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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생전예수재 회향법문 고불총림 방장 지선 스님

“다른 사람 아픔에 귀 기울여야 우리사회 업장소멸”

 
“상생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상생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줘야 합니다. 원한이 풀어지면 그 자리가 바로 화합입니다. 해원은 하지 않은 채 과거는 어차피 지난 일이라고만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은 과거청산을 두고 “쓸데없는 것”, “과거에 매달려 있다가는 나라발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슴에 원한 맺힌 사람들에게 그 말이 들리겠습니까? 그 맺힌 한,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고 상생입니다.”


“一種平懷(일종평회) 泯然自盡(민연자진)이라.”

“한 가지 일이 풀리면 억천만 가지 일이 다 풀린다”는 뜻입니다. 온 몸에 가득 차 있는 한 가지 의심이 풀리면 이 지구상의 모든 의증이 다 풀립니다. 그 의문을 풀어낸 사람을 진인(眞人), 참사람이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큰 의심을 내서 풀어 버리면 그 자리는 생사가 없고, 번뇌 망상이 없습니다. 영원히 생사윤회가 끊어져 그야말로 대자재, 활발발한 자리니 어느 것 하나 걸릴 것 없는 무사인(無事人)입니다. 그러니 예수재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늘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고, 묵묵히 생업에 열중하며, 조상들에게 효도하는 분들입니다. 공덕을 쌓고 복덕을 짓고 자기 수행에 열심인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평생 예수재(預修齋)만 지내면서 살다가는 삼독(三毒)을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삼독의 뿌리를 없애야 합니다. 되풀이되는 삶, 업과 공덕을 짓고 받고, 그래서 윤회하는 삶은 참된 삶이 되지 않습니다.

인류 유사 이래 가장 발전했다는 현대문명은 모든 것을 다 잘합니다. 삼독을 키워 욕망을 무한히 발전시키는 일은 특히 더 잘합니다. 그런데 예수, 미리 닦는 것은 할 줄 모릅니다. 이 나라도 예수를 모릅니다. 그러니 해원상생(解寃相生)하는 법도 모릅니다. 그래서 불통이고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조계사에서 예수재를 봉행하는 것을 보니 우리 종단이 잘될 것 같습니다. 또 ‘화쟁위원회’도 작동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리 닦는다는 것은 행복한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권력과 부를 쌓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은 마음을 낳고 행위를 나오게 만들며 그 행위는 우리가 받을 결과로 나타납니다.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어둡기로는 칠흑보다 검은 것, 크기로는 허공보다 크고 작기로는 바늘귀보다 작은 것, 그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이고, 무명이고 업식의 덩어리입니다. 그 마음이 검은 곳으로 흐르면 지옥이고 밝은 곳으로 흐르면 극락입니다. 그러니 극락도 절반, 지옥도 절반입니다.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면 범부중생은 육도를 윤회하게 됩니다. 그러니 살펴보십시오. 내가 있는 곳이 지금 극락인가, 지옥인가. 나는 성불의 모습인가 아니면 중음신의 삶인가. 진정한 불자라면 지금 바로 복을 구하는 소박한 신앙에서 업그레이드 해 생각과 삶을 바꿔야 합니다. 또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마저 다 버리는 법, 생사·번뇌 망상에서 해탈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 길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참선’(參禪)입니다. 참선을 통해 생사와 번뇌가 끊어진 자리, 무명업식에 홀리지 않는 자리, 본래면목의 자리를 터득하면 예수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공덕 쌓고 예수재 지내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 또한 모두 그 자리에 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자리에 들기 위해 배우고 또 배우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염불하고 또 염불하고, 법문을 듣고 또 들어 이르는 자리, 그 자리를 알아듣기 쉽게 말해 ‘무위진인’이나 ‘진아’ 그리고, ‘참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수행이 깊어지면 절성기지(絶聖棄知)라, 성인의 가르침도 필요 없고 아는 것도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지식을 앞세우고 훌륭한 척, 성스러운 척 내세우는 사람들이 결국엔 민초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짜 백성들은 나라 망친 적이 없습니다. 백성은 정치나 경제의 개입 없이도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동양의 사상이었습니다. 장자, 공자, 노자 모두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 참선법에는 ‘일종평회’ 하나의 의심을 해결하면 생사가 없는 자유자재의 그 자리에 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니 예수재도 지내고 불공도 올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생사번뇌를 해결할 수 있는 불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옛 중국의 선승이셨던 운문 선사께서 하루는 대중에게 묻습니다.

