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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아디뭇타 비구

기자명 성재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붓다의 가르침과 ‘나의 욕망’이 충돌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향한 ‘지심귀명례’
목숨마저 바치겠다는 다짐
칼날 앞에도 두려워 않자
도둑들 위협 멈추고 떠나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불제자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항상 이렇게 다짐했다. 이는 “온 마음을 다 바치고, 저의 목숨마저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런 언구를 존경심을 과장한 표현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아니다. 진정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것은 ‘나의 욕망’을 고스란히 포기할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나의 욕망’에서 고갱이가 되는 것은 바로 ‘나의 생존’ 즉 목숨이다. 나의 목숨과 붓다의 가르침을 양손에 들고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부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던 제자 중에 아디뭇타 비구가 계셨다. 그분이 승원에 머무실 때 일이다. 어느 날 도적떼가 들이닥쳤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별반 유용한 물건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승원을 습격했으니, 어쩌면 자기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도적떼는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승원을 들쑤셨다. 젊은 비구들의 눈동자는 분노로 흔들리고, 나이 어린 사미들의 눈동자엔 공포의 눈물이 가득했다. 그 혼란의 한가운데 아디뭇타 비구는 조용히 선정에 들어있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그에게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칼날의 위협과 겁박의 고함도 알 수 없는 그 힘 앞에 기세가 꺾였다.

도둑떼의 두목이 다가와 목에 칼을 겨누었다.

“당신은 이름이 뭔가?”
“아디뭇타 비구입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지 않습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두목이 칼날을 겨눈 채 마주 앉았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 세상에 둘도 없이 위세 등등하던 자들도 정작 칼날을 마주하면 공포에 떨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더군. 그런데, 당신은 달라. 두려워하기는커녕 안색이 점점 평안하고 밝아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아디뭇타 비구가 말했다.

“욕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공포를 초월합니다. 헛된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집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면 이제 더 이상 무거울 것이 없는 것처럼. 저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도 없습니다. 그런 저는 죽음을 슬퍼하지 않습니다. 마치 불타오르는 집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처럼. 인연 따라 생겨난 것도 언젠가 인연 따라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거기에 영원한 무엇은 없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이런 가르침을 성취해 ‘나’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마치 벌겋게 단 숯덩이를 잡지 않는 것처럼.”

아디뭇타 비구는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라는 생각도 없고 ‘나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리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튕겨 생겨난 물거품이 꺼지는 것인데, 무엇을 슬퍼하겠습니까? 사람만상의 생성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개체를 구성하는 인연의 변화를 그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며 울부짖겠지요. 하지만 두목이여, 본래 ‘나’와 ‘내 것’이라 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내게 이제 이런 것이 없구나’ 하며 탄식하지 않습니다. 저는 삶을 사랑하지도 죽음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혹시 그대가 원한다면 제 몸뚱이를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저는 이 몸에 어떤 애정도 혐오도 없습니다.”

도적떼는 칼을 거두고 조용히 승원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승원으로 돌아와 출가했다고 한다.

지심귀명례,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은 자에게만 허락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20호 / 2015년 11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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