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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서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2.08 13:28
  • 수정 2015.12.08 13:29
  • 댓글 0

따뜻한 햇볕이 반가워 방문을 열었습니다. 방바닥 한편 깊숙이까지 그 빛이 들어옵니다. 어디에선가 새 소리도 신선한 바람과 함께 들어옵니다. 한가한 오후입니다. 일없이 한가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언제인가 싶습니다. 

도심 삶 떠나 모처럼 안거
‘앉아 있으면 되겠지’했지만
정진은 졸음·망상과의 싸움
‘그냥 일어설까’ 망설이지만
도반 의지하며 견디고 견뎌

늘 햇볕은 있었고 신선한 바람도, 새들의 지저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곁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 삶의 현장인데 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뭔가 해보려고 구상하고 그것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내가 저지른 일인데도 잘 될지 안 될지 걱정하고 불안해했습니다. 나의 생각은 미래에 가있고 나의 정서는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곳으로 가는 데 이미 익숙해진 나의 마음은 틈만 나면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과 지금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감사함과 고마움을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 쌍계사 선방에서 동안거에 들었습니다. 이 시간이면 정진하고 있어야 하는데 오늘은 김장을 한다고 오전 내내 배추를 뽑고 나르고 해서 오후 시간은 자유정진입니다. 정진을 할까 하다가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시내에서 살다가 이곳에 온 지 이제 열흘이 되어갑니다. 하루 9시간 정진도 상당한 체력이 없으면 어렵겠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그냥 앉아있으면 되지 하다가도 막상 앉으면 편한 것은 잠시이고 이후부터는 이겨내야 할 것들이 많아집니다. 처음에는 졸음과 겨루어야 하고 나중에는 아픈 다리와 실랑이를 해야 합니다. 몇 번이나 일어나서 나갈까 하다가도 숨소리마저 참으며 양옆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보며 견딥니다. 어느 스승이 견디라고 해도 못 견딜 것을 도반들의 힘으로 참습니다. 역시 ‘도반이 수행의 전부’라고 하신 부처님의 법문이 다시 한 번 마음에 다가옵니다.

10여년 전 선방에 갔을 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모르는 스님들이 이렇게 모여서 소임을 정하고 자리를 정하고 나름대로 규정을 지키면서 함께 공부하고 울력하면서 지내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과연 어떤 집단이 이렇게 모여서 서로 공부하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 싶습니다. 선방의 스님들이 이런 전통을 잘 유지하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해 보이고 고마워 집니다.

쌍계사는 제가 중학생 시절 늘 놀던 곳이고 법당마다 청소하던 곳입니다. 예불하던 기억들이 스며있는 곳이라 익숙합니다. 그런데 선방에 앉아있는 시간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앉으면 처음 30분은 졸음과 망상과의 싸움입니다. 정신을 지금에 두려고 노력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에 가서 일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그 정신을 내려놓고 다시 지금 여기 편안히 있으려고 하면 또 어느새 과거나 미래에 가서 일을 도모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혼자서 “뭐 저런 놈이 있나”라고 자책합니다. 예전에 강아지를 한 마리 키웠는데 무는 습관이 있어서 아무리 혼을 내어도 순식간에 다시 물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이게 과거생부터 익혀온 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순간순간의 행이 더 조심스러워 집니다. 작은 물길이 큰 물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라”라는 것이 부처님의 공통적인 당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미타선원 주지
하림 스님
그 생각의 습관과 겨루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시계를 보면 정진을 끝내기 15~20분 전입니다. 이때부턴 다른 것은 없고 오직 다리 통증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시계가 울립니다.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지면서 다리의 고통도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아! 이 시계소리가 내게 깨달음의 기쁨을 경험하게 해 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몸의 고통을 맞닥뜨려 견뎌보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찰의 식구들과 신도님들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선방을 지금까지 지켜준 수좌스님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1322호 / 2015년 12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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