“내가 보름 전 일은 묻지 않겠다. 보름 이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중은 답하라.”

아무도 대답이 없으니 운문 대사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묻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후로 어떻게 살 것입니까.
예수재 회향 이후부터 나이와는 상관없이 경천동지할 일을 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예수재, 천도재 지내고 복덕 달라고 비는 인생밖에 안 됩니다. 경천동지할 인생, 경을 치를 만한 대단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그야말로 극약처방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없이 법문을 들었고 수없이 잊어버렸습니다. 그 많은 가르침이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도 이 법문 듣고 돌아가서 바뀌는 것이 없다면 내 법문도 실패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많이 들었던 무상, 무아, 공의 가르침이 현실화돼야 한다.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가장 좋은 처방이 화두 참선입니다. 법문을 아무리 들어도 혁명적인 변화가 없고, 생사윤회, 번뇌 망상을 해결하지 못하니 극약처방인 참선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잘 안 되지요. 어려워서일까요? 아닙니다. 참선하다 성불하기란 아침에 세수하다 코 만지기처럼 쉽다고 했습니다. 미련한 놈이라야 닷새에서 이레가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몇 십년간 해왔으니 성불을 몇 십번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법문을 듣고도 변화가 없다면 오늘도 실패한 것이고 나도 헛짓 하고 가는 꼴이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깨닫지 못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닙니다.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문을 그렇게 많이 듣고도 자기를 바꾸지 못하는 것은 무서워서입니다.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어떻게 쌓아온 부와 권력인데 버리겠는가, 이런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놓아버리는 맛을 안다면, 그 기쁨을 안다면 여러분 삶은 혁명적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인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잘못 살아온 인생을 바꾸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향해 달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부자는 망할 일만, 예쁜 사람은 추해질 일만 남았습니다. 감투는 날아갈 수밖에 없고, 권력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생사번뇌 망상에 홀려서 부와 권력, 정치, 종교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정치권력, 종교, 재벌이 세상을 망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성불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놓아야 합니다. 놓아도 안 죽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진짜 예수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을 치도록 놀랄 일을 한 번 만들어야 합니다. 인생을 뒤집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이 없는 인생에서 정답이 있는 인생으로 뒤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성불이고 해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여러분의 과거를 돌아보고 청산해야합니다. 개인의 삼독이 지은 허물과 업장, 국가를 내세워 지은 업보, 종교를 내세워 지은 업보, 재벌 되려고 지은 업보, 이러한 과거를 모두 청산해야 합니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욕망성취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업보는 윤회를 통해서 나에게 옵니다. 그런데 중생은 그 법을 모릅니다. 특히 정치인, 종교인, 탐욕의 콩깍지가 쓰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세계가 망해가는 원인은 무한한 탐욕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자본주의는 남아도는 식량을 태평양 바다에 버립니다. 없어서가 아닙니다. 식량의 무기화입니다. 나누지 않고 도와주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자본주의는 망합니다. 세상은 공산자본주의가 망쳤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업의 윤회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나 권력과 돈을 갖고 물질과 정신을 지배하는 세상은 결국엔 망합니다. 이런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해원상생(解寃相生)해야 합니다. 요즘 상생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하지만 상생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줘야 합니다. 원한이 풀어지면 그 자리가 화합입니다. 해원은 하지 않은 채 과거는 어차피 지난 일이라고만 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말하는 과거청산은 “쓸데없는 것”, “과거에 매달려 있다가는 나라 발전 못한다”입니다. 그런데 가슴에 원한 맺힌 사람들에게 그 말이 들리겠습니까. 그 맺힌 한,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이 소통의 시작이고 상생입니다. 그들의 말을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재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도 거북스럽지만 듣기도 거북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도 의견이 다르고 정서가 다른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귀 기울여서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청산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업장소멸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희망펀드에 들어가야 합니다. 일확천금 노리고 들어갔다가 돈 떼이는 그런 펀드 말고, 미래를 준비하는 펀드에 들어야 합니다. 미리 준비하는 삶, 미리 닦는 삶, 늘 예수재 지내는 자세로 살자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실천의 공덕은 머리카락만큼도 빠짐없이 여러분에게 돌아갑니다. 그렇게 보장된 희망펀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슨 안보법을 만들든, 무슨 동맹을 맺든 진짜 생명을 아끼는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무상합니다. 환경 파괴로, 공해로 망가지는 지구를 위해 왜 행동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나라와 왜 나누지 않습니까, 전쟁을 멈추기 위해 왜 지혜를 모으지 않습니까? 부처님은 인간이 실천 할 수 없는 일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실천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만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 팔정도, 육바라밀이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길입니다. 실천할 수 없는 길, 허무맹랑한 이야기,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말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문제삼아 가르치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사회 안에서, 역사 안에서 벌어지는 고통, 고뇌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만든 것(業)이기에 우리가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아이가 굶어죽은 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굳어진 관념 속에 갇혀서 보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크고 밝은 자리, 우주와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던 생명의 근본적인 눈으로 보면 나와 관계없는 것이 없습니다. 지식은 때로는 인간을 지배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세계를 지배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양심이 설 자리는 점점 작아지고 너무 많이 쌓인 지식이 서로를 비교하고 갈등하게 합니다.

