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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부적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원들이 신문사를 찾았다. 평생을 불교와 아동문학을 위해 바쳐 온 아동문학계 원로들의 방문이라 존경의 마음으로 맞이했다. 회원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두툼한 노란봉투를 내려놓았다. 봉투에는 같은 내용의 광고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국내대표 일간지 중 하나인 ‘조선일보’에 실린 광고는 보는 눈을 의심케 했다. ‘소원성취, 만사형통이 이루어진다는 신비의 황금 복 돼지’라는 문구 아래 스님이 황금 돼지가 그려진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었다. 장기 광고 계약을 한 듯, 같은 광고가 일주일을 주기로 반복됐다. 내용은 황당했다. 108배를 하고 무상의 경지에 든 스님이 30분 간 현몽을 했는데 부처님 사이로 금빛이 유별나게 빛나는 황금 복 돼지 두 마리가 달려와서 스님의 품에 안긴 이후로 돼지 그림이라고는 그려 본적이 없는 스님이 저절로 돼지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로 신통이 생겨 스님의 그림을 지니면 오랫동안 결혼 못한 사람이 결혼을 하고, 파리만 날리던 식당이 손님으로 넘쳐나고, 돈을 떼이고 화병을 가진 사람이 불과 열흘 만에 돈을 받게 됐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스님이 그린 황금 복 돼지 그림
소원성취 이뤄진다 버젓이 광고

부처님, 신통·점술 강력히 경계
사찰서 부적 퇴출 운동 펼쳐야

회원들은 불자들이 믿고 의지해야 할 스님이 오히려 그 믿음을 이용해 혹세무민의 내용으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 분노했다. 광고를 접할 때마다 사람들이 불교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해당 스님과의 통화는 어렵지 않았다. 불자들의 항의에 대해 스님은 그렇지 않아도 광고를 보고 조계종 총무원에서 자꾸 제재를 해와 승적을 원효종으로 바꿔버렸다고 당당히 설명했다. 그림 또한 기도 차원에서 그려주는 것이지 생각처럼 큰돈이 되지도 않는다고 강변했다. 소원성취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바른 불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신도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모으는 것이라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부적이나 그림을 불교로 포장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선종의 초조라 불리는 달마 스님의 그림은 소원성취를 넘어 수맥 차단용으로도 팔리고 있는 실정이니, 사실상 그 계통에서는 ‘우량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간지에 정기적으로 광고까지 내면서 영업을 하는 것을 보면 불교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정도가 생계형을 넘어 기업형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를 제어할 장치들이 마땅치 않다.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종단이나 스님들이 많고, 애써 금지한다 하더라도 다른 종단으로 옮겨가 버리면 끝이다. 이를 바라보는 불자들의 의식 수준 또한 문제다. 이런 황당한 목적의 그림이나 부적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불자들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가 길흉화복과 관련돼 상업적으로 악용되는 이면에는 한국불교의 특수성을 빼놓을 수 없다. 전래과정에서 무속을 품에 안는 바람에 불교와 무속의 경계가 모호해진 측면이 있다. 사찰에 산신각과 칠성각이 들어서 있고, 스님들이 부끄러움 없이 행운부적을 나눠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림이나 부적은 불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 부처님은 이런 혹세무민을 강력히 경계해 왔다. 예비 스님들이 지켜야 하는 ‘사미율의’에는 “사주보는 책, 관상 보는 책, 점치는 책, 귀신보고 신병 부리는 법, 부적 같은 것을 배우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장아함경’에서도 “신통이나 점술로 사람을 현혹하지 말라”고 경책하고 있다. 지금의 행동과 마음가짐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은 불교의 핵심을 관통하는 가르침이다.

▲ 김형규 부장
연말연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동지(冬至), 입춘(立春)과 같은 절기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새해의 행운을 빈다는 명목으로 부적을 나눠주는 사찰이 적지 않다. 작은 기둥들이 휘면 결국 대들보가 무너지는 법이다. 한국불교 장자종단이라는 조계종부터라도 신년에는 사찰에서 부적을 완전히 퇴출시키는 정법운동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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