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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법현(法顯)-상

기자명 성재헌

불법을 구하고, 불법을 체득하는 일은 심상한 자세와 행실로는 실로 난감하다. 선가(禪家)에서는 화두 참구를 두고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고 지나가는 일에 비유하고는 한다. 강인한 의지와 부단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함을 뜻하는 표현이다.

전래 초기 불완전했던 불교
완전한 경·율 만나겠다 발심
스무살 되던 해 구족계 받고
불법 구하고자 인도로 향해

은빛으로 빛나는 산에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벽! 그것을 통과하는 어려움은 어느 정도일까? ‘은빛으로 빛나는 산과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알아야 그 어려움도 짐작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은산철벽’이란 표현을 쓰고 있지만 그것이 험난한 히말라야산맥을 넘었던 구법승들의 행각에서 비롯된 비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바위산이 첩첩으로 아득한 설산의 준령, 그 살벌한 풍경 속에서 살을 에는 칼바람을 맨손으로 마주했던 구법승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을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실로 그와 같은 길이다.

후한 명제 이후로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었다지만 수세기가 흐르도록 중국에서의 불교는 모호하고 불완전했다. 왜냐하면 붓다의 가르침이 서역의 상인과 스님들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찾아 나선 최초의 중국인이 바로 법현 스님이다.

법현의 성은 공(?)씨이고, 평양(平陽) 무양(武陽) 출신이다. 그에게는 위로 세 명의 형이 있었는데, 모두 7·8세 어린 나이에 죽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재앙이 법현에게도 미칠까 두려워, 세 살 되던 해에 바로 승적(僧籍)에 올려 사미(沙彌)가 되게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두려움을 몰랐다. 언젠가 같이 공부하던 사미들 수십 명과 함께 논에서 벼를 베고 있을 때였다. 그때 굶주린 도적들이 곡식을 탈취하려고 들이닥쳤다. 사미들은 모두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법현은 홀로 그 자리에 남았다. 도적이 칼을 들이밀었다.

“너는 왜 도망치지 않느냐?”

법현은 조용히 낫을 내려놓았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입니다.”

도적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해 봐라.” 
“곡식을 원한다면 마음대로 가져가도 좋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일이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인과의 법칙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누구도 도와주는 이 없어 배고프고 가난한 처지에 놓인 것은 과거에 누군가를 돕고 베푼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남의 것을 빼앗는다면, 내세에는 배고픔과 가난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빈도(貧道)는 그런 당신들이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말을 마친 법현은 조용히 낫을 집어 들고 곧바로 절로 돌아섰다. 도적들은 감복해 곡식을 고스란히 놓아두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에 함께 거주하던 수백 명의 대중 승려들 가운데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법현은 평소 중국에 전해진 경전과 계율이 완전하지 못함을 늘 개탄하며, 맹세코 완전한 경전과 율장을 찾고야 말겠다는 뜻을 품었다. 드디어 나이 스물이 되어 구족계를 받자 뜻을 결행하기로 마음먹었다. 399년, 드디어 법현은 혜경(慧景), 도정(道整), 혜응(慧應), 혜외(慧嵬) 등과 함께 장안(長安)을 출발했다.

부처님 나라를 찾아 나선 그들이 처음으로 맞이한 것은 고비사막이었다. 풀과 나무는커녕 하늘에는 새 한 마리 없고, 땅에는 짐승 한 마리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막뿐이었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막막한 여로에서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언제 이 길을 가다 죽었는지 모를 이들의 퍼석한 해골뿐이었다. 법현 일행은 한 조각의 빵과 한 모금의 물로 하루를 견디면서 망자가 일러주는 그 길을 따라 드디어 사막의 끝 코탄에 도착했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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