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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삼천대천세계

기자명 서광 스님

탐진치 바탕으로 펼쳐지는 중생들 내면세계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작은 티끌로 만든다면 그 작은 티끌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만약 그 티끌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티끌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부처님께서 티끌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티끌들이 아니라 그 이름이 티끌들일 뿐이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삼천대천세계는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입니다. 만약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면 한 덩어리로 합해진 모양이겠지만, 여래께서 말씀하신 한 덩어리로 합해진 모양도 한 덩어리로 합해진 모양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한 덩어리로 합해진 모양일 뿐입니다.” “수보리야! 한 덩어리로 합해진 모양이라는 것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인데 범부들이 탐내고 집착할 따름이니라.”

심리현상을 비유적으로 표현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허상
부모·친구들도 이미지에 불과
안다고 여길 때 무지도 발생

위의 대목은 내용적으로는 물리적 현상의 공성에 대한 가르침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물질을 가장 작은 덩어리로 잘게 부수면 종국에는 물질의 형태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이를 ‘반야경’의 공(空)에 대한 가르침과 연결해 설명하는 글들이 있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물리적 세계보다는 탐진치 삼독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정신적 세계로 설명하고 있는 혜능대사의 관점을 참고하면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우리 내면에 잠재된 탐욕과 화,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성은 우리가 직면하는 삶의 조건이나 상황과 맞물리게 되면 다양한 심리적 반응들이 2차, 3차…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일상의 삶과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정신적 현상들 가운데 탐욕심을 바탕으로 하는 번뇌와 망상이 1000가지나 되고, 또한 화의 감정과 어리석음이 바탕이 되어 각각 1000가지가 넘는 심리적 상태를 유발하는데 이들을 합하면 삼천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삼천가지 번뇌와 망상은 또다시 2차, 3차적인 심리적 반응들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숫자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대천세계라고 이름을 붙였다. 즉 우리 각자는 탐진치 3독이 만들어낸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세계는 순간순간 바뀌고 변화하는데 그 숫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삼천대천(三千大天)세계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순간순간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 감정, 느낌, 감각, 기억 등의 내면세계를 가리킨다. 그러한 내면세계는 실체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는 것인데(生滅心),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갖가지 의미를 부여해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집착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이 삼천대천의 정신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 것이고(一心), 그 또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말로 따지고 계산하면서 갖가지 개념들을 만들어내어 탐내고 집착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전달하시고 싶은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삼천대천세계와 같은 우리의 심리현상들은 눈·귀·코·혀·몸·마음의 기관(六根)들과 모양·소리·향기·맛·촉감·마음의 대상(六境)들이 서로 접촉하면서 생겨난 이미지, 마음이 만들어낸 모양들(心相)일 뿐이니 그러한 허상, 허깨비(空)를 부여잡고 시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사건들, 심지어는 우리가 사랑하고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남편, 아내, 자식, 부모, 친구들에 대한 이미지조차도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모양이지, 진짜 그들 자체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기 전까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싶은 데로 보고 듣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지도 함께 발생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서광 스님 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장 seogwang1@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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