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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와 비폭력-상

“테러는 군사행동으로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 달라이라마는 세계 곳곳을 순례하면서 “부처님의 자비와 비폭력 만이 지구촌에 만연해 있는 폭력과 테러를 치유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사진은 올 4월12~13일 일본 도쿄 쇼와여자대학 히토미기념강당에서 열린 ‘달라이라마 법문 및 관정법회’.

“저는 폭력에 대해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제안했습니다.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일들이 정말로 어렵고 급박하고 또 위태로운 바로 그 때 해야 합니다.”

미국의 심장으로 통하는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9·11테러 공격(2001년 발생)은 매우 충격적이고 매우 애석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끔찍하고도 파괴적인 행동을 ‘증오행위’로 규정하고자 합니다. 테러와 같은 폭력은 파괴적인 감정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건들은 인지(人智)가 증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유도되고 지배된다고 하면 그 결과는 참혹스러울 정도로 참담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담당자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숙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폭력 행위에 대해 비폭력의 원칙을 채택하고 대응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커다란 중요성을 갖는 일입니다. 미국에 대한 공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보복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최선의 해결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인간사회 내의 문제들은 인도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비폭력은 이를 위한 적절한 접근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비폭력의 원칙을 지키고 세계의 장기적인 안전을 염두에 두면서 침착한 마음으로 이런 문제들이 논의 될 수 있다면 다양한 해결책들이 다수 찾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특정 사건의 경우 좀 더 공격적인 접근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테러리즘은 무력 사용에 의해 극복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복잡한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실상 폭력의 사용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고 빈번하게는 파괴와 고통을 그 결과로 남기게 됩니다. 인간의 갈등은 오직 ‘자비’로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 열쇠는 비폭력입니다.

미국의 보복적인 군사 행동은 어느 정도의 만족할만한 단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테러리즘의 문제를 뿌리 뽑지는 못할 것입니다.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테러리즘을 낳고 자라게 한 요인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자제할 것과 9·11 공격에 대한 잔혹한 보복은 추구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위로의 뜻도 표했습니다. 하지만 폭력에 대해 더 큰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제안했습니다.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비폭력에 대해 언급하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은 일들이 정말로 어렵고 급박하고 또 위태로운 바로 그 때입니다.

때로는 개인 또는 비정부기구(NGO)의 개입이 세계의 특정 종류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저는 유럽 방문 기간 중 몇몇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의원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유럽 의회의 후원 아래 테러리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를 논의하기 위해 개인들, 세계의 평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관련된 NGO 단체들의 회의를 마련해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로 여겨지는 사람 또는 테러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 회의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이 왜 테러리즘에 의존하거나 이를 부추기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불만 중 일부는 타당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는 이에 대해 고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합당한 불만이나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오해나 근거 없는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실제 상황에 대해서 명확히 해야만 합니다.

인간의 갈등은 난데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연(因緣-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조건)의 결과로 발생하고 그 대부분은 주창자들의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리더십이 중요한 대목입니다. 언제 행동을 취하고 언제 자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리더들의 책임입니다. 갈등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기 전에 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력적 충돌로 이르게 하는 원인과 조건이 한번 무르익고 나면 평화를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됩니다. 폭력은 의심할 여지없이 더 큰 폭력을 불러오게 합니다. 폭력이 우리에게 가해졌을 때 본능에 따라 보복하게 되면 우리의 상대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앙갚음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폭력이 확대되어가는 방식입니다. 예방적인 조치와 자제가 사태의 초기 단계에서 지켜져야만 합니다. 분명히 지도자들은 경계를 하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또 단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폭력은 불가피하게 더 많은 폭력을 불러오기 때문에 진지하게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롭고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추구해야만 한다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지적했습니다. 무력은 단호한 대응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최후의 수단일 뿐입니다. 우선 한 가지 이유로는 폭력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의도는 제한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지만 폭력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유발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폭력은 오늘의 이 현대 사회에서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반대로 만약 인류가 좀 더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좀 더 포괄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순식간에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폭넓은 시각과 접근 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재앙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이슈들은 한 국가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와 관련이 됩니다. 우리는 비폭력의 행사를 모든 종류의 테러리즘을 통제하는 장기적인 조치로서 탐색하고 시도해 보아야 합니다. 세심히 계획하고 조율된 장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견해 차이를 해결하는 적정한 방법은 대화와 타협, 협상을 통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겸손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상호 이해와 존경, 신뢰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대로 인간의 문제는 인도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비폭력은 인간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색출해낼 수 없는 적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한 국가 전체를 처벌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됩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그런 상황을 다루기 위해서는 폭넓은 균형 감각이 요구됩니다. 한편 단순히 몇몇 개인을 찾아내어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 국가 전체를 표적으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경우 9·11테러로 무고한 미국 시민이 고통 받은 것처럼 불가피하게 그 국가의 무고한 시민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전문위원

[1322호 / 2015년 12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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