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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신경림의 ‘동해 바다’

기자명 김형중

동해처럼 넓은 마음을 소망한 노래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1연의 돌은 중생심이고
2연 바다는 보살심 상징
자기 몸·마음 계율의 매로
담금질·채찍질하는 다짐

동해바다는 넓고 크고, 깊고 짙푸른 바다다. 청정의 바다이다. 세상의 모든 시냇물과 강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대심(大心)보살인 관세음보살의 마음 같이 도량이 크나큰 바다이다. 파도가 칠 때는 아버지처럼 매섭고 준엄하나, 파도가 잔잔해서 고요해지면 어머니 같이 너그러운 바다이다.

동쪽바다 조그만 섬 보타낙가산에 대자대비하신 해수관세음보살님이 상주(常主)하면서, 파도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린 중생을 바라보고 계신다. 낙산(洛山)에는 아침마다 해가 솟아오르면 붉은 연꽃이 피어난다. 동해바다는 온통 붉은 연꽃이 피어난 화엄(華嚴)의 바다가 된다.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을 차별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모두를 수청주(水淸珠)인 소금으로 정화시켜 영원히 썩지 않고 오염되지 않는 청정 자성심(自性心)으로 만든다. 성난 파도가 멈추고 불성(佛性)의 바다가 고요해지면 부처의 법문인 해조음(海潮音)이 들려온다. 부처가 ‘화엄경’을 설하면 바다는 고요한 해인삼매에 빠진다.

마음이 청정하고 밝으면 중생이 부처 아닌 중생이 없고, 온 국토가 불국정토가 아닌 세상이 없다. 온 세상이 그대로 화엄 불국토이고 유심정토(唯心淨土)이다. 세상은 내 마음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 내 마음이 본 세상이 내 세상이다. 부처의 마음을 가지면 부처, 중생의 마음을 가지면 중생이다. 마음이 부처를 만든다. 내 마음이 부처이고 중생이 부처이다. 중생과 부처가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는 한 방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화엄경’의 법문이다.

‘동해바다’는 시인 신경림(1935 ~현재)이 항구 후포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동해바다처럼 널따란 마음을 갖고 싶은 소망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2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연의 돌은 중생심, 2연의 바다는 보살심을 상징한다. 시상이 시각적으로 티끌-맷방석-동산으로 확대되는 점층적 수법이다. 1연은 시인이 역경과 고난 속에서 남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은 중생심을 읊고, 2연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옹졸해진 자신의 마음을 참회하면서 큰마음으로 모든 인간을 너그럽게 포용하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읊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계율의 매로 담금질하고 채찍질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반성과 사색, 그리고 교훈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시이다.

원수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나를 기쁘게도 하지만, 나를 배반하고 슬프게 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가까운 내 주위를 잘 살피라는 조고각하(照顧脚下)란 말이 있다. 스스로 마음을 키우고 정화하지 않으면 중생심으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 돌덩이가 된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남에게는 아량이나 도량이 없어지고, 조그만 실수도 용납이 안 되고, 잘못이 바위만큼 크게 보인다. 자신의 허물은 아예 생각조차 없다. 억센 파도를 다스린다는 뜻은 분노와 욕망의 거센 물결을 진정시킨다는 것을 비유한다.

신경림은 민족문학작가회의를 창립하여 이끈 이 시대의 양심과 지성을 갖춘 시인으로,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시시하게 세상을 살지 말라고 다부지게 외치는 옹골찬 시인이다. 동악이 낳은  한국시단의 거인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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