특히 이념과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무시하고 해치려고 합니다. 작게는 개인의 고집부터 학문이나 정치, 종교의 이데올로기까지 여러 가지 논리들이 사회를 대립시킵니다. 특정 이데올로기는 지배논리가 되거나 편견에 사로잡혀 인간을 해방시켜주기도 하지만 인간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지식은 아무리 채워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역사에 남은 많은 지식인들도, 특히 과학자들도 인생을 후회하며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지식만큼 높고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가장 깨끗한 사람들은 땅 파고 기계 돌리는 일반 백성, 일반 국민들입니다. 그 평범한 사람들 덕에 나라가 운영되고 지탱돼 왔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지켜내야 합니다. 정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민중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이끌어 나가는 진짜 힘은 묵묵히 할 일을 해온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옳은 편을 지지해주고, 손들어주고, 찍어주어야 합니다. 삶을 보는 바른 안목으로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과거 청산 안한 사람들, 해원상생 못한 사람들에게 맡겨 놓으면 안 됩니다. 전 국민과 인류에게 희망펀드를 넣어줄 수 있는 자격이 상실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영국, 러시아, 일본 같은 강대국들은 서로 경쟁하고 싸우다가도 자기나라 이익 앞에서는 손잡고 약자를 수탈합니다. 식민지를 만듭니다. 세계를 재편합니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더 불행해져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예토를 정토로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신심을 더욱 굳건하게 하고 외롭고 고달프지만 내가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고 내가 하는 오늘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세상을 구제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비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입니다. 자비로 저항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비는 파사현정입니다. 어두운 곳에 분명한 광명의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공성을 체득하여 각성된 마음속에 자비로 가득한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세상의 모든 업보를 청산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예수재를 참으로 잘 지내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미리 닦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시작인 매일매일 예수재를 지내는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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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법문은 대한불교총본산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가 11월21일 봉행한 생전예수재 회향법회에서 고불총림 방장 지선 스님이 설한 내용입니다.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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