히려 문제이다. 법질서를 어기게 국민을 몰아대고, 거기에 걸린 국민을 그물질하며, 폭력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권력이 문제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정권의 역할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법질서를 가장한 폭력으로 내리 누르는 것이 되었는가?

정치가 잘못되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그런 상황에서 죄를 다스리는 것에 중심을 두게 되면, 이를 “백성을 그물질 한다”고 표현한다.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지금의 상황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지금의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극단적인 대처를 통해 극단적인 사태를 일으키고, 그 극단적인 사태에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이 본디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극단적인 사태를 계속 조장하면서, 극단적인 편 가르기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한군데로 결집시키려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방식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야 할까? 보수적인 목소리가 한군데로 모아지면서 정권을 수호하는 훌륭한 방패가 되고 또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보라! 그렇게 국론을 양극화시키면서 얻은 힘은 결국 어떻게 쓰일 것인가를! 계속 양극화를 강화하는 것으로 그 힘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남북 분단만 해도 서러운데, 이 남쪽에서마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분단이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 좌다 우다 할 것 없이 이러한 양극화의 방식으로 논의를 계속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느 편을 따지기 전에 국민들을 양극화로 몰고 가는 정권의 행태에 대하여는 함께 경계하고 함께 성토해야 한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 서로 다투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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