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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 교선일심 종지 몰라[br]선·교에 각각 집착해 서로를 비방

요즘 사람들은 교선일심(敎禪一心)의 종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시는 방편 가운데에서 각각의 사람들이 허망하게 하나의 극단적인 것만 집착하면서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 때문에 교에 집착하는 사람은 선을 비난하고 선에 집착하는 사람은 교를 비방한다. 그런데 교에 집착하여 선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이미 제 스스로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며 선에 집착하여 교를 비방하고 있는 사람들도 오류가 더욱 심하다.

교 꿰뚫어야 참선도 가능
참선하며 결정심 없으면
정토의 업 닦는것만 못해
사유로 자기 속임 없어야

왜냐하면 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옳다고 집착하면서 망령되게 자기의 견해를 인정해 버린다. 자기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대승요의의 문자를 비방하면서 끝내 성불할 수 없다고 비방하고 헐뜯고 있으니 더욱 가련한 사람들이다.

요즘 말법의 세대를 관해보건대 강석은 이미 쇄미해져서 큰 사장(師匠)이 없다. 그 때문에 영리한 젊은이들에게 다문의 지혜가 없다. 또 향상의 참선에 뜻을 둔 이들도 오래가는 원대한 뜻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다. 무명에 눈이 가려진 선지식들은 단지 망정을 따라 사람들을 속여 오류에 떨어지게 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상황이야말로 크게 눈물을 뚝뚝 흘려야 할 일이다. 또 어떤 승도는 망령되게 자기 스스로 도를 깨쳤다고 하면서 세속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이고 홀려 탐착을 부리며 공양을 요구하고 있다. 귀의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선이 향상의 한 포인트라고 알려준다. 사람이 이것을 믿으면 화두가 아직 푹 익지도 않았는데 어지럽게 망상을 끓여대면서 곧바로 바른 것이라고 도장을 찍어주고 깨우쳐 들어간 곳이 있다고 하면서 삿된 견해에 잘못 떨어지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폐해가 더욱 심하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고 자기 스스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참선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단지 참구함이 진실하지 못하여 오래가는 원대하고 결정적인 의지도 없으면서 허망하게 제 스스로 깨쳤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오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교를 꿰뚫지 않으면 참선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참선을 하면서도 결정심이 없는 것은 마음을 오로지하여 정토의 업을 닦는 것만 같지 못하다. 정토의 업을 닦으면 일생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게 된다. 지혜로운 이들은 제 스스로 비추어보고 청컨대 제 스스로 사유하여 자기를 속이고 자신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살펴보건대 재상의 관직을 가진 사대부가 참선을 하여 깨친 사람이 옛날부터 적지 않다. ‘전등록’에 분명하게 실려 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요즘 재상들 가운데 법문을 외호하는 데 뜻을 둔 이들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참선을 향상의 경지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보통의 일개범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래 이런 이야기가 있다. 법문에서 참선하는 사람이 대오철저하지 못하면 불법을 호지하고자 발원하는 이들이 있으니 여러 조사들께서 대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고 보살이 시현하여 속세를 구제하는 것이다.

옛날에도 승가 문중에서 참구를 했지만 꿰뚫지 못하였다가 업의 습기에 이끌려서 지금 세상에 나온 사람은 비록 속제의 티끌 속에 있다 하더라도 숙세에 익힌 한 생각 반야의 종자가 광명을 뿜어내어 가려질 수가 없다. 그 때문에 문장이나 공명이나 사업으로 솜씨를 발휘한다. 이렇게 법문을 외호하는 이들이 펼치는 여러 가지 방편의 작용이 같지 않고 수행하는 문도 한 가지가 아니다. 향상의 경지에 오로지 뜻을 두는 사람도 있고 공덕 짓는 수행을 오로지하는 사람도 있고 삼보를 굳건하게 세워서 법을 보호하고자 원을 세우는 사람도 있고 단지 자기의 생사문제만을 위하는 사람도 있고 충효에 발휘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여러 가지로 수행하는 것들이 모두 보살도이다. 그러므로 승가문중에서 이들을 일개범부